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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바닥 PVC장판 걷어내고 친환경 토판서 소금 캔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과거 부와 권력의 상징이던 소금. 월급을 의미하는 샐러리(salary)도 소금(salarium)에서 나왔다고 한다. 국내에선 1963년 염관리법 제정 당시 ‘광물’로 분류됐다. 불순물이 많이 섞여 식용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천일염은 지난해 3월 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식품’이 됐다. 최근에는 서해안 갯벌천일염을 명품화·세계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영·호남, 경기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등이 의기투합했다. ‘천일염 세계화’라는 단일 목표 아래 지역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남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 풍경. 염전 중앙에서 입구 쪽을 바라본 모습. 멀리 소금창고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비막이 시설(해주)이 있다. 최정동 기자


‘신이 키스한 곳’ 신안군 증도 르포

전남 신안군 증도(曾島). 슬로시티(slow city)의 창시자인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신이 키스한 곳”이라고 극찬한 섬이다. 신안군의 1004개 섬 중 하나인 이곳은 태고의 자연환경을 갖춘 갯벌과 국내 최대의 천일염전이 있다. 2007년 12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8일 오후 1시, 증도 선착장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자 좌우로 광활한 들판이 펼쳐졌다. 140만 평. 서울 여의도 넓이의 두배인 ‘태평염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철이라 염전에 소금은 없었다. 3개월 전만 해도 메밀꽃처럼 하얀 천일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선 4월부터 9월까지만 소금을 생산한다. 보통 다른 염전이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생산하는 것에 비해 기간이 짧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천일염은 6월산을 최고로 친다.

“대기 온도가 28~29도에 여성의 치맛자락이 살짝 나풀거릴 정도의 미풍이 불 때 소금맛이 절정에 이른다. 바람에 실린 송홧가루가 소금밭에 내려 앉으면 금상첨화다. 갯벌과 섞인 바닷물이 증발기 등 17단계를 24일 동안 거친 뒤 마지막 25일째 되는 날 6~9시간 동안 소금 결정이 생성된다.”

1953년부터 3대째 염전을 일군다는 태평염전 총관리인 정구술(49)씨는 최고의 소금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금 장인으로 불리는 정씨는 “좋은 소금은 우윳빛깔이 나고 손으로 눌러서 잘 으깨진다”며 “혀 끝에 올려놓고 굴리면 녹을 때 뒤끝에 단맛이 느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짜고 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염전이 있어선지 증도엔 관광객이 많다. 올해만 25만 명이 다녀갔다. 염전 입구엔 소금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직접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체험장이 있고 갯쑥·나문재·칠면초 등 염전에서 서식하는 식물 70여 종을 기르는 3만 평 규모의 염생식물원도 있다. 내년 초엔 국내 최초로 천일염으로 만든 소금동굴도 문을 연다.

하지만 소금을 팔아 버는 돈은 많지 않다고 한다. 현재 갯벌천일염 1㎏의 산지 가격은 200원. 30㎏들이 한 포가 6000원이다. “쓰레기 다음으로 싼 가격일 것”이라는 게 주민들 얘기다. 지난해 1만5000t을 생산해 30억원어치를 팔았고 올해는 1만6000t을 생산해 35억원어치를 팔았다. 직원 150명이 57개 염전판(1판은 1만2000평 규모)에서 올린 매출치고는 작아 보였다.

정씨는 “요즘 친환경 바람을 타고 천일염이 뜨기는 하지만 설움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태풍 매미가 닥쳤을 때 농어민들은 정부에서 피해 보상을 받았지만 염전은 광물로 분류돼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염전업자들이 수지가 안 맞아도 염전을 지켰지만 대부분이 60~70대로 후계자들이 없다”며 “앞으로 5년 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걱정했다. 그는 “농민들에게 농지 정리 자금을 지원하는 것처럼 염전의 시설 개선비용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품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생산 시설 개선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소비자원이 안전성검사를 했더니 염전 결정지 장판과 천일염에서 환경호르몬 추정물질인 DEHP가 소량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엔 천일염 저장창고 슬레이트 지붕에서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는 한 방송 보도가 나오면서 주민 74%가 염전을 하는 신안군엔 비상이 걸렸다. 친환경 소재로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 대책으로 나왔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PVC장판이 대부분인 염전 결정지 밑바닥을 갯벌흙을 다져 만든 토판으로 바꾸는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소금 저장창고 지붕도 목재로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유통과 포장에서의 혁신도 필요하다. 정회국(58) 신안군청 천일염산업과장은 “지금 주로 사용되는 PP포대는 잉크가 천일염에 스며드는 데다 단가가 250원으로 싸다”며 “이로 인해 중국산 소금을 PP포대에 담아 국산 천일염으로 속여 파는 ‘포대갈이’가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장재를 고급 종이박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안군은 수출 기반 조성을 위해 내년에 천일염 엑스포를 개최할 계획이다. 서울·부산·목포권 등 3곳에 도매물류센터를 건립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유통·포장부터 품질까지 고급화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소금을 식품으로 분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정운천(사진)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다. 천일염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자 신분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내가 돌출발언을 했다. ‘소금이 광물입니까, 식품입니까’라고 물었다. 다들 놀라서 날 쳐다봤다. 소금이 식품이 돼야만 전통 음식문화가 산다고 강력하게 얘기했다. 몇 달 후 농림부 장관이 됐고 한 달 반 만에 천일염을 식품으로 변경했다.”

정 전 장관이 들려준 비화다. 그는 천일염 얘기가 나오자 거침이 없었다.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고추장·된장·간장·김치 등 한국의 대표 식품을 살려내 한식 세계화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음식의 기초인 천일염을 살려야 한다. 천일염 시장이 연간 1000억원대다. 이를 고급화해 10배만 비싸게 팔아도 몇 년 안에 1조원 시장이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염전이 문을 닫고 골프장이 됐다. 그걸 살려내자. 그래야 농업이 산다. 미국인의 95%가 비만이다. 그런 문제도 우리 전통식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전국을 뒤흔든 촛불집회로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가다듬고 강연도 했단다. 그러다 박비향(撲鼻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박비향이란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의미. 그가 최근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정 전 장관은 “이젠 불신에서 비롯된 촛불을 희망의 향기로 품어내서 갈등과 소통의 전도사가 될 마음가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농민CEO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장관에게 힘을 보탠 사람은 정운학(사진) 88CC 감사다. 정 감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과외를 가르쳤던 제자라고 한다. 정 전 장관은 전라도, 정 감사는 경북 포항 출신이다. 정 감사는 “지난해 정 전 장관이 천일염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고 감동했다”며 “전면에 안 나서려는 정 전 장관이 총대를 메면 내가 뒤에서 적극 돕겠다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사단법인 발효식품진흥원(가칭) 건립을 위해 뛰고 있다.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내년 1월 출범시킬 계획이다. 천일염을 중심으로 된장·고추장·간장 등 발효식품 세계화의 컨트롤타워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회에선 김학용 한나라당 의원이 발로 뛰고 있다. 그는 오래된 ‘염관리법’을 ‘소금산업법’으로 개정했다. 직불제나 시설개선보조금 지급 등 혜택이 많은 농업처럼 염전업자에게도 재정지원을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40년 이상을 천덕꾸러기 취급받았던 천일염은 이제 스낵인 ‘새우깡’의 겉봉에 ‘우리는 천일염을 사용한다’는 문구가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과거 신안에서 보물선이 발견됐던 곳이 증도 앞바다라고 한다. “한국 유일의 세계 최대 자원이 천일염이다. 천일염이 보물선이다.” 정 전 장관의 말에 힘이 넘쳤다.

신안 증도=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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