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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일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 국내 데뷔 독주회
재키브의 소리는 유난히 날카롭고 선명하다. 브람스에 앞서 연주한 베토벤의 7번 소나타에서 그가 낸 고음은 현악기보다는 관악기의 팡파르에 가까웠다. 마지막 악장인 피날레는 고전주의의 차분함보다는 낭만주의의 자유분방함을 품었다. 기존의 ‘안전한’ 해석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정한 빠른 속도가 거침없이 질주하는 연주 스타일을 빚었다.
쇼팽의 야상곡 또한 나약함에 빠지지 않았다. 감상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그는 현대적인 ‘블루스’에 가까운 쇼팽을 연주했다. 자칫 청승맞게 연주되곤 하는 야상곡이 재키브의 젊음을 통해 되살아났다. 모범적이라 할 수 없어도 새로움에서는 누구보다 앞섰다.
독주회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브람스 3번 소나타에서도 재키브의 해석은 과감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머뭇거림 없이 쏟아냈다. 조금 흥분된 듯한 속도와 감정으로 산뜻한 낭만주의를 만들었다. 거장들이 남긴 기존의 브람스 연주는 고급 세단의 광고 음악으로 어울리지만, 재키브의 브람스만큼은 스포츠카의 CF 음악으로 써야 할 것이다.
연주회에 앞선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재키브는 “노년의 브람스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소나타에 대한 느낌을 설명했다. 재키브는 브람스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해석하기 위해 꼼꼼한 분석을 거쳤다. 브람스의 글과 기록을 관찰했고, 앨범에 들어가는 곡 해설도 직접 썼다.
이처럼 재키브는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특성을 지닌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음악이론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나서야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연주의 학위를 딴 그는 “음악원에만 다녔다면 가질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말했다.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도, 거장의 ‘사단’에 들어가려는 수고도 그는 겪지 않았다. 자신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만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이력이 그의 브람스를 더욱 새롭게 만들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를 평생의 지침으로 삼고 살았다는 브람스는 이러한 재키브가 데뷔에서 선택할 만한 작곡가였다. 성공적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그가 앞으로 다른 작곡가까지 아우르면서 독특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재키브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이 흥미로운 도전 또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