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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운전사 … 기적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

이기형
1만4000㎞를 날아왔다. 유리창 청소부, 트럭 운전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월드컵의 이방인들이 축구를 향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그리고 그들은 역사를 만들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시티 FC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9일 열린 알 아흘리(UAE)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며 준준결승에 올랐다. 이변이었다. 아마추어 팀이 중동의 오일달러로 무장한 팀을 완파한 것이다.

오클랜드 선수 전원은 직업을 갖고 있다. 팀의 키 플레이어인 제임스 피쳇은 유리창 청소 일을 한다. 공격수 폴 우를로비치는 트럭을 몰며, 미드필더 채드 쿰브스는 학교 선생님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 중에는 부동산 중개인, 방송국 PD도 있다. 폴 포사 감독은 치아 건강 제품을 파는 가게를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팀 매니저인 스티븐 카리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온 선수들이 많다. 대회 기간에는 급여가 나오지 않아 큰 손해를 보지만 기꺼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운동 시간은 태부족이다. 매주 화·수·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만 훈련을 한다. 선수들은 퇴근하자마자 경기장으로 향한다. 카리는 “낮 동안 직장에서 많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온 선수들이 곧바로 운동에 전념하기란 쉽지 않다. 축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오클랜드에는 한국 국가대표 출신인 이기형(35)이 뛰고 있다. 그는 “나와 3명의 뉴질랜드 대표선수는 특별히 구단과 계약해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준은 아니다. 다들 직업이 있다 보니 프로선수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다. 뉴질랜드 리그 경기는 후반 25분이 지나면 템포가 급격히 느려진다”고 전했다.

알 아흘리와의 경기에서 전반 45분 선제골을 터뜨린 오클랜드 시티의 애덤 디킨슨(위)이 동료를 껴안으며 환호하고 있다. 오클랜드 시티는 2-0으로 승리해 준준결승에 올랐다. [아부다비 로이터=연합뉴스]
이 때문에 알 아흘리전 승리는 감격이었다. 오클랜드는 2006년에도 오세아니아 대표로 이 대회에 나섰으나 최하위를 했다. 제임스 피쳇은 “우리 팀뿐 아니라 뉴질랜드 축구의 역사적인 승리였다. 뉴질랜드는 FIFA가 주관하는 본선 대회에서 아직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국가대표인 그는 28년 만에 뉴질랜드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일과 축구를 병행하는 게 힘들지만 축구는 내 인생 자체다. 뉴질랜드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 하지만 이번 대회 승리는 뉴질랜드 대표팀에도 큰 자신감을 줄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영어를 배우며 지도자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이기형은 “축구 수준은 한 수 아래지만 여기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배운다”고 뉴질랜드 축구를 높이 평가했다.

기적은 한 번으로 그쳤다. 오클랜드는 14일 아틀란테(멕시코)와의 준준결승에서 0-3으로 완패했다. 하지만 16일 열리는 TP 마젬베(콩고민주공화국)와의 5·6위 결정전에서 다시 한번 아름다운 도전에 나선다.

아부다비=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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