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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되살아난 ‘유교는 종교인가’

4일 학술회의에서 황영례 박사가 ‘이승희와 송기식의 공교(孔敎) 운동의 상이성’이란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한국유교학회 제공]


유교는 종교인가.

일제시대 공교운동·교회 만든 유림 등 재조명



한국유교학회(회장 최영진 성균관대 교수)가 4일 영남대에서 마련한 학술회의에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다. 학회는 이날 ‘한주(寒洲)학파와 조선성리학’을 큰 주제로 논의했지만 종교성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다.



퇴계 학통을 이어받은 한주 이진상(李震相·1816∼86)은 성주에서 성리학과 경전을 탐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평생을 보낸 유학자다. 그의 제자로는 아들인 이승희와 이병헌·김창숙 등이 있다. 이들 중 이승희와 이병헌은 일제 강점기에 유교를 종교로 만드는 이른바 공교(孔敎)운동을 벌였다. 이승희는 특히 망명지 극동 러시아에서 이 운동에 몰두했다.



발표자로 나선 영남대 정병석 교수는 “유교가 종교냐는 논쟁은 멀리로는 이탈리아 선교사로 중국에 처음 들어간 마테오리치(1552∼1610)를 포함한 선교사들 사이에서 시작됐다”며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의 강유위·양계초 등이 논의를 이어갔다”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이승희의 유교 종교화는 강유위의 관점과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방식이 아닌 유학 본연의 종교성을 발견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날 학술회의장은 성산 이씨 문중과 지역 유림 등으로 가득 찼다. 이어 황영례 박사는 일제 강점기 유교 종교화에 나선 이승희와 송기식을 비교 조명했다.



안동에서 기미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송기식은 1932년 조선유교회의 녹동서원에서 유교를 새로운 종교로 자리매김하며 전국의 수재를 양성했다. 그는 전통 유교 형식에서 벗어나 기독교처럼 교회를 만들고 공자를 교주로 삼아 유교를 살리고 민족정신을 결집하는 일에 매달렸다. 황 박사는 “두 사람이 펼친 유교 종교화는 방법은 달랐지만 유교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민족정신을 규합하자는 목적은 같았다”고 말했다.



지역 유학자들은 유교를 종교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물론 유교 종교화는 미완으로 끝났지만 광복은 이들의 피땀을 딛고 마침내 완성됐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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