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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랜드, 그 위에 발레의 과거와 미래가 있다

1 스티븐 맥래이 & 미야코 요시다, 영국 로열발레단, 사진 Johan Persson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12월이면, 전 세계 주요 도시는 크리스마스 랜드로 변한다. 크리스마스 랜드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하 호두)의 무대를 말한다. 이맘때가 되면 전 세계 발레리나들은 ‘호두’ 공연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서울은 물론 뉴욕·런던·모스크바 등 세계의 발레 애호가들은 ‘호두’ 티켓을 예매하고, 막이 오르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국내에서 ‘호두’ 전막이 초연된 것은 32년 전인 1977년. 아리마 고로(有馬五郞)의 안무에 홍연택 지휘로 국립발레단이 첫선을 보였는데, 당시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박혜련(클라라 역)과 데뷔 1년 만에 주역으로 발탁된 민병수(왕자 역) 등이 출연했다.

서울서 뉴욕,런던,모스크바까지, 호두까기 인형의 계절

2 강예나 & 이현준, 유니버설발레단
그러나 발레 ‘호두’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시점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8년 한동인의 서울발레단에 의해 시공관에서 막이 올려졌다. 전막 공연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나라의 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선보였다. 연주는 고려교향악단이 맡았다. 호프만의 원작 동화에 차이콥스키가 곡을 붙이고, 이바노프와 프티파가 대본과 안무를 담당한 ‘호두’는 1892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됐으니, 러시아 초연 이후 56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미국에서 뉴욕시티발레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가 ‘호두’를 놓고 서로 경쟁하듯, 국내에서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 경쟁적으로 연말을 장식해 왔다. 올해에는 제임스 전 감독과 김인희 단장의 서울발레씨어터, 이원국발레단은 물론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내한 공연까지 가세해 12월 ‘호두 시즌’을 달구고 있다.

3 니콜라이 츠스카리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사진 A. Brakgnikov
국립발레단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의 ‘호두’(12월 18~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를 올려 왔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그리고로비치가 2000년 국립발레단에 초청돼 안무한 작품이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해 수석무용수를 맡고 있는 김지영이 마리 역을 맡는다. 9년 전 유리로부터 안무 지도를 받았던 김지영은 “체력이 강해야만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고, 다른 버전에 비해 스펙터클하고 특히 그랑파드뒤에서 기교적으로 어려운 동작이 많은 만큼 볼거리가 많다”고 말한다.

4 미국 뉴욕시티발레단, 사진 Paul Kolnik5 1977년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초연 무대6 국립발레단의 지난해 공연 사진, 김리회 & 장운규
올해는 마리/왕자 역에 김지영/김현웅, 박세은/이영철, 박슬기/이동훈, 김리회/정영재 등 국내 정상급 스타들의 연기 외에도, 러시아에서 직접 제작해 공수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어떤 매직을 연출할 것인지 벌써 궁금하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12월 22~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는 ‘제야 공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공연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제야의 종소리를 극장에서 맞이하도록 했다.

올해에는 특히 ABT 소속의 발레리나 서희와 수석무용수 마르셀로 고메즈가 출연해 관객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의 권위 있는 무용 저널에 ‘프리마가 탄생했다’는 기사와 함께 표지 모델로 소개되었던 서희는 “11살 때 발레를 시작한 이후 매년 12월이면 어디서든 ‘호두’ 무대에 섰다. 올해는 국내에서 춤을 출 수 있어 더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유니버설의 ‘호두’는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한 작품인데,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재구성하면서 어린이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버전과 달리 앙증맞은 꼬마 발레리나들이 대거 출연하기 때문이다. 클라라/왕자 역은 황혜민/엄재용, 강예나/서동현, 안지은/이승현 등 국내 정상급 스타들이 출연한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는 연말 인기 문화 상품으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국립발레단 ‘호두’의 최근 유료 관객은 95%가 넘는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는 86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 23년간 연속 매진이다. 총 560회 공연에 52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12월 ‘호두 시즌’이 발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해외로 돌려보자. 먼저 ‘호두’의 탄생지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두’는 올해로 118년째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마린스키발레단(전 키로프발레단)의 현재 버전은 2001년 키릴 시모노프가 다시 안무를 한 것인데, 당시 미하일 체미야킨에 의해 무대와 의상도 새롭게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호두’는 거대한 대형 트리와 환상적인 눈송이 장면 연출 등 안무 못지않게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 마린스키발레단은 세계적인 스타 레오니드 사라파노프를 비롯해 나제쥐다 곤차르와 일리야 쿠즈네초프를 크리스마스 랜드의 연인으로 내세운다.

마린스키발레단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볼쇼이발레단의 ‘호두’는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66년 새롭게 안무하면서 프티파의 대본을 대폭 수정했다. 주인공 클라라의 이름을 마리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드로셀마이어는 법률가로, 마리의 아빠는 의사로 직업까지 재설정했다. 올해 볼쇼이의 크리스마스 랜드는 왕자를 맡은 니콜라이 츠스카리제의 은퇴 무대여서 표가 벌써 동이 났다고 한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안드레이 우바노프 등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스타들이 니콜라이의 은퇴 무대를 빛낸다.

미국의 뉴욕시티발레도 볼쇼이 버전처럼 여주인공이 마리다. 마법사의 매직으로 3m짜리 트리가 12m로 커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에 비해 꼬마 발레리나 50명이 넘게 출연하는 ABT의 ‘호두’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코믹하게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뉴욕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 연말의 ‘호두’ 이야기로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는 ABT와 뉴욕 시티발레단이 내년부터 서로 다른 해석의 ‘호두’를 올린다는 기사를 올렸다. ABT가 전통의 뉴욕시티발레단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뉴욕시티발레단은 54년 이후 매년 연말 링컨센터에서 조지 발란신 버전의 ‘호두’를 공연했다. 필자도 뉴욕대 유학 시절 매년 12월 뉴욕시티발레단의 ‘호두’를 보았다.

이에 대한 ABT의 도전은 의욕적이다. 93년부터 케빈 맥켄지가 안무한 ‘호두’를 공연해온 ABT는 후원회 부회장인 억만장자 코쉬로부터 30억원을 지원받게 된 것을 비롯, 볼쇼이발레단 전 예술감독인 알렉세이 랏만스키에게 새로운 해석의 안무를 맡겼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 킹’의 무대를 연출한 리처드 허드슨이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하고, 공연장은 브루클린 BAM 극장으로 정해졌다. 미국 양대 발레단의 경쟁에 마크 모리스 무용단은 ‘호두’를 현대적으로 패러디한 ‘더 하드 너트(The Hard Nut)’로 가세할 예정이어서 내년 연말 뉴욕은 본격적인 ‘호두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서는 피터 라이트가 안무한 영국로열발레단의 ‘호두’가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라간다. 영국 ‘호두’는 키로프 버전으로 보다 원작에 충실하다는 평. 영국에 ‘호두’가 소개된 지 올해로 76년째다. 이번 12월 공연은 영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프리마 발레리나 요시다의 마지막 무대라고 해서 런던의 발레 애호가들이 아쉬워한다고 한다.

필자는 국립발레단 ‘호두’에 마리 엄마인 스틸바움 부인 역으로 몇 번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화려한 무대 뒤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젊은 무용수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무용수들은 ‘호두’와 함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하지만 모든 무대의 진짜 주인은 관객이다. ‘호두’와 함께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꿈꿀 수 있는 관객이 진정한 발레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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