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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퀴한 쪽방은 잊어라, 고시원의 쾌적한 진화

① 최신 고시원의 실내 전경. 침대와 화장실 겸 샤워실을 갖추고 있다. ② 고시원의 휴게실. ③ 헬스클럽이나 실내 골프연습장을 설치해 공짜로 이용하게 하는 고시원도 있다. ④‘책상+침대’로 구성된 초기 고시원. 독서실에 침실 기능을 합친 단순한 형태였다. 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캡슐형 호텔. 2m×1.25m×1m 플라스틱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고 TV도 시청할 수 있다. 욕실이나 휴게실은 공용이다. 1979년 2월 오사카에 처음 출현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역 부근 여성 전용 ‘○○○원룸고시텔’에 들어섰다. 1.5m 폭의 복도를 따라 철문이 즐비하다. 관리인 김모씨가 그중 하나를 열었다. 6·6㎡(2평) 남짓한 작은 방. 한눈에 가재도구가 들어온다. LCD TV·침대·책상·의자·책장·옷장·냉장고(용량 80L), 그리고 화장실 겸 샤워실. 천장엔 조명등·스프링클러·연기감지기·스피커가 붙어 있다. 책상 위에는 인터넷 전용선으로 연결된 노트북이 놓여 있다. 각 방의 출입문에는 전자자물쇠가 달려 있고 복도 등은 폐쇄회로TV가 감시 중이다. 김씨는 “방과 방 사이의 벽을 벽돌로 시공해 방음이 잘 되고 화재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인 독서실서 샤워·화장실 갖춘 고시텔·원룸텔로

70년대 후반 등장한 ‘토종’ 주거공간
관리실 옆에는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탁실·건조실·다림방·주방·휴게실도 있다. 주방에는 밥·라면·김치·양념·커피·녹차 등이 준비돼 있다. 모두 공짜다.

김씨는 “하루 세 끼를 여기서 다 해결할 수 있지만 실제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냉온수기·전자레인지·김치냉장고·토스터 등 주방기구도 구비돼 있다. 월세는 창문이 실내 쪽으로 난 방은 40만~45만원, 창문이 외부로 나있으면 45만~70만원이다. 2인실은 10만원이 추가된다. 보증금·관리비·인터넷사용료가 없다. 월세만 먼저 내면 입주할 수 있다. 2만5000~3만5000원이면 하루 단위로 이용할 수 있다.

이게 요즘 도심 곳곳에 들어서는 ‘초미니 원룸’, 바로 고시원이다. 이름도 ‘○○고시텔’ ‘○○원룸텔’ ‘○○레지던스’ ‘○○하우스’ 등으로 다양해졌다. 고시원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진화한 결과다. 모두 70년대 후반 한국적인 토양에서 등장한 고시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시원은 1976년 서울대 인근 관악구 신림9동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신림동 지역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사법시험과 행정·외무고시 등 각종 국가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이 정보를 교환하고 스터디그룹을 만들던 수험생 거주지였다. 당시 고시원은 초미니 기숙사형 주거공간이었다. 수험생들은 한때 깊은 산속의 암자나 절을 찾았다. 그러나 정보교환과 토론에 유리한 도시형 학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암자나 절은 외면 받기 시작했다. 대신 고시원이 떴다.

신림동에서 시작된 고시원은 침대와 책상을 갖춘 1인 독서실 형태였다. 그러다 샤워실을 갖춘 고시텔로, 고시텔은 다시 화장실까지 갖춘 원룸텔로 진화했다. 주거기능이 강화된 고시텔은 86년께부터 신림동 밖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봉천동·사당동뿐 아니라 대학가 곳곳으로 확산했다. 고시생뿐 아니라 도심에서 거주하는 회사원, 외국에서 잠시 입국한 사람, 사업차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 방학을 이용해 공무원시험이나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상경한 사람, 공장근로자 등으로 다양해진다. 저렴하게 주거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주로 이용했다. 특히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진 뒤 저렴한 주거공간을 찾던 서민들이 고시원으로 몰려들었다. 장사가 잘되자 상가나 주택가로도 진출했다. 독신자·이혼자 등 1인 가구의 증가로 소형 주택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데 비해 공급은 주차장 기준 강화로 오히려 줄어든 때였다. 이게 오피스텔·다가구 등을 대체하는 고시원의 인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금은 어엿한 도시형 주택의 하나가 됐다. 고시원의 장점은 보증금이나 전기·수도료 등 추가비용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1개월 단위로 사용계약만 하면 언제든지 입주할 수 있다. 가구 등 집기 일체가 제공된다. 본인의 옷가지와 기본적인 생활도구만 옮겨오면 된다. 정부가 도입한 도시형 생활주택 중 기숙사형 주택은 고시원이 진화한 개념이다.

서울 시내에 현재 운영 중인 고시원은 초기 형태부터 가장 진화한 원룸형까지 다양하다. 각 시대의 고시원이 모두 모여 있다. 반 평 남짓한 방에 대각선으로 누워서 잠을 자야 하는 초소형 저가 고시원부터 13㎡ 안팎의 비교적 넓은 공간에 화장실과 샤워실, 방음과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60만원대 원룸형까지 있다. 저가 고시원은 자취생이나 취업준비생,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월 20만원대도 나와 있다.

올 7월 소방 등 법적 기준 마련
전국적으로 고시원이 몇 군데나 되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한국고시원협회 김두수 홍보이사는 “전국적으로 7000여 곳이 영업 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지역만 2만5000여 곳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고시원은 규율하는 법이 없어 사실상 불법 영업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올 7월 16일 건축법 시행령 별표 개정으로 고시원 설치는 2종 근린생활시설 건축물의 하나로 허용됐다. 이에 따르면 고시원은 독립된 주거의 형태를 갖출 수 없다. 각 방에 개별 화장실, 샤워실, 세면기는 설치할 수 있으나 취사기구가 있는 주방은 설치할 수 없다. 주방은 공용으로 만들 수 있다. 규모는 해당 용도로 쓰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1000㎡ 미만이어야 한다. 단 상업지역인 경우는 1000㎡ 이상도 가능하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른 다중이용업 중 고시원업은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이다. 소방법상 고시원은 ‘다중이용시설’로 각 실별 스프링클러, 비상탈출구(전실), 외부 소방 계단, 방화문, 소방 유도등, 연기 감지기 등을 갖춰 소방완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고시원 사업이 합법화됐지만 여전히 몇 가지 문제점이 남아 있다. 방과 방 사이 칸막이를 합판으로 한 옛 고시원 건물들은 화재 때 큰 피해가 우려되지만 당장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상업시설 밀집한 퇴근길이 요지
고시원 사업을 하는 데 적합한 곳은 접근성이 좋은 역세권이나 젊은 층이 많은 대학상권이다. 역세권에서 도보로 5분 이내 이동할 수 있는 곳이 가장 좋다. 굳이 대로변일 필요는 없다. 대로변은 임차 비용이 비싸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좋다. 출근할 때는 사람들이 여유가 없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임대업 역시 출근길보다 퇴근길에 잘 보이는 곳이 요지다. 주변에 상업시설이 집중된 곳이 좋다. 20~30대 싱글족들은 쾌적한 주거환경보다 여가생활이나 퇴근 후 사교모임에 많이 참여하므로 주변에 상업시설이 밀집한 곳을 좋아한다. 운동, 취미 생활, 어학원, 외식업 등이 어우러진 상권이 유리하다. 이들은 전용 주거지역처럼 절간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시원은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해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옆 방의 소음이 다 들리고 위생 상태도 엉망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렇지만 시설 기준이 강화되면서 해법이 등장하고 있다. 고시원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초대형 고시원 사업 투자를 지원해온 리딩증권 정명수 이사는 “월세 100만 원에 청소·세탁·식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1인 주거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고시원 사업은 3억원 이상이면 입지가 좋은 곳의 경우 연 20%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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