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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더 쓸쓸한 나홀로족을 위해, 시리즈를 통째로 틀어라

지난 주말은 미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이었다. 명절의 풍경은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전통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정을 나누는 모습도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명절을 홀로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TV가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그렇다.

한국의 명절에 어김없이 방영되는 프로그램으로는 청룽(成龍) 주연의 영화나 외국인 장기자랑 등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명절만 되면 미국의 TV는 이른바 ‘마라톤’ 방송으로 넘쳐난다. 달리기 이야기가 아니다. 방송사마다 한 가지 프로그램을 골라 1회부터 최종회까지 하루 종일, 길게는 주말 내내 틀어댄다. 이런 방송 관행을 미국에서는 ‘TV 마라톤’이라고 부른다.

각종 매체들은 명절 연휴를 앞두고 ‘TV 마라톤 가이드’를 내 놓는다. 채널이 워낙 많다 보니 어디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몇 회부터 몇 회까지 방송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것이다. (나처럼) 명절이 돼도 딱히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어딘가 무성의해 보이는 편성임에는 틀림없지만, 하긴 뭐, 방송국 직원도 명절엔 쉬어야 할 테니까.

TV 마라톤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한 지역채널은 명절을 맞아 60년대 인기 시리즈물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을 연휴 내내 방송했다. ‘트와일라잇 존’은 CBS가 제작 및 방영한 미스터리 공상과학 프로그램으로 59년부터 5년에 걸쳐 방송됐다.

5차원이 있다거나 사후세계를 운운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으로 치면 지금은 폐지된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나 SBS ‘토요 미스터리 극장’쯤이 아닌가 싶다. 음산하고 기기묘묘한 분위기의 이 프로그램은 어느 모로 봐도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함께 즐길 만한 종류의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사람들은 오래전 흑백으로 제작된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열광했고 이후 방송사들은 너도나도 명절에는 TV 마라톤을 시작했다. ‘트와일라잇 존’은 지금도 추수감사절이나 새해 연휴에 마라톤으로 방송된다. 말하자면 명절에 방송되는 청룽표 액션영화 같은 존재인 셈이다.

왜 그런 기괴한 프로그램이 명절 TV 마라톤으로 성공을 거둔 걸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듯도 하다. 어차피 연휴에 죽치고 앉아 TV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홀로 조용히 명절을 보내는 경우가 많을 테고, 그중엔 기분이 꿀꿀한 사람도 많을 테고,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맑고 밝은 분위기의 프로그램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매번 뻔하디 뻔한 스타 청백전, 요절복통 NG 모음, 이런 것보다 약간은 특이한 소재로 명절 특집방송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차피 명절에 가족들로 북적이는 집이라면 화투를 치든 만두를 빚든 TV에 집중하는 시간은 적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TV 충성도가 높은 나홀로족을 공략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훈훈한 명절 이야기가 다소 황당한 결론으로 마무리된 점, 죄송하다. 아마도 명절이면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타향살이의 외로움 때문인 듯하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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