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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방학특강 고민

방학이 다가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바로 아침에 문을 열고 배달된 신문을 집어들 때다. 일단 신문의 무게가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하고 두꺼워져 있다. 실제 신문지면은 같지만 함께 배달되는 광고지의 양이 몇 배로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방학을 앞둔 지역 학원들의 광고 총공세 기간이다. 끼어들어온 광고를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면 대단한 학력과 경력으로 무장한 선생님들이 “지금 우리 학원으로 와, 내년 1학기에 다른 사람이 돼 있을 수 있어”라며 유혹을 하고 있다. 전단만 보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 마음은 벌써 뿌듯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닌지라 아내와 나는 이번 방학 계획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전단을 보면 솔깃해서 방학특강으로 매일 4시간씩 한 달만 하면 영어가 뿌리 뽑힐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집 얘기를 들어보니 영어가 아니라 수학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하니 그쪽 전단에 눈이 간다. 그동안 하던 것도 있는데 거기에다 한 과목에 하나씩 더하다 보니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빽빽한 계획표가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거기다 중간에 어디 캠프라도 보낼 생각을 하니 어느새 연예인 스케줄표가 부럽지 않아져 버렸다. 당사자인 아이의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엉뚱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컴퓨터를 새로 사러 전자상가에 갔을 때 일이다. 처음에는 무난한 컴퓨터를 적당한 가격에 사려고 했다. 그런데 판매원과 상담을 하다 보니 모니터도 고급 기종에 더 큰 것으로, 그래픽카드도 한 급 높은 것으로, 하드디스크도 조금만 더 보태면 큰 용량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마지막 견적서는 처음 예산을 두 배는 초과하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문서작업이나 하는 주제에 최강 컴퓨터를 구매하게 된 것이다. 요거 하나 더 사는 것은 부담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처음 생각과 다른 별 필요 없는 기능까지 포함된 과유불급의 기계를 갖게 되었고, 덕분에 몇 달간 쪼들린 생활을 했다.

아이들의 방학계획도 그런 것 같다. 부모의 바람과 욕심으로 조금씩 늘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의지나 능력과 상관없는 계획만 멋진 모습이 된다. 방학(放學)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학문에서 풀려나는 시기인데, 요즘 일부 아이들에게 방학 기간은 도리어 "학기 중이 좋았어”라고 푸념하는 괴로운 두 달이 되었다.

요즘 돌아다니는 얘기로는 자식의 성공은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이 삼위일체가 될 때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의 행복은 부모가 아이를 통해 충족받으려는 욕망과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아이에게 그대로 투사하지 않고, 우산이 되어 대신 막아줄 수 있을 때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다른 각도에서 부모의 정보력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아이가 뭘 필요로 하는지도 중요하나 먼저 부모의 불안과 걱정, 막연한 환상적 기대를 억누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집도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될지는 의문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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