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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대북 강경 노선을 풀 때다

정부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스티븐 보즈워스는 지난주 평양에서 북한 당국자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대한 북한의 진의를 알고 싶었다. 북한은 9·19 공동성명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고 그것을 준수할 뜻을 밝혔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국제적인 합의다. 그것이 유효하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한 북한의 발언에 보즈워스는 크게 고무되었더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6자회담의 유용성도 인정했다. 그것은 2008년 12월 6차 회의가 북한의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방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결렬된 후 긴 휴회 상태에 들어간 6자회담 재개를 예고한 진전으로 환영할 만하다. 북한은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6자회담의 공동성명에 구애받지 않고 핵국가로 미국과 대등한 핵군축협상을 벌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렇게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 6자회담에 복귀할 명분이 아쉬운 북한은 미국에 체면 좀 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보즈워스의 방북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명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언제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보즈워스 자신은 전략적인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제관계에서 전략적이라는 말이 좀 남용되는 인상인데 요컨대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미국이 전략적인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30t 분량의 북한제 로켓추진 수류탄, 지대공미사일 발사장치, 개량 미사일 같은 무기류를 실은 화물 전용기가 태국에서 억류된 사건도 북·미 간 긴장완화의 큰 흐름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당한 명분만 주어지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북한은 지난봄 갓 출범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기다리지 않고 두 번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오바마 정부를 압박해 별로 이득을 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보즈워스에 한 발 앞서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어느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로 별로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취하는 일련의 화해 제스처는 국제사회와 미국의 대북 제재가 북한에 적지 않은 고통을 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지난 8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화노선으로 전환한 것은 가시적인 제재의 효과라고 할 것이다.

2006년 10월의 안보리 제재결의 1718호에는 제재 해제의 조건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의회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대북 제재, 특히 금융제재가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일어나자 부시 정부는 6자회담 틀 안에서 북·미 양자회담을 시작하고, 제재를 슬그머니 풀고, 급기야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지우는 과감한 조치까지 취했다. 그러나 지난 6월의 안보리 제재결의 1874호는 북한의 비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못박았다. 미국이 제재를 풀고 싶어도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단독행위는 불가능하다. 북한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이런 사실은 북한이 이번에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약속하고 6자회담에 복귀한다면 북핵 협상 타개의 전망은 과거 어느 때보다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북한이 지난여름 이후 취하는 거듭된 유화 제스처에 한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한국의 전략은 제재효과가 극대화되는 시점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대북 자세의 변화 조짐에 맞추어 한국도 강경입장을 완화할 때다. 더 나가면 효과가 체감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세계평화를 위해 뭔가를 해서 노벨 평화상 값을 치러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다. 미국은 6자회담 틀 안에서 오바마의 핵없는 세계라는 그랜드 디자인에 맞춰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다. 북핵 해결 없이 핵없는 세계는 없다. 오바마에게는 내년 봄 미국이 주재할 핵안보 정상회의와 유엔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의 성공이 절실하다. 북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고, 미국이 북한의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지금, 한국과 미국 간 대북인식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기 전에 한국도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바꿀 때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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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