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두바이 파산은 실물시대의 종언, 이젠 모사물의 시대다

한국형 세컨드라이프를 추구하는 트라이디커뮤니케이션의 가상세계 ‘C2TOWN’. 아바타가 C2TOWN 거리를 달리고 있다.
2009년 11월 두바이의 파산은 역사적 사례로 평가받을 것이다. 두바이는 현실세계에 세계 최대의 인공섬과 테마파크, 환상적인 마천루와 수중호텔, 인공 스키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기 방에서 가상세계에 접속해 더 환상적이고 극적인 스펙터클을 즐길 수 있는데 거금을 들여 실재를 체험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 가상세계인가

누적된 적자로 청산 명령을 받은 대전엑스포 과학공원. 관광객 대신 바람만이 찾아오는 강원도 횡성의 토지 세트장과 충북 제천의 태조 왕건 세트장. 애물단지가 된 충북 괴산의 45t짜리 초대형 가마솥.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전국 곳곳에 벌여놓은 사업들 역시 같은 운명을 걸어갔다. 두바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집객력 경쟁에서 실외의 도시환경이 실내의 허구적 모사물을 이길 수 없다는 1990년대 이후의 현상을 확증하는 결정판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현대는 시뮬라크르(모사물)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며 모든 비즈니스가 쇼 비즈니스가 되는 관심경제의 사회를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것, 심오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의미심장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현실세계가 아니라 가상세계에서 일어난다.

넓은 의미의 가상세계는 사용자들이 아바타(Avatar)를 만들어서 거주하고 상호작용하는 컴퓨터 기반의 시뮬레이션 환경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환경에는 ‘아이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형 가상세계가 있고 ‘세컨드라이프’ ‘미트 미’와 같은 사회형 가상세계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가상세계는 앞으로 오락의 영역을 넘어 교육, 일상 업무, 상거래, 행정의 모든 분야에 사용될 후자의 사회형 가상세계를 뜻한다.

가상세계 기원은 美 반체제 서클 ‘핵’
가상세계는 웹 2.0이 현실화될 때부터 미래의 트렌드로 주목받아 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은 잡지나 책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평평한 2차원의 웹(2D web)이다. 앞으로 우리가 사용하게 될 차세대 인터넷은 현실세계와 유사한 3차원의 웹(3D web)이며 가상세계는 이 같은 3차원 웹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상세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 친화성이다. 인간은 3차원 공간에서 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어간다. 3차원 공간에서 움직이며 3차원 물건을 조작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뇌는 3차원의 공간적 관계를 기억하는 것이 가장 쉽고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현실세계를 3차원으로 재현한 가상세계는 현실세계를 추상화하여 2차원으로 재현한 2차원 웹보다 정보를 더 빨리 직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쉽게 인식할 수 있고 사용자가 원하는 색상·형태·아이템 등의 디자인을 풍부하게 수용할 수 있는 가상세계는 어떤 매체보다 강한 몰입감을 발생시킨다. 인터넷은 처음부터 이렇게 더 쉽고 자연스러우며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을 목표로 발전해왔다. 1950년대 말부터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반체제 서클 핵(Hack)에 모였던 ‘해커’라고 불린 운동권 학생들은 이반 일리치의 저서를 읽으면서 ‘컨비비얼리티(conviviality)’라는 이상, 즉 모든 사람이 서로의 지식과 기술을 나누며 생기발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다. 80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개인에게 팔아서 ‘퍼스널 컴퓨터’라는 용어를 만들었던 리 펠젠슈타인 역시 해커였다

당시 매카시즘의 광기에 사로잡힌 미국 정부는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했고 학생들은 미국 정부가 컴퓨터 기술을 독점한다면 세상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했던 지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80년 세계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오스본’을 만들어 판매했던 리 펠젠슈타인 역시 핵의 회원이었다. IT 선구자들에게 컴퓨터를 싼 값으로 파는 것, 그리고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개인이 서로 지식과 기술을 나누게 하는 것은 세계를 구원하는 투쟁이었다.

오늘날의 2차원 웹은 이 같은 인터넷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는 인도 방갈로르에 한국의 4분의 1 비용으로 연말정산을 해줄 우수한 회계사가 있고 델리의 인도공과대학에 저렴한 돈을 받고 영어와 수학 과외를 해줄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원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언어 장벽이 있고 메뉴 체계가 복잡한 2차원 웹으로는 이런 사람들과 지식과 경험을 서로 나눌 수 없다.

컨비비얼리티는 우리가 현실세계와 똑같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상세계에서 구현된다. 인도어를 모르는 우리는 인도국립은행 홈페이지에서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상세계의 인도국립은행에서는 현실과 똑같이 내 아바타를 움직여 걸어 들어가서 카드를 자동출납기에 넣고 돈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인도공과대학 홈페이지에서 과외선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가상세계의 인도공과대학에서는 광장에 구직 간판을 열고 앉아 있는 대학원생의 아바타에게 걸어가 현실과 똑같이 영어로 말을 걸고 과외를 부탁할 수 있다.

오락 영역 넘어 24시간 ‘접속’시대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84년)와 ‘아이도루’(97년),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쉬’(92년)와 ‘다이아몬드 시대’(95년), 그렉 이건의 ‘쿼런틴’(92년) 및 ‘퍼뮤테이션 시티’(94년)와 ‘디아스포라’(97년),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 워즈’(2009년) 등은 이런 가상세계가 일상화된 가까운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이다.

이 작품들은 이미 밝혀진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발전 법칙과 자료를 토대로 미래의 한 지점을 추정하는 외삽 예측법(extrapolative forecasting)에 의거해 가까운 미래의 가상세계가 아래의 세 가지 특성을 보인다고 예측하고 있다.

첫째는 상호호환성(Interoperability)이다. 사용자들의 욕구는 매우 다양해서 하나의 가상세계가 이를 다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가상세계 사이의 콘텐트가 자유롭게 검색되고 공유되는 상호호환성이 필요하다. 앞으로 가상세계들은 점점 상호 연동돼 전 세계의 가상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처럼 기능할 것이다. ‘아이온’에서 육성한 아바타가 그 아바타 그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다시 ‘세컨드라이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모바일 연동성(Mobile-Linkage)이다. 가상세계가 주로 서비스되는 퍼스널 컴퓨터는 덩치가 크고 무겁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데 사용자들은 높은 이동성을 추구하며 언제 어디서나, 끊어짐 없는 접속을 원하고 있다. 또 휴대전화 단말기는 작은 화면의 불편한 인터페이스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데 사용자들은 퍼스널 컴퓨터만큼이나 높은 사용성을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의 모바일 서비스와 퍼스널 컴퓨터의 유선 인터넷 서비스는 점점 더 융합된다. 많은 공상과학물들은 가상세계의 광활한 공간에 접속할 때마다 휴대전화 등의 모바일 기기가 나의 비서가 되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주고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트에 맞는 종류의 단말기로 변신하는 서비스를 상상하고 있다.

셋째는 상시성(Always-On)이다. 가상세계가 오락과 노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게 되면 많은 사용자가 가상세계에 24시간 접속 상태를 유지하는 상시성이 나타난다. 아침에 일어나 러닝머신을 달리면 캐나다 로키 산맥의 상쾌한 오솔길이 보이고, 출근하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는 서울 시내의 3차원 지도가 보이며, 교실에서 진화론 강의를 들을 때는 쥐라기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보인다. 각기 모니터는 다르지만 상영되는 콘텐트는 사용자가 항상 접속하고 있는 가상세계 하나다. 가상세계는 점차 지금의 윈도와 같은 운영체제(OS)와 유사해진다.

저CO2 녹색성장과 밀접한 관계
그러나 가상세계의 보편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기술적 장애들이 많다. 한국 서비스에 실패하고 철수한 ‘세컨드라이프’의 사례는 사용자의 기대와 현실의 기술 사이에 존재하는 상당한 간극을 말해준다.

아직도 가상세계는 영상의 극사실적인 재현과 동작의 극사실적인 상호작용 면에서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또 사용자들을 응대하는 인공지능 아바타(Intelligent Virtual Agent)가 너무 유치하고 가짜 같다. 인공지능이 근사 추론에만 의지해서 개성이 제각각인 사용자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실제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말하려면 정교한 스토리텔링에 의해 각 인공지능 아바타가 처한 상황을 분할해서 추론 영역을 좁게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술은 시작 단계다.

2009년 현재 200여 개의 가상세계를 서비스하고 있는 미국·일본 시장과 비교할 때 한국의 가상세계 시장은 상당히 열악하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에 성공했던 선진국이지만 게임형 가상세계에서의 성공이 사회형 가상세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사용자들이 게임형 가상세계의 화려한 그래픽과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7일 개최되는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의무국 지정이 예상되는 한국에 가상세계는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시급히 발전시켜야 할 국가 과제가 되고 있다.

가상세계는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온실가스의 감축은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불소 계열 유해가스를 제거하는 환경산업의 방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환경산업은 시간과 자본이 많이 들고 광범위한 산업 구조 조정을 필요로 하는데 그러는 동안 우아하고 세련되고 독립적인 도시 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13억 인구와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의 15억 인구가 한국의 중산층처럼 자가용을 소유하고 멋진 유리 외벽건물에 살며 여름마다 해외관광을 다닌다면 온실가스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이고 비용절감적인 온실가스 감축방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현실세계의 물류와 활동들을 되도록 많이 가상세계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교육, 업무 협의, 콘퍼런스, 쇼핑, 상품 광고, 고객 서비스 채널, 직업 훈련, 사회적 친교 회합 등은 지금도 가상세계로 대체 가능한 물류와 활동들이다. 이를 위해 보다 현실적이고 현대적이면서 몰입감 높은 가상세계들이 많이 개발되고 서비스돼야 한다. 가상세계는 이제 첨단 기술이나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단 하나의 사회형 가상세계도 성공시키지 못한 한국에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