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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기술학교 설립, 8년 만에 3년제 대학으로

투덕기술공업전문대와 인연이 깊은 4남매. 왼쪽부터 토아(막내), 쯕(오빠), 투이(장녀), 미(차녀). 이 중 쯕과 투이는 졸업 후 한국계 회사에서 통역으로 일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옛 사이공)시 인근의 투덕기술공업전문대학. 한국인이 베트남에 세운 첫 대학이다. 1996년 설립 당시 명칭은 ‘베트남·한국 정해기술학교’였다. (사)정해복지재단이 20억원의 설립 자금을 조달해 붙여진 이름이다. 학교는 베트남 전쟁 고아와 라이따이한 2~3세, 장애인, 불우 청소년 등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전문기술교육을 시켜왔다. 첫해 120명의 신입생을 모집, 전원 수업료 면제에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2년제로 출발했다. 학교는 2004년 3년제가 됐고 지금은 주간 2000명, 야간 3000명이 다니고 있다. 2012년에는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한다.

베트남서 꽃핀 이충범 변호사의 교육 나눔

투덕대와 4남매가 인연, 똥 민 쯕 가족
지난 11월 말 투덕대학 교정에선 제12회 졸업식이 열렸다. 올해도 700~800명의 졸업생이 참석했다. 이 중에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4남매가 있었다. 오빠인 똥 민 쯕(24)과 누이동생들인 똥 티 투이(22)·똥 티 미(20)·똥 티 낌 토아(18)였다. 2남3녀 중 큰 오빠를 제외한 이들 4명은 모두 투덕대의 졸업생이거나 재학생이다.

5남매의 아버지는 호찌민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마을에서 목수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부업으로 식용 비둘기를 길러 시장에 내다 판다. 차남인 쯕은 고교를 졸업한 2003년 가정 형편을 생각해 4년제 대학 진학 대신 2년간 전문기술을 가르치는 투덕대를 찾았다. 선반학과로 진학과 동시에 이 대학 부설 외국어센터에서 야간에 개설한 한국어 강좌도 듣기 시작했다.

쯕은 “내가 입학할 때는 학교 운영비나 기숙사비, 수업료가 모두 면제였다”며 “야간 한국어 강좌는 수익자 부담이어서 한 달에 6만 동(약 4000원)가량을 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원어민 강사가 있어선지 투덕대 외국어센터의 한국어 강좌는 영어 다음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쯕이 1학년을 마친 2004년부터 학교 측은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투덕대 명예이사장인 이충범(56·사진) 변호사는 “설립 초기부터 재단이 일정 기간 학교를 운영한 뒤 호찌민시에 기부하기로 약속했었다”며 “이후 시가 운영하면서 등록금을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쯕은 “다행히 나는 성적 우수자로 뽑혀 정해복지재단이 주는 장학금을 받아 충당했다”고 말했다.


쯕은 2005년 말 졸업 후 한국계 기업인 BJ 플랜트(봉제설비 제조 및 설치 회사)에 취직, 한국어 통역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다른 동기들보다 배가 많아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며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있다”고 했다.

셋째 투이는 2005년 초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작은 오빠의 강력한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투이는 재작년 졸업 후 쯕의 소개로 한국계 회사인 세영EMB의 현지법인인 ‘EMB비나’에 경리 겸 통역요원으로 입사했다. 그녀는 최근 4년제 대학인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 야간 과정에 편입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투이는 “한국계 기업의 성과 중심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복리후생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베트남 청년들에게 한국 기업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했다. 투이는 “나 역시 한국 회사에서 받은 초임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훨씬 많았다”고 소개했다.

“한국기업 임금 높아 친구들이 부러워해”
쯕과 투이 남매는 한국어 통역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둘 다 웃지 못할 실수담이 있었다.

(쯕) “처음 통역 보조로 들어갔을 때였다. 한국인 과장님이 일요일 특근을 하라고 한 지시를 결근하라는 걸로 잘못 이해했다. 다음 날 한 명도 출근하지 않자 과장님이 집에서 쉬고 있던 나를 불러 호되게 나무랐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투이) “며칠 전 회사 사장님이 ‘점심에 후식으로 먹게 수박을 사오고, 먹고 남은 수박씨는 모아서 주방 아줌마에게 전달하라’고 하셨다. 나는 사장님께서 직원들이 수박씨를 뱉어 버리는 것을 싫어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씨 없는 수박을 사오라고 주방아줌마에게 전했다. 그날 따라 씨 없는 수박이 없어서 수박을 못 샀다. 후식으로 수박이 나오질 않자 사장님이 불러 그대로 얘기했더니 어이없어 했다. ‘수박씨를 쓸 데가 있어서 버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창피해서 혼났다.”


쯕은 “지난달 열렸던 ‘국제 섬유전시회’에 우리 회사도 기계를 전시했는데, 현장에서 내 설명을 들은 고객이 납품계약을 즉석에서 체결했다”며 “사장님이 통역을 잘했다고 칭찬해 기뻤다”고도 했다.

넷째 미는 쯕과 투이의 도움으로 4년제인 호찌민 국립대 경영학과에 진학, 현재 3학년생이다. 미는 재작년부터 투덕대 외국어센터에서 한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 미는 “처음엔 영어만 배우다가 오빠와 언니가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듣고 시작했는데 배울수록 재미있다”고 말했다.

막내 토아는 올해 회계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다. 투덕대에는 내년 9월 한국어학과가 신설된다. 지금처럼 외국어센터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규 과목이 된다는 것이다. 토아는 “내년에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하는 관광학과로 전과하거나 아예 한국어학과로 전과할지를 심각하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투덕대 졸업생 중 라이따이한 3세인 응우옌 비엣 황(29)은 한국으로 유학 와 있다. 황은 지난해 5월 대구의 영남이공대 초청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해 9월 투덕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해 1년간 책 표지 디자인을 배우고 한국에 온 것이다. 현재 영남이공대 국제교류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내년에는 컴퓨터정보계열 학과에 편입학 한다. 황은 컴퓨터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는 게 장래 희망이다.

에선 실패만, 교육에서 보람”
투덕대 설립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이충범 변호사는 87년 국내외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정해복지재단을 세웠다.

“90년대 초반 재단에서 베트남에 교육봉사를 하는 목사님을 지원하러 갔는데 그 목사님이 선교 활동을 하다가 적발돼 학교가 문을 닫은 겁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죠. 92년부터 4년간 준비해 내가 5억원을 내고 대우 김우중 당시 회장으로부터 기자재를 지원받고 자선디너쇼 수익금 등을 모아 96년 2년제 대학의 문을 연 겁니다.”

이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설립 초기엔 재단 측에서 학생들에게 매달 30달러씩 용돈도 줬다”고 소개했다. 자녀들이 공부하러 가는 바람에 돈벌이가 없어진 부모들이 학교를 안 보내려 해서였단다.

이 변호사는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은 일이지만 교육을 통한 봉사가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던 게 옳았던 듯하다”고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투덕대 졸업식에 명예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 변호사는 3000달러를 장학금으로 수여했다. 올해 신입생 50명이 각각 100만 동씩을 받았다.
그는 “정치를 통해 사회에 큰 도움을 주려 했으나 여러 번 실패만 했다”며 “그게 안 돼서 교육사업으로 눈을 돌렸더니 더 보람찬 세계가 펼쳐지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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