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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타이밍의 예술 일러도, 늦어도 안 돼

서민석 동일방직 회장은 “섬유·패션·알루미늄 사업을 주축으로 하면서 향후 바이오·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손엔 실 뽑는 면방부터 패션 사업이, 다른 손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시작한 알루미늄 제조업이 알토란처럼 들려 있다. 그리고 지금 머릿속엔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바이오산업을 그리는 중이다. 서민석(66) 동일방직 회장 얘기다. 지난 2일 서울 대치동에 있는 이 회사 본사에서 만난 서 회장은 “현재는 섬유 소재와 패션, 알루미늄 사업이 동일의 주축이다. 신성장동력 찾기가 숙제”라고 말했다. 느긋하면서도 긴장감이 배어 있는 말투였다. 동일은 모회사인 동일방직을 주축으로 동일Y&K·동일알루미늄·동일드방레·동일레나운·동일산자 등 10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그룹 매출은 5286억원, 영업이익은 177억원이었다. 한편 그는 1970년대 대표적인 노사 분규로 꼽히는 ‘동일방직 사태’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70년대 동일방직 사태 본질은 노노 갈등
-면방 회사로서 동일방직의 강점은.
“동일은 경쟁 업체보다 제품 종류가 다양하다. 쉽게 말해 다품종 소량 생산이 우리의 장기다. 생산 능력은 10만6000추(1추는 실 한 가닥이 생산되는 단위)가량 된다.”

-동일 제품 중 ‘마라톤사’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계열사인 동일산자에서 만드는 재봉사다. 이게 60년대 나온 제품인데 지금도 재봉사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튼튼하면서 잘 끊어지지 않아 ‘마라톤’이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고민에서 나온 성과물이다. 봉제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올해 그룹 실적은 어떻게 전망하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유럽 시장이 좋지 않았다. 국내 경기마저 침체를 겪었다. 수출이 늘기는 했지만 (물량이 늘어난 게 아니고) 원화 가치 하락 때문이었다. 환율 기복이 심한 것은 기업 경영에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치고는 선전했다. 그룹 매출이 5700억~5800억원쯤 돼 지난해보다 소폭 신장할 것으로 보인다.”

동일의 모체는 32년 일제시대 때 인천에 세워진 동양방적이다. 이 회사를 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서정익 사장이 55년 인수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면방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동일은 일찌감치 패션 쪽에 발을 들여놔 일반인에겐 ‘라코스테’ ‘아놀드파마’ ‘까르뜨블랑슈’ 같은 브랜드로 친숙하다. 한편으론 충남 천안에 알루미늄 관련 제품 제조업체(동일알루미늄)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지금은 소재(면방)와 패션, 알루미늄 사업 비중이 각각 3분의 1쯤 된다”고 소개했다.

서민석 회장이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학생 때 바이올린을 켰고 조만간 트롬본 연주에 도전할 생각을 가진 음악 매니어다.
-패션 사업 실적은 어떤가.
“프랑스 드방레와의 합작사로 라코스테 브랜드를 취급하는 동일드방레는 선전하고 있다. 라코스테는 크리스토퍼 르메르라는 유명한 아티스트 디렉터의 책임 아래 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제품을 내놓는다. 패션 용어로 ‘오리지널리티가 탁월하다’고 하는데 실적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일본 레나운과의 합작사로 아쿠아스쿠텀·아놀드파마 등의 브랜드 제품을 파는 동일레나운은 고전하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신용카드 대란 여파로 2004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내부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대기업병을 앓았던 게 아닌가 싶다.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면서 ‘명가의 부활’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요즘 직원들 눈빛이 달라졌다. 2011년엔 흑자 전환할 것이다.”

-자체 브랜드를 새로 만들 생각은 없나.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고 유통 기반도 확보해야 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새로 독자 브랜드를 만든다면 한국이 아닌 인구 12억 명의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해 보고 싶다.”

-면방에서 시작해 패션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면방을 하다 염색 사업에 진출하다 보니 다운스트림(최종 생산품)으로 흘러간 것이다. 가치사슬 완결 구조를 이루게 됐다. 선친에게서 이어받은 경영철학이 ‘창의개척’이다. 나름대로 그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사업 일관화로 얻는 장점은 무엇인가.
“한 걸음씩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게 뭔지, 불만이 뭔지 알 수 있어서다. 그룹 차원에서 섬유연구소를 만들어 계열사 연구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제품을 개발한다. 땀을 흡수하고 자체적으로 열을 내는 기능성 소재 ‘웜 후레시’, 가닥마다 굵기가 달라 의류의 표현력을 높인 ‘멀티 카운트’ 같은 제품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알루미늄 사업 매출이 1500억원대에 이른다. 알루미늄은 섬유 업체로선 생소한 분야인데 어떻게 진출하게 됐나.
“사업을 다각화하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알루미늄 포일뿐만 아니라 에어컨·자동차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를 만든 덕분에 외형이 커졌다. 충남 천안에 공장을 지은 게 89년이다. (웃으면서) 그런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 단련받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알루미늄 사업은 수익성이 좋고 성장 폭도 커 ‘앉아서 파는 사업’으로 불렸다. 우리는 신출내기였지만 과감하게 ‘새집’을 짓는 투자를 했다. 그런데 웬걸, 사업 초기 기술도, 기술자도 없어 엄청 고생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투매 물량을 쏟아 내면서 제품 가격이 폭락했다. 결국 10년 넘게 적자를 보다가 3년 전부터 이익을 내고 있다. 요즘은 계열사 가운데 손에 꼽히는 효자다. 그래서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무엇이 중요한가.
“첫째가 타이밍이고 그 다음이 자금력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도,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유동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경쟁사와 차별화된 품질과 경쟁력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어떤 업종에 들어설 타이밍인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사업을 찾지는 못했지만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쪽을 눈여겨보고 있다. 일부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인수합병도 계획하고 있나?
“그렇다. 우리는 이쪽 분야에 인력이 없다. 무(無)에서 시작할 순 없다.”

독자 브랜드 만들면 중국 겨냥할 것
-면방 업계의 어른으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업황이 최고조에 달했던 80년대 말에 비하면 지금 업계 외형이 3분의 1로 줄었다. 저임금 생산국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인 것도 맞다. 그런데 어느 산업치고 개발도상국에 도전받지 않는 업종이 있나. 그렇게 탄탄하다는 조선업도 수주 잔량에서 중국에 밀렸다. 이런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해답은 꾸준한 설비 투자, 끊임없는 연구개발, ‘한군데 모여 같이 크는’ 클러스터 전략이 될 것이다.”

섬유업에서만 40년째, 단련된 내공 덕분일까. 서 회장은 시종 여유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아픔이 많은 경영인이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것이 70년. 불과 3년 뒤 서 회장은 부친을 잃었다.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78년이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다섯이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70년대를 상징하는 노사 분규였던 이른바 동일방직 사태가 터졌다. 그는 “사실 그 사건이 지금까지 뒷다리를 잡고 있는 느낌”이라며 운을 뗐다.

-동일방직 사태 이후 노사 관계는 어떤가.
“동일방직 사태는 노사 문제가 아닌 노노 갈등이 원인이었다. 당시 동일방직은 인천과 경기도 안양에 공장이 있었다. 공장 근로자 남녀 비율이 30대 70쯤 되다 보니 72년부터 여사원이 노조 지부장이 됐다. 처음엔 여성 지부장이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오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인천 공장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76~78년 분규가 일어났다. 그러다 지부장 선거를 둘러싸고 대의원 선출 방식을 놓고 남녀 사원 간 알력이 불거졌고 그 와중에 남자 사원의 오물 투척 사건이 벌어졌다. 여사원들이 서울 명동성당으로 달려갔고 거의 달포간 공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몇 날, 몇 시까지 공장에 복귀해 달라고 했지만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고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것이 여태까지 노조에 대한 사측의 탄압인 것처럼, 동일의 경영 잘못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안타깝다.”

그러면서 서 회장은 2세 경영인으로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렵게 회사를 물려받았다. 더 나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좋은 아버지 만나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과 능력을 평가받고 싶었다.”

-다음 인터뷰할 분을 추천해 달라.
“국내 제분업계 리더인 운산그룹의 이희상 회장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론 ‘한국 페스티벌 앙상블’을 후원하면서 친분을 맺고 있다.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 

WHO?
194 3년 서울생. 고(故) 정헌 서정익(1910~73) 동일방직 창업자의 장남.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유학했다. 동일방직 과장(70년)으로 입사해 78년 이후 지금까지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조흥은행 회장(95년)과 대한방직협회장(95년), 국제섬유제조자연합회장(98년)을 역임했으며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94년 이후), 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97년 이후),메세나협의회 부회장(2006년 이후) 등을 맡아 왕성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음악 매니어로 집무실에 300장이 넘는 레코드판을 보유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워 이장희 작사·작곡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가스펠송인 ‘When thesai nts go marchi ng in’을 즐겨 연주한단다. 내년 여름께 첫 무대에 설 계획. 상공의날 석탑·은탑·금탑 산업훈장 등을 받았고,한국공학한림원 선정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2006년)’에 꼽혔다. 



● 다음은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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