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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만큼 육신의 양식도 중요, 빨간 냄비는 사랑의 상징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은 “자선냄비 성금을 보면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신동연 기자
첨예한 갈등이 없는 시대는 없었다. 지난 세기에는 공산·무신론자들과 민주·유신론자들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민주·자본주의 진영이 이기는 데 기여한 군대로는 미군·한국군도 있지만 기독교에선 구세군이 있었다.

영혼의 리더<35> 구세군대한본영 전광표 사령관

공산주의는 부의 분배를 이야기했다. 1865년 영국에서 감리교 목사 출신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구세군은 ‘영혼의 양식’과 ‘육신을 위한 양식’을 나누는 게 모두 중요하다고 봤다. 부스는 거리 전도와 사회 복지활동에 나섰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실직자들에게 믿음과 빵과 비누를 나눠주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군대식으로 조직된 구세군에서는 신학교를 사관학교, 성직자는 사관, 신자는 병사·군우라고 부른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등장했다. 구세군 여성 사관인 조셉 매피는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구세군의 빨간색 자선냄비는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해 흘린 피와 사랑을 상징한다.

1907년 在일본 유학생 요청따라 한국 선교
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한 것은 1928년이다. 올해 목표액은 40억원이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사랑의 자선냄비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지난해 선교 100주년을 맞은 한국 구세군은 9개 지방본영(교구)에 274개의 영문(교회), 719명의 사관, 12만여 명의 병사가 있는 교단으로 성장했다. 구세군은 또한 병원·고아원·양로원·육아원·학교·푸드뱅크 등 전문 사회복지 시설 152개와 교회 병설 사회사업 시설 170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구세군은 도시보다는 농어촌 선교와 봉사활동에 주력했으며 어린이·여성·노인·장애인·노숙인 등의 약자뿐 아니라 95년부터 북한·중국·몽골·러시아·필리핀의 심장병 어린이 수술지원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한국 구세군을 이끄는 지도자는 전광표(68·사진) 사령관이다. 주교나 감독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 사령관의 계급은 군대로 치면 중장인 부장이다. 전 사령관은 구세군사관학교·국제사관대학(런던)·동양사관대학(마닐라)에서 공부했다.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회장을 역임한 전 사령관은 기독교장기·재산기증협회 이사장, 한국에이즈예방재단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부인인 유성자 한국 구세군 여성사업총재는 같은 사령관 직책으로 전 사령관과 함께 구세군을 이끌고 있다. 서울 정동에 있는 구세군 본영에서 전 사령관을 14일에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뮤지컬·영화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의 배경이 구세군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내용이 구세군의 선교나 사회 봉사 정신과 닿아 있습니다. 구세군 청년들이 뮤지컬로 ‘아가씨와 건달들’을 공연한 적도 있죠.”

-구세군은 음악, 특히 밴드가 강합니다.
“한국에도 브라스 밴드(brass band)가 많이 있습니다. 역사도 길죠. 한국전쟁 때 고아원 밴드의 악대원 17명이 납북되기도 했습니다. 평양에 갈 때면 지금 생존해 있을 악대원이 구세군 복장을 알아보고 나를 부를 것만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뭉클합니다.”

-맥도날드를 세계적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키운 레이 크록의 세 번째 부인이 구세군에 거금을 기부해 화제가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국 기부 문화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구세군입니다. 2004년에 존 크록 여사가 16억 달러를 구세군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구세군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희망에 따라 구세군은 8개의 지역 사회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마을 같습니다. 주민들이 농구 코트·수영장·치유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들을 기본 요금만 내고 이용합니다. 구세군은 기쁜 마음으로 적자 운영을 합니다. 한국에도 이런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전쟁 땐 밴드 악대원 납북 아픔
-구세군 하면 자선냄비를 주로 떠올리지만 1년 내내 기부를 받습니까.
“네. 기부자들은 사용 목적을 말하기도 하고 구세군에 일임하기도 합니다. 전 세계 구세군의 모토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구세군은 사회복지 활동에 제도적으로 전념하고 있습니다. 비율을 꼭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와 사회복지에 절반 정도씩 헌신합니다. 구세군 본부 내에도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죠. 모든 구세군 교회에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병설 시설이 있습니다. 고맙게도 정부와 많은 기업들이 구세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은 뿌리가 같은 성공회·감리교와 사이가 각별합니까.
“군세군 창립자인 부스는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목사님들은 ‘우리가 큰집’이라고 하죠. 성공회에서는 ‘무슨 소리냐 우리가 큰집이다’라고 합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는 성공회 신부였습니다. 감리교·구세군·성결교회의 신학은 웨슬리 신학입니다.”

-구세군을 하나의 보편(universal) 교회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면 됩니까.
“그렇죠. 모든 교회가 이웃 사랑을 하고 있으나 다만 우리는 사회 복지·봉사 활동의 비중이 크고 제도화돼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남녀평등을 구세군의 특징으로 듭니다.
“구세군에는 여성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철저한 남녀평등을 주창했기 때문입니다. 구세군은 부부가 함께 신학 공부를 하고 같이 사관이 됩니다. 계급도 같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부장으로서 여성 사업 총재 일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구세군과 특별히 가까운 해외 구세군 교회가 있습니까.
“전 세계 구세군은 하나이기 때문에 어디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구세군은 119개 나라에서 175개 언어로 선교·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한국 구세군의 모토는 ‘공감의 새 역사를 창조하자(행 2:40~41)’였습니다. 2010년 모토는 무엇입니까.
“‘청소년에게 희망을’로 정했습니다. 청소년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특별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저출산 문제도 있지만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로 청소년의 교회 출석률이 줄고 있습니다. TV나 인터넷이 없던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청소년들을 교회에 인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세군 조직이 군대와 비슷하다는 데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까.
“구세군은 마귀·사탄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통일적 명령체계로 선교·사회복지 활동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서죠. 유니폼은 행동을 제약하기 때문에 자연히 좋은 생각,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장교와 사병들에게 구세군 선교가 잘 되지 않을까요.
“군목(軍牧) 선교는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관 숫자도 많아지면 연구해볼 만합니다.”

-‘몽골 개전(開戰)’은 무엇입니까.
“구세군의 용어가 준군대식이라 개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몽골 선교가 지난해에 시작됐습니다. 선교가 아직은 초기 단계입니다.”

자선 냄비에 제주행 비행기 티켓 들어 있기도
-한국 구세군이 몽골에 들어가면 다른 나라 구세군은 안 들어갑니까.
“구세군은 하나입니다. 갈등이 없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구세군 교회를 세웠는데 수년간 활동해보니까 한인 교인이 10%, 러시아인 교인이 90%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동유럽 구세군에 인계했습니다. 그쪽에서 하는 게 다 낫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쪽 좋은 일만 시킨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구세군 정신에 따르면 주는 게 받는 것보다 의미가 더 큽니다.”

-구세군은 평신도들이 해외 교회 개척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요.
“대체적으로는 사관들이 개척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관과 평신도가 함께 선교지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1907년 윌리엄 부스의 일본 순회 강연을 들은 조선인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선교가 시작됐습니다. 1908년 영국 구세군에서 허가두(Hoggard) 사관 일행을 파송했습니다.”

-북한의 구세군 상황은 어떻습니까.
“분단 전 북한에는 100여 개 구세군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구세군 교회가 있었던 곳 중 77개 주소가 현재 확인됐습니다. 빨리 북한 교회를 재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 선교를 위해 일하니까 세계 구세군은 남북을 이미 하나로 봅니다.”

-올해 자선냄비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40억원입니다. 지금이 어려운 때라 도울 일이 더 많고 외환위기 등 과거 어려운 때에도 성금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한 목표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우리 민족이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액을 작은 돈으로 감아서 냄비에 넣는 분도 있죠. 자선냄비는 남녀노소·빈부귀천 차이 없이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모이는 곳입니다.”

-미국의 경우 금화를 넣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금 열쇠를 냄비에 넣은 분도 있습니다. 자선냄비에서 제주행 비행기 티켓, 문화상품권, 식당 쿠폰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올해는 자선냄비에 참여하고 싶어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자선냄비’인 이동식 모금차량도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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