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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 때도 과학자들은 상대국 연구실에서 일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피터 아그리 교수(오른쪽 둘째)가 과학원 산하 이과대 소속 교수들과 과학교류 협력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토슨 제공]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피터 아그리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스튜어트 토슨 미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 교수(한반도센터 소장) 등 6명의 미·북 과학교류컨소시엄 대표단이 지난 10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을 방문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2000년)과 지미 카터 미 대통령(2002년)은 북한을 방문한 뒤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국의 중량급 과학자들을 맞은 북한 과학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 수준에 감명 받기는 방북한 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부터 북한의 김책공대와 교류하며 협력사업을 해온 스튜어트 토슨(63) 교수를 16일 만났다.

지난주 북한 과학자들 만나고 온 토슨 美 시러큐스대 교수

2001년부터 북한과 과학교류 협력사업을 해온 스튜어트 토슨 미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 교수. ‘과학 외교’가 쌓는 신뢰 구축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신동연 기자
-아그리 교수가 김책공대에서 강연할 것이란 보도가 있었는데.
“우리는 학생들을 만나진 못했다. 강의가 없다고 했다. 우리를 초청한 북한 과학원과, 과학원 소속의 이과대, 김책공대, 평양과학기술대 등을 둘러봤는데 이과대에서 아그리 교수가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 즉 세포 내 물 이온의 흐름에 대해 짧은 강연을 했다. 사교적인 성격의 아그리 교수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 선 것처럼 강연했는데, 아주 화기애애했다. 우리는 젊은 여성 과학자들도 만났다. 이과대 소속 연구원의 10%가 여성이라고 했다.”

-북한의 과학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과학원에는 생물학, 수력공학, 재생에너지 개발 등 다양한 연구 분야를 두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과대 소속 젊은 과학자들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네트워크 이론, 생물다양성, 세계 주식 가격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도 보여줬다. 아그리 교수는 북한 과학자들 가운데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기계 장비의 수준은.
“장비의 수준, 과학 인프라는 열악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많은 연구를 해내고 있었다. 특히 수학적 응용에 능했고 뛰어난 이론가를 양성하고 있었다. 과거 옛소련도 그랬다. 첨단 기기와 대용량 컴퓨터가 없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수리 물리학 연구가 발달하는 역설이 있다. 미국에서 수리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쇠퇴하고 있다. ”

<1> 북한 과학원 산하 이과대 컴퓨터실에서 작업 중인 연구원들. 외부와는 차단된 인트라넷을 사용하고 있었다. <2>2006년 개관한 김책공대 전자도서관. 플랫 모니터, 환한 조명 등 서구의 도서관에 뒤지지 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3> 평양 시내 한 호텔 로비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토슨 교수는 밴으로 이동하던 중 잠시 들른 곳이어서 호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4> 평양 시내 지하철역 입구. 서울처럼 영하의 추운 날씨가 계속돼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어떤 계기로 방북하게 됐나.
“2007년 5월 발족한 미·북 과학교류컨소시엄과 북한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컨소시엄은 미국 민간연구 및 개발재단 (CRDF), 아그리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시러큐스대, 코리아소사이어티 등 4개 비정부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리처드 룬즈베리 재단이 방북 경비를 지원했다.”

토슨 교수는 2001년부터 북한 김책공대와 과학협력 사업을 진행해 왔다. 13차례 교류를 했다. 북한 대학생들을 20여 명씩 시러큐스대로 불러 한 달여씩 연수를 받도록 지원했고, 북한 대학생들이 국제대학생 프로그래밍대회(ACM)에 출전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2008년 북한 측이 캐나다에서 열린 결승전에 이유를 밝히지 않고 불참했지만, 앞선 예선에선 금메달을 확보하기도 했다. 토슨 교수는 북한 대학생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북한 학생들에겐 상대가 안 된다(웃음). 2006, 2007년 베이징에서 북한 대학생들이 ACM 출전을 위한 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학습열은 놀라울 정도였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몰두했다. 그들은 기회가 온 것에 대해 정말 즐거워했다. 아마 미국 학생들을 베이징에 데려다 놓으면 그들은 레스토랑부터 찾아 다녔을 것이다.”

2006년 문을 연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은 시러큐스대와 김책공대의 협력사업 결과다. 시러큐스 측은 전자도서관에 국제적 기준에 맞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을 지원했다. 전자도서관은 한국이나 미국의 도서관 시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밝고 훌륭한 인테리어와 외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신종 플루로 노벨 수상자 강의는 무산”
토슨 교수 일행이 평양을 방문한 시기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북한을 방문하고 난 직후다. 또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후 주민들의 동요가 있다는 보도가 증폭되는 와중이었다.

-평양 분위기를 말해달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신뢰가 없는 곳 위에서, 신뢰를 쌓는 작업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더욱이 우리는 밴을 타고 다녔고, 길거리나 시장 같은 곳은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통보 받은 사람들만 만났다. 차창으로 보인 평양은 평온해 보였다. 고려 호텔에서 묵었는데 북한 일반 주민들이 생활하는 장소는 물론 아니다. 북한 주민들이 레스토랑에서 먹고, 돈을 쓰며, 즐기는 것을 봤다. 우리를 의식해 그들을 들여보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신종 플루 상황은 어느 정도였나.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눈에 띄었다. 평양에서 더 심하다는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중국보다는 덜한 것 같았다. 다만 아그리 교수가 노벨 화학상 공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북측이 신종 플루 확산 우려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북한 당국이 외국인에게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을 오갈 때 이용한 고려항공 비행기에는 도저히 한국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계절적인 탓에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호텔에도 외국인들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북한에서 쫓겨나고 있다고는 못 느꼈다.”

토슨 교수는 1990년 중국과도 과학협력 프로젝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정치 체제가 아주 다른 나라와 일하는 게 편하다”는 그는 암묵적 코드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체제가 좋은지, 어떤 정부가 좋은지 등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펜을 이렇게 떨어뜨리면 땅에 떨어진다는 사실과, 왜 그런지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신뢰 구축이 먼저다. 이후 다른 큰 범위의 이슈로 협력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과학자 간 협력은 외교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학외교(Science diplomacy)다.”

그는 김책공대 전자도서관 사업의 경우, 북한이 국제 기준을 받아들이고, 큰 넓은 세계와 연계돼 나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일성대와 이과대에도 전자도서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북한 갈 때마다 단고기 즐겨”
-북한과의 과학·기술 교류가 북한의 무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종류의 개입(engagement)은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대북 수출 통제는 매우 엄격하다. 우리 프로젝트의 상당한 비용이 법에 저촉되는지를 알아보는 변호사 비용으로 들어간다. 미·소 양국이 핵무기로 서로를 겨냥하던 냉전시기에도 과학자들은 상대국의 연구실에서 일했다. 양국이 핵무기를 감축해야 한다고 결단을 내렸을 때,
“이 합의가 지킬 수 있는 합의냐”라고 과학자들에게 물을 수 있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미·중 양국은 과학 기술분야부터 교류를 시작했다.”

-북한은 폐쇄사회다. 과학 교류가 어떤 변화를 줬다고 보나.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이 문을 연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했다. 전자도서관은 북한이 외국 지도자들에게 보여주는 자랑거리다. 당국이 시러큐스대에 학생들을 보낸 것도 그들로선 과감한 투자다. 우리가 이번에 방문했을 때, 그들은 내부 인터넷망(인트라넷)을 쓰고 있었지만, 지난해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미국 기자들은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열고 이용할 수 있었다.”

-북핵 대치 상태가 계속되거나,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황이 와도 교류는 계속하는가.
“북한과 교류를 계속해야 할 더 큰 이유다. 문제가 더 어려울수록 해결하기 위해 드는 노력도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비공식 채널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미·북 양국 정부에 있다. 우리는 북한과 협력하면서 그들에게 참여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진 않는다. 와서 보라고 한다. 그들에게도 무엇인가를 내놔야 하고 그래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북측과 합의한 게 있는가.
“있지만, 미국에 돌아가 법 위반 여부를 살펴야 한다. 과학원 측에 미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이번에 만난 과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가 자신들이 처음 본 미국사람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 교류 협력을 강화해야함을 보여주는 한 예다.”

토슨 교수는 뉴욕 주재 북한 대표부 인사들과 e-메일을 수시로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
로 지낸다고 한다. 2001년 당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의 도움으로 뉴욕 주미대사관에 가서 북한과의 협력 문제를 논의한 이후 맺어진 관계다. 자신이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시러큐스대와 한국의 긴 인연도 있다고 한다.

“시러큐스는 한·미가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전에 이미 한국 유학생을 받은 곳이다. 워싱턴 대사관을 짓는 데 공헌한 한표욱 전 주영 대사가 1942년에, 그에 앞서 그의 부인인 최정림씨가 1939년에 영문학 석사 학위를 땄다.”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는 그는 북한에 갈 때마다 ‘스위트 미트’(Sweet meat·단고기)도 즐긴다고 했다. ‘단고기’는 보신탕이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한반도 통일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 사람에게선 듣기 힘든 한국적 정서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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