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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서 곡괭이 든 축구선수 보고 “운동장에 있을 사람들이…”

1987년 프랑스 솔락사팀과 포항제철팀 간 친선 축구경기에 앞서 시축하고 있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중앙포토]
박태준 회장은 축구에 관한 한 언제나 선구자였다.

박태준의 축구 사랑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오버래핑(수비 선수가 전방으로 달려나가 공격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축구용어를 처음 전파하고 외국인 선수를 처음 수입한 것도 그에 의해서였다.

박 회장은 원래 야구를 좋아했다. 축구를 좋아한 것은 대한중석 사장이 된 1964년부터였다. 장인(匠人)을 존중하는 박 회장은 영월의 상동광업소를 시찰하다 함흥철·한홍기·조윤옥·김정석 등 당대 최고 축구선수들이 곡괭이를 들고 막장으로 가는 모습에 놀라 “운동장에 있을 사람들이 웬일들이냐”며 서울에 축구단 숙소를 마련, 축구에 전념토록 했다.

박 회장은 강원도 대표에 불과하던 대한중석이 최강의 제일모직을 연파하며 전국을 제패하면서 축구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해외 출장 때는 축구관련 책자를 꼭 챙겼고 73년 포항제철 축구팀을 창단하고는 김용식 감독, 한홍기 코치에게 영국에서 발행하는 축구전문잡지를 정기구독토록 했다. 오버래핑이라는 용어가 국내에 보급된 것이 이즈음이었다.

박 회장의 장인 존중 정신은 김호·김정남·이회택·이차만·박성화·조병득·조광래·최순호·황선홍·홍명보 등 최고 선수들이 모두 포항 출신이라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박 회장은 83년 외국인 선수 1호인 세르지오와 호세를 브라질에서 영입, 6월 26일 국내 프로리그에 첫선을 보였고 85년 이회택을 코치로 영입, 스타 감독을 만들기도 했다.

포철을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환시키면서 자생력을 강조했던 박 회장의 축구 선구자로서 큰 결실을 본 것이 90년 11월 10일 개장한 국내 최초의 전용구장이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활약이 기대되던 ‘발칸의 마라도나’ 하기를 아느냐고 간부회의에서 던졌던 질문은 지금도 축구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한국 축구계에서 하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기는 4년 뒤인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 비로소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고 박 회장의 축구 사랑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었다. 출범 2년째인 84년, 포철은 슈퍼리그 개막을 이틀 앞둔 3월 29일 축구협회가 LA올림픽 최종 예선전(4월 17~29일)을 이유로 대표선수의 발을 묶자 슈퍼리그 개막전 출전을 보류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포철은 고준식 사장 명의로 된 이 공문에서 ‘축구 중흥과 국가 체육발전을 위해 우수선수 발굴 육성이 축구단 운영의 근간이나 축구협회의 일관성 없는 선수 관리로 방향을 잃게 됐다’는 지적과 함께 최순호·박경훈·이길용 등 대표선수의 슈퍼리그 출전 허용, 대표선수 불출전으로 인한 경기력 저하로 홈팬 및 직원들의 사기저하 우려, 축구협회의 프로팀 운영계획 부재 등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이 같은 내용은 박 회장 뜻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이틀 전 축구협회 고위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축구행정에 20년 동안 속아왔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프로축구를 정착시키고 중흥을 꾀하겠는가”라고 개막전에 대표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으려는 축구협회의 소아병적 발상을 꼬집었다.

바쁜 가운데서도 포항전용구장에서 사진 찍기에 선뜻 응했던 박 회장. 기분 좋을 때면 오른 손으로 코를 만지는 습관을 갖고 있는 박 회장은 축구와 함께 할 때 가장 많이 코를 만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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