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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의 비애

“당신 대머리 되면 그날로 이혼인 줄 알아.”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점점 숱이 줄어드는 내 머리를 보며 아내가 엄포를 놓은 게 10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 나는 이혼을 당하지 않았다. 그건 대머리라는 게 날짜를 정해 어느 날 짠 하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게 대머리가 되어버렸으니까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당하진 않았지만 가끔 내 머리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쓸쓸한 가슴을, 아니 더 쓸쓸한 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쓸어 올릴 머리숱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라 해도 꼬박꼬박 이발은 해야 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 머리 스타일이 무기력하고 무질서하고 무성의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눈에.

모처럼 시간이 났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미용실을 갔어야 할 때를 보름이나 넘겼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바빴다. 그날따라 단골 미용실의 담당 헤어 디자이너는 쉰다고 한다. 다음날 잘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네 미용실이 눈에 띄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제발 머리 좀 자르고 들어오라는 아내의 당부가 욕실 배수구에 뭉쳐 있던 머리카락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이번 한 번만 다른 데서 자른들 뭐 어떠랴 하는 쉬운 생각도 있었고, 어디서 깎은들 대머리가 별수 있으랴 하는 자포자기의 심사도 있었다. 낯선 미용실에서 낯선 헤어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긴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런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미용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벌써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 크게 떴다 싶은 눈으로 물었지만 헤어 디자이너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나처럼 숱 적은 대머리일수록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섬세하게 머리를 잘라야 한다. 그것이 대머리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억지란 것은 나도 안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미용사도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벌써 다 자른 거란 말이죠?

“네. 더 자를 데가 있으면 말씀을 해 주세요.”

“아뇨. 됐습니다.”

“그럼 샴푸하시죠.”

나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쩨쩨한 남자답게 그냥 집에 가서 머리를 감겠다며 미용실을 나온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 미용실에는 오지 않으리라, 몇 가닥 남지 않은 내 머리를 걸고 맹세하면서 말이다.

사실 낯선 사람이 주는 상처는 별것 아니다. 대개 상처는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이 주는 것일수록 치명적이다. 집으로 들어서는 대머리 남편을 아내의 잔소리가 맞이한다.
“당신 오늘도 안 깎으면 어떡해. 아침에 머리 자르고 들어오라고 내가 말했잖아.”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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