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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의 대만 정책 ‘현찰은 포탄보다 강하다’

타이베이에서 본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나흘간 행보는 무척 바빴다. 총통 직무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12·5 지방선거에 출마한 국민당 후보들을 지원하느라 10여 곳의 접전 지역들을 돌아다녔다. 가두 유세도 빈번했다. 4일 밤엔 이란(宜蘭)·신주(新竹)현을 오가며 지지세의 결집을 호소했다.

마 총통은 시장·현장 25명 중 17명을 뽑는 국지적인 선거에 왜 이렇게 집착할까. 지난해 5월 총통 취임 이후 추진해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화해·교류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만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다름없는 경제협력기본합의서(ECFA) 협상을 앞두고 여론은 쫙 갈려 있었다. 5일 선거결과 야당인 민진당이 선전했다. 내년 봄에 ECFA를 타결한다는 마 총통의 목표는 탄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정치는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다. 지난해 대선 패배에다 천수이볜 전 총통의 부패사건까지 각종 악재가 겹쳐 다 쓰러져가던 민진당이 여당 견제심리에 기대 그나마 힘을 얻었으니 말이다. 민진당은 ‘값싼 중국산이 몰려오면 소상공인과 농어민의 설 땅이 없어진다’며 ECFA에 반대한다. “대만을 팔아넘기려는 행위”라는 비난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는 경제를 살리려면 중국과 적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일본에 뺏긴 중국 시장, 세계 시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토로한다. 내년 1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간의 FTA 협정이 발효되면 대만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진다.

대만의 오늘을 불과 5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2004년 3월 총통선거 때 최대 쟁점은 ‘대만 독립론’이었다. 찬반 여론은 팽팽했고 편 가르기는 치열했다. 천수이볜이 2만여 표 차이로 재선된 뒤 양안 사이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베이징의 견제와 봉쇄는 대만 사회를 옥죄었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는 데 사흘이면 충분하다’는 무력통일 시나리오를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대만 사회는 이제 새로운 두려움을 품기 시작했다. 블랙홀 같은 중국의 기세 앞에서 ‘평화 통일’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망명한 작가 위안훙빙(袁紅<51B0>·57·호주 거주)이 쓴 『대만 대겁난(大劫難)』은 그런 심리를 파고든 책이다. 요지는 “중국공산당이 전쟁을 하지 않고도 경제지원과 친중 세력 확산을 통해 2012년 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일전선 방식을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소설 같은 얘기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권위 있는 중국전문가로 손꼽히는 린중빈(林中斌) 단장(淡江)대학 교수는 3일 기자와 만나 “베이징 지도부는 마침내 싸우는 것보다 포용하는 게 더 쉽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리덩후이·천수이볜 정부 때 으르렁댔던 것과 달리 돈 보따리를 풀어 대만 민심을 공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ECFA는 대만을 향한 중국판 햇볕정책이다.

집권 8년째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국제사회에서 G2(미국+중국)로 평가받는 국력에 걸맞게 원숙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난달 중국 방문 뒤 국내외에서 후 주석의 위상은 한껏 올라 있는 상태다. 그의 마음속에는 ‘현찰은 포탄보다 강하다’는 믿음이 흐를지 모른다.

2012년은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이 발생한 지 100년 되는 해다.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孫文)은 공산당(중국)과 국민당(대만) 모두에게 국부(國父)로 존경받는다. 대만의 지식인들은 중국 쪽에서 쑨원을 부쩍 찬양하는 부분을 석연치 않게 바라본다. 이들은 “(양안 통일은) 중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가 된 다음에나 생각할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압력 탓인지 국민당 정부는 정치·군사 분야의 양안 협상엔 손을 내젓는다.

요즘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은 중국 대륙에서 온 단체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하루 7000∼8000명의 관람객 중 대륙 중국인이 70%가량을 차지한다. 마오쩌둥·장제스 시대에 무력 충돌의 상징이던 진먼다오(金門島) 앞바다에는 페리 여객선과 여객기들이 하루에 수십 차례 오가고 있다. 이달 중순 ECFA 협상을 앞두고 대만 관료들은 중국 측에서 무엇을 더 얻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과거 30여 년간 중국에 1000억 달러 넘게 투자해온 대만의 모습이라고 믿기 힘들 지경이다. 중국의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덩샤오핑은 1980년대 중반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주창했다. 체제가 다른 홍콩·대만을 의식한 것이었다. 덩의 꿈은 5부 능선을 넘어선 것일까. -타이베이 선거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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