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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골프의 뿌리를 보다

까마귀 떼가 머셀버러 올드 코스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클럽하우스 건물 벽에 이 마을에서 배출한 오픈(브리티시 오픈) 챔피언 다섯 명의 얼굴 부조가 장식돼 있었다. 러시모어에 있는 미국 대통령 조각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까마귀 울음 속에서 본 챔피언들의 인상은 강렬했다.

성호준 기자의 스코틀랜드&웨일스 투어 에세이 ⑪ 머셀버러 올드 코스

가장 오래된 골프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머셀버러 올드코스에서 프로 선수들이 옛날 클럽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뒤쪽 흰색 건물이 골프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인 미세스 포맨의 술집이다. 작은 사진은 19세기에 쓰던 특수 목적 아이언들.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파34에 2874야드인 9홀 코스다. 경마장 안에 있고, 시가 운영하는 퍼블릭 코스이며 그린피가 2만5000원 정도다. 과거 서울 뚝섬 경마장에 있던 골프장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머셀버러는 가장 오래된 코스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오픈 챔피언십을 5차례 개최한 곳이다.

마침 히커리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었다. 히커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골프 클럽의 샤프트로 쓰이던 나무다. 싸고 강하며 탄성이 좋다. 프로선수들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니커보커 바지에 긴 스타킹 등 예전의 골프 복장을 차려입고 히커리 클럽으로 대회를 치렀다.

나도 히커리 드라이버를 쳐봤다.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맞히지 못해 슬라이스가 심하게 났다. 거리는 150야드 정도였다. 진동에 손이 얼얼했다.

대회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오픈 경기였으나 경기에 방해가 될까봐 끼워 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대신 폼은 잡아봤다. 플랫 캡을 쓰고 옛날 클럽이 담긴 낡은 가죽 캐디백을 어깨에 멨다. 150년 전 이곳을 누비던 프로 골퍼가 된 듯했다.

홍합마을이라는 뜻의 머셀버러는 에든버러 코앞이다. 스코틀랜드 최고 귀족과 부자들이 이곳에서 모여 골프를 즐겼다. 한때 머셀버러를 홈 코스로 쓰는 클럽이 60개나 됐다. 골프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명문 클럽들은 요람에서 뛰쳐나가 넓고 폐쇄적인 코스로 옮겨갔다. 장비가 발전하고 18홀이 코스의 표준이 되면서 경마 트랙에 둘러싸인 9홀 코스는 답답했을 것이다.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썼다. 나도 그렇다. 70여 년 된 오거스타 내셔널과 500년이 넘은 머셀버러 중 어디에서 플레이하겠냐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단연 전통이다.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코스에서 과거의 클럽으로 대회를 연다는 아이디어는 멋졌다. 히커리 챔피언십을 연 라이오넬 프리드먼은 “프로선수들이 머셀버러에서 경기한 것은 1906년 이후 103년 만이다”고 말했다. 히커리 챔피언십에서 클럽은 6개로 제한된다. 드라이버 하나와 퍼터 하나, 아이언 4개다. 요즘 공을 써도 된다.

프로선수들도 히커리 샤프트로 공을 멀리, 똑바로 치지 못했다. 나를 안내해준 머셀버러 클럽의 전 캡틴 앤디(핸디캡 4)는 “요즘 드라이버로 270야드 정도, 옛날 드라이버론 잘해야 200야드 정도 친다”고 말했다. 더 어려운 것은 쇼트게임이다. 대회에 참가한 앤드루는 “옛날 클럽은 페이스 그루브가 적어 스핀이 걸리지 않아 컨트롤이 힘들다”고 말했다. 내가 따라다닌 프로 2명 모두 146야드 파3인 1번 홀에서 보기를 했다.

2번 홀의 이름은 무덤이다. 땅을 파 보면 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1547년 핑키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에 학살당한 스코틀랜드 군 전사자를 이곳에 묻었다. 전쟁 준비 대신 골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런 것으로 전해진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군대에서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청교도 혁명의 주역인 올리버 크롬웰은 스코틀랜드 왕당파를 제압하려고 머셀버러에 주둔할 때 골프의 유혹을 이겼다.

메리 여왕이 남편이 살해된 며칠 후 골프를 즐긴 코스도 이곳으로 추정된다. 메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되어 런던으로 가던 중 골프를 친 곳도 이곳이다. 머셀버러엔 거대한 뿌리가 있다.

클럽하우스에 조각되어 있는 챔피언들은 골프의 급성장기인 19세기 후반 골프 영웅들이다. 가운데 있는 수염이 치렁치렁한 사내가 초대 대회를 포함, 4차례 오픈 챔피언에 오른 윌리 파크다.

박세리·박지은 등 박(PARK, 박세리는 PAK으로 쓴다)씨들은 한국 골프에 큰 획을 그었는데 스코틀랜드의 PARK 가문도 대단하다. 클럽하우스 부조 주인공 5인 중 3명이 파크다. 윌리 파크의 동생 멍고, 아들 윌리 파크 주니어(2차례 우승)도 오픈 챔피언이다.

윌리 파크는 서부영화의 악당처럼 와일드했다. 경쟁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장타를 쳤고 “재미로 골프를 한 적이 없다, 상대를 박살내기 위해 한다”고 말하곤 했다. 윌리는 당시 최고수였던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의 프로 앨런 로버트슨에게 도전했다. 신문에 대결을 공개 제안하는 광고도 냈다.

그래도 답이 없자 윌리는 세인트 앤드루스로 찾아갔다. 로버트슨의 골프 용품 가게 앞에서 샷을 때리며 무력 시위를 했다. 그의 샷이 얼마나 강했는지 총소리가 났다고 전해진다. 세인트 앤드루스 전역이 그의 샷에 가슴을 졸였다. 그러면서도 혹시 있을 싸움 구경을 놓칠까 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법자가 찾아와 마을을 뒤집어 놓고 부녀자와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광장에서 서로 등을 대고 열 걸음 걸은 후 누가 빨리 권총을 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거다. 그러나 로버트슨은 커튼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그로선 새파란 도전자와 싸울 이유가 없었다. 교활한 모사였다. 일부러 긴 클럽을 꺼내 들고 작게 스윙해 상대가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바람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매치 상대를 속이는 사람이었다.

로버트슨은 꾀를 냈다. 100년 후 복싱 프로모터인 돈 킹도 써먹은 수법이었다. 자신 밑에서 도제로 일하던 톰 모리스를 이기면 도전에 응해주겠다고 한 거다. 윌리만큼이나 모리스도 로버트슨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첫 대결은 파크가 이겼다. 둘은 복수전에 재복수전을 거듭하면서 평생 치고받았다. 로버트슨은 구경만 하다가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묘비에 ‘무패의 전사’라고 새겼다.

머셀버러 스타트 하우스에선 옛날 골프 클럽을 빌려준다. 헤드 페이스에 구멍이 뚫린 아이언도 있다. “저항을 줄여 캐주얼 워터 등에 들어간 공을 칠 때 쓰는 워터아이언”이라는 설명이다. 요즘 한국에서 발명했다고 광고가 나오는 갈퀴형 아이언도 실은 클래식 클럽이다. 레이크(rake) 아이언으로 부르며 러프나 벙커에서 치던 것이었다. 그때도 불법 클럽이었다. 숟가락 모양으로 파인 작은 헤드의 아이언도 있다. 마차바퀴에 파인 홈에 들어간 공을 칠 때를 위한 것이다. 과거 우드가 아이언 역할을 했고 아이언은 트러블샷에만 쓰는 웨지였다.

파4인 4번 홀 이름은 미세스 포맨의 선술집(Mrs Forman’s)이다. 풋 웨지(혹은 레더 웨지) 때문에 골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주점이 됐다. 톰 모리스가 윌리 파크와 경기하다 갤러리의 풋 웨지(발로 공을 차는 것)에 당하다 못해 경기를 포기하고 이 술집에서 목을 축였다고 한다. 술집은 4번 홀 그린 뒤에 남아 있다. 대낮이었지만 역사적인 술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내가 맛본 안주는 머셀버러 올드 코스의 거대한 뿌리였다.



취재협조 영국 관광청, 스코틀랜드 관광청,
웨일스 관광청 www.visitbri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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