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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인물, 여인 마리아가 아닌 미소년 요한인 까닭

1. 패디파워의 광고 (2005) 부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최후의 만찬(사진 2)’은 아마도 패러디 광고가 가장 많이 나오는 그림 중 하나일 것이다. 13명의 사람이 긴 테이블 너머에 비슷한 구도와 자세로 앉아있기만 하면, 원작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주면서, 또 엄숙한 종교화가 패러디되는 데 따른 낯설고 도발적인 느낌을 동시에 주어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리라.

2 최후의 만찬 (1495~98) 부분.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밀라노
게다가 열 명 남짓한 인물을 하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렬로 앉히려면 이보다 더 좋은 구도가 없다. 이 그림이 왜 유명하겠는가. 세 명씩 네 개의 그룹으로 모여있는 열두 제자의 모습은 예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어 안정감이 있으면서, 동시에 그룹별로 통일된 흐름이 있는 다양한 동작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 중 한 명의 배신을 예고하자 제자들이 놀라 웅성거리는 장면의 그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그림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3 마리테 에 프랑수아 지르보의 광고 (2005)
이 그림은 밀라노 어느 교회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인데 벽 너머로 공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은 뛰어난 원근법으로도 유명하다. 이 원근법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밝은 중앙 창문 앞에는 예수의 숭고하고 담담한 얼굴이 있어 제자들의 혼란스러운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난히 테이블 쪽으로 몸을 빼고 돈주머니를 쥔 채 당황하여 예수를 바라보는 제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배신자 가리옷 유다이다. 이런 극적인 요소들이 이 작품의 명성을 드높여왔고 그만큼 패러디의 소재로도 즐겨 쓰이게 되었다.

‘최후의 만찬’ 패러디 광고에 대해 그리스도교 교회는 대개 불편한 심기를 보여왔다. 그러나 패러디가 워낙 성행하고 또 광고인들이 단지 그림을 인용한 것일 뿐 종교를 모독할 뜻은 없다고 항변하면서, 교회가 특별히 이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추세였다. 그런데 그것이 뒤집히는 사건이 2005년에 일어났다. 예수와 제자들을 여성으로 바꾼 청바지 업체 마리테 에 프랑수아 지르보(마리테 프랑수아 저버)의 유럽 광고(사진 3) 사건 말이다.

4 최후의 만찬 (1450년대), 하우메 하코마르 작, 세고르베 성당 박물관
2005년 2월에 이탈리아 밀라노시 법원이 가톨릭 교회의 반발을 받아들여 이 광고의 게재를 금지했고 그해 3월에는 프랑스 파리 법원도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교회가 이 광고에 대해 분노한 결정적인 이유는 두 여성 사도가 끌어안고 있는 남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단지 그가 반라의 에로틱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원작에서 이 남성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라. 이 인물은 원래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6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온 댄 브라운의 문제적 전작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 인물이 사실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광고가 교회의 정통적인 견해대로 ‘최후의 만찬’의 등장인물이 모두 남성이라고 보고 성을 바꾸는 패러디를 했다면 광고의 모든 등장인물이 여성이었어야 한다. 그런데 요한의 자리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이 광고가 이 인물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다빈치 코드』의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그런데 불경스럽기로 말하자면 2005년 말 아일랜드에서 나온 도박업체 패디파워의 광고(사진1)가 한 술 더 뜬다. 이 광고에는 예수 앞에 포커 칩이 쌓여있고 제자들이 카드를 들고 게임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 광고 또한 『다빈치 코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인지 막달라 마리아인지 의견이 분분한 인물의 위치에 여성이 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이 광고가 빗발치는 항의를 받은 것은 당연지사. 결국 패디파워는 광고를 철수했다.

‘최후의 만찬’ 패러디는 그전부터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이렇게 『다빈치 코드』의 영향을 반영한 패러디가 집중적으로 나온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다빈치 코드』에서 ‘최후의 만찬’ 속 예수 옆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설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그 근거로 소설은 예수 옆 인물이 놀랍게도 아름다운 여성처럼 묘사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최후의 만찬’ 도상 전통을 안다면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이전부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사도 요한을 여성적인 미소년으로 묘사하고 예수 바로 옆에 배치하는 전통이 있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이전 시대의 에스파냐 화가 하우메 하코마르(1411~61)의 그림(사진4)을 보면, 제자 중 유일하게 수염이 없는 미소년이 아예 예수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 그것은 ‘요한의 복음서’ 13장 21~2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심령이 산란하여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진실히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입니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말씀하시는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았다.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의 품에 기대듯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였다.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캐어묻게 하였다. 그러자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기대며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는 ‘요한의 복음서’의 저자로 여겨지는 사도 요한이다. 이 구절로 볼 때 요한을 비교적 어리고 애교 있는 젊은이의 이미지로 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약에 베드로처럼 수염이 텁수룩한 장년의 남성이 “예수의 가슴에 기대며” 배신자가 누구냐고 속삭였다고 상상한다면…. 아마 화가들은 그런 장면을 그리느니 붓을 꺾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도 요한이 다른 제자들에 비해 어리다는 암시가 종종 있다.

또 이 구절을 보면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 베드로가 예수 옆 인물에게 손을 얹고 있는 것도 『다빈치 코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위협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귀엣말을 하기 위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또 요한 자리에 있는 것이 마리아라면 제자가 11명밖에 안 남는다는 것, 레오나르도의 ‘세례자 요한’ 등의 그림을 보면 미소년을 매우 여성적으로 묘사했다는 것 등도 반론이 될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최후의 만찬’ 해석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그만큼 레오나르도의 작품만 유명하고 다른 ‘최후의 만찬’ 그림들과 그 도상 전통이 안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분명 걸작이지만 다른 ‘최후의 만찬’ 그림 중에도 아름답고 흥미로운 작품이 많은데, 아쉬운 일이다. 대중문화는 가장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작품만을 다루고, 그만큼 레오나르도의 작품만 다시 더 유명해지고…이런 쏠림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다.




중앙데일리 경제산업팀 기자. 일상 속에서 명화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며,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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