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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손’ 놓고 치열한 논쟁

13일 타계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시카고학파의 좌장인 고(故) 밀턴 프리드먼과 평생의 숙적이었다. 뉴욕 타임스(NYT)는 20세기 미국 경제 정책을 둘러싼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공개 논쟁을 ‘마상(馬上) 창 시합’에 비유하기도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두 학자는 1933년 시카고대에서 만났다. 당시 새뮤얼슨은 학부생, 프리드먼은 대학원생이었다. 진보적(liberal)인 새뮤얼슨과 달리 보수 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은 국방과 치안을 제외한 경제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반대했다. 민간 기업과 시장 경쟁이 정부의 ‘보이는 손’보다 우월하며, 정부의 통제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새뮤얼슨은 학부 시절 시장의 자유를 신봉하는 시카고대의 학풍을 ‘정신분열증적’이라고 표현했다. 대공황으로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경제이론을 가르치는 강의실에는 실업(失業)에 대한 언급을 들을 수 없는 아이러니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새뮤얼슨은 “대학생 시절 시카고대를 다니면서, 교실에서 배웠던 것과 창문 밖과 길거리에서 듣는 것과의 차이를 배웠다”고 말했다.

◆‘짠물·민물’ 대립 넘어서야=두 학자는 모두 글을 잘 쓰고 말도 잘했다. 공개 토론장이나 신문 지상에서 이들은 날카롭게 서로 비판하고 격돌했다. 상대방과의 토론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지만 그들은 언제나 친구였다. 새뮤얼슨은 “우리 둘은 거의 언제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지만 친구 로 남았다”고 말했다.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교유를 보면서 분열과 대립 양상이 뚜렷한 미국 경제학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요즘 미국 경제학계는 ‘짠물(Saltwater school)’과 ‘민물(Freshwater school)’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짠물 경제학자’는 미국 동부 해안 지역에 몰려 있는 케인스 학파를, ‘민물 경제학자’는 시카고 등 5대 호 주변에 밀집한 시장주의적 경제 학파를 가리킨다. 올 7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현대 경제이론의 위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 같은 학계의 불협화음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새뮤얼슨은 케인스주의를 종교처럼 신봉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면 케인시안으로 분류되는 학자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노년 교수 시절에 새뮤얼슨이 ‘명예 앙팡 테리블(l’enfant terrible emeritus)’이란 말을 들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저귀 값 위해 ‘경제학’ 집필=새뮤얼슨의 경제학 교과서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에게 돈과 명예를 가져다 줬다. 그가 교과서 저술을 결심한 데는 세 쌍둥이 아들을 포함해 여섯 명의 자식이 영향을 미쳤다. 세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새뮤얼슨은 매주 350장의 기저귀를 세탁소에 보내야 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돈 벌이를 위해 책을 쓸 것을 권했다. 당시 사회에 강력하게 남아있던 케인스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허버트 후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케인스를 항상 “마르크스주의자 케인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생생한 문장으로 풀어주는 교과서는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1948년 첫 출판된 교과서는 거의 30년간 베스트셀러 교재로 사랑받았으며, 20개 언어로 번역됐다. 첫 출판 이후 50년간 매년 5만 부씩 팔렸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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