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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나요, 24세 천재 골퍼의 슬픈 사랑 이야기

프리메이슨의 아지트였던 노스버윅 클럽하우스가 황금빛 태양에 사로잡혔다. 노스버윅은 바다와 맞붙은 링크스의 전형이다
모델 출신의 엘린 노르데그린이 남편 타이거 우즈의 자동차(혹은 얼굴)를 향해 나이키 아이언을 휘둘러 화제다. 2009년 골프계를 뒤흔든 강력한 스윙이었다. 여성이 골프를 했다는 첫 기록은 노르데그린의 스윙보다 442년 앞선다. 1567년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이 남편 단리 경이 죽은 바로 그 주에 필드에 나와 눈총을 받았다는 기록이다.

성호준 기자의 스코틀랜드&웨일스 투어 에세이 ⑨ 노스버윅

단리 경의 죽음은 우즈의 자동차 사고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당시 25세의 메리는 남자 친구가 있었고 메리보다 세 살 어린 사촌이자 남편인 단리 경도 바람둥이였다. 메리는 남편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 3개월 만에 보스웰 공작과 결혼했다.

메리 여왕과 보스웰 공작은 자신들이 단리 경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국민은 정황상 둘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르데그린처럼 메리 여왕도 미인이었다. 그래서 국민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결혼 후 한 달 만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감옥에 갇혔다가 잉글랜드에 망명했으나 사촌 언니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참수형을 당했다.

메리 여왕의 삶은 기구하다.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잉글랜드, 프랑스의 왕위 승계자였는데 감옥과 망명지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다 목이 잘렸다. 크게 보면 종교개혁 폭풍에 휘말린 왕녀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피해갈 수도 있었다. 남편 사망 직후 섣불리 골프를 했다가 민심을 잃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골프를 자제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그렇지 않은가. 메리는 프랑스에서 데려온 시동(카데)에게 골프 클럽을 들고 시중을 들게 해 ‘캐디’라는 어원을 만든 사람이다. 그 정도로 골프를 즐겼다.

프로골퍼 리 트레비노는 “골프는 옷 입고 하는 것 중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메리 여왕도, 타이거 우즈도 동감할 말인 것 같다.

“스코틀랜드의 빅 클럽이 한 번 안 한다면 안 하는 것이다!”

에든버러 동남쪽, 자동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노스버윅 클럽하우스에서 나를 맞은 건 이런 싸늘한 인사였다. 전통 있고 콧대 높은 스코틀랜드 클럽에서 이런 일 한두 번쯤 당하리라고 예상은 했으나 막상 겪어보니 생각보다 아팠다.

나는 정중하게 클럽 내부를 취재하고 싶다는 메일을 수차례 보내 “정 보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답을 얻었다. 정장 차림으로 찾아갔는데 세크러터리는 “그냥 코스나 구경하고 가라”고 했다. 이곳의 폐쇄성은 병적이다. 댄 퀘일이 미국 부통령일 때 비서가 구두를 가져오지 않아 맨발로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려다 입장을 거절당한 등의 일화가 여럿 있다.

프리메이슨의 전통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은 19세기 골프 클럽을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뮤어필드와 노스버윅 등 스코틀랜드 동부 명문 클럽들이 대표적이다. 골프를 즐기려는 목적보다는 은밀하게 모이기 위한 합법적 장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골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들의 전통은 오거스타 내셔널 등 미국의 명문 골프 클럽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과거 “골프는 Gentleman Only Ladies Forbidden(남성 전용, 여성 금지)의 약자”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을 배격했다. 일부 클럽은 아직도 여성을 회원으로 들이지 않는다. 여성단체들이 뮤어필드와 미국의 오거스타 내셔널 등을 공격했는데 “우리는 여성단체의 전리품 창고에 올라가는 트로피가 되지 않겠다”며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노스버윅은 예외다. 이곳에서도 “골프장에서 패션쇼 하는 것 같다”며 여성 골퍼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러나 여성 전문 골프레슨이 맨 처음 생겨난 곳이 노스버윅이다. 많은 여자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노스 버윅의 여성들은 초창기 여자 골프 대회를 주름잡았다. 2009년 여자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인 카트리오나 매튜도 이곳 출신이다.

노스버윅 세크러터리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은 것은 그런 이유다. 여성 골프의 메카를, LPGA 투어를 주름잡는 한국에 조금이나마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코스는 바다의 갯내음으로 가득 찼다. 링크스가 바다와 땅을 연결한다는 뜻이지만 이렇게 바다와 붙어 있는 곳은 못 봤다. 코스와 바다 사이가 5m 정도에 불과한 곳도 있다. 큰 파도가 치면 페어웨이로 바닷물이 넘어온다고 한다. 꿈 많은 소녀가 그려 놓은 수채화 같은 코스다. 둥실둥실 뜬 크고 작은 바위섬 4개가 코스를 장식한다. 휴양지로 이름 높았던 곳다운 아름다운 풍경이다. 할리우드 여배우 제인 폰다의 집이 이곳에 있다.

페어웨이의 곡선은 가늘고 섬세하다. 힘자랑 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드라이버 대신 아이언을 잡고 부드럽게 달래야 마음을 여는 코스다. 그린은 비단으로 덮은 감자칩 같다. 부드러운 곡선의 굴곡이 여성적이라는 느낌이 딱 든다.

19세기 골프 세계에서 노스버윅은 냉전 시대의 스위스 같은 중립지역이었다. 수퍼 파워는 세인트 앤드루스와 에든버러 인근의 머셀버러였다. 두 지역은 소속 프로를 내세워 골프의 주도권을 두고 사납게 싸웠다.

그러나 중립 경기장이 필요했다. 세인트 앤드루스나 머셀버러에서 경기를 하면 갤러리들이 원정 온 선수의 공을 차고 스윙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하고(대부분 홈팀이 이겼다) 노스버윅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그중 가슴 저민 이야기도 남아 있다.

1875년 9월 톰 모리스 부자와 윌리 파크 형제들의 2-2 경기에서다. 경기 도중 톰 모리스 주니어에게 ‘출산 중인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가 왔다. 부자의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에 실수로 아버지가 이 전보를 받게 됐다. 아버지는 내기 돈을 따겠다는 욕심에 경기 후에야 아들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경기가 끝나고 나니 기차가 끊겼다. 야간 항해를 해야 했다. 그들이 거친 파도를 뚫고 세인트 앤드루스에 도착했을 때 부인 마거릿과 신생아는 세상을 뜬 후였다. 톰 모리스 주니어는 두문불출했다. 오픈 챔피언십에도 나가지 않았다. 부인이 죽은 지 16주 후인 크리스마스 아침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냥팔이 소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랑하는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톰 모리스도 크리스마스 전날 밤 부인을 만났다. 그의 나이 24세였다. 노스버윅이 여성 골퍼에 호의적인 것은 아마 이 사건 때문이 아닐까.

톰 모리스 주니어는 최초의 골프 수퍼 스타였다. 구름 관중이 그를 따랐다. 타이거 우즈와 비슷하다.

그가 골프에서 세운 최초의 기록은 많다. 캐디 출신이 아닌 프로골퍼, 학교를 다닌 첫 프로골퍼였다. 의도적인 페이드샷, 드로샷을 쳤다. 야구로 치면 변화구를 던진 최초의 투수였다. 공식 경기에서 홀인원, 알바트로스도 그가 처음 했다. 스물 한 살 때 오픈 챔피언십 4연속 우승 기록도 세웠다.

오픈 4연속 우승은 그가 죽은 지 134년이 지난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아직도 노스버윅 코스에 남아 있다. 타이거 우즈가 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취재협조 영국 관광청, 스코틀랜드 관광청,
웨일스 관광청 www.visitbri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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