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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말하게 하라

2009년 한국 뮤지컬이 길어 올린 최고의 수확은 단연 ‘영웅’이다. 현란한 무빙 라이트, 추격신의 긴박한 안무, ‘누가 죄인인가’ 장면의 절묘한 조화 등 한국 뮤지컬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대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연일 기립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드림걸즈’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올해 올라간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줄줄이 흥행 실패한 것과 비교해도 대조적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대형 창작 뮤지컬 초연작으론 지난해 개막했던 ‘미녀는 괴로워’에 이어 수익을 낼 두 번째 작품이 될 듯싶다.

그러나 모든 이가 ‘영웅’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진 않다. 일부 전문가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안중근은 동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딱딱하다”(동아일보) “작품이 너무 계몽적으로 흘렀다”(파이낸셜 뉴스) 등이다. “민족주의에 기댄 감상주의가 역겹다”(연극평론가 노이정)라는, 저주스러운 악평도 있었다.

비판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인간 안중근이 안 보인다=여전히 안중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사? 그의 속내를 알고 싶다고. 2. 이토는 미화됐다=이토의 번민은 역사 왜곡 아닐까. 혹시 일본 진출을 노린 사전 포석? 3. 설희가 생뚱맞다=이토 암살에 실패했다고 자살해? 그러려고 목숨을 걸었다니….

이상의 비판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왜 분석의 칼날은 언제나 캐릭터와 이야기에만 맞춰질까. 뮤지컬이란 텍스트를 분석한다면 결국 가장 핵심인 음악을 중심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장면을 따져보자. 1막 후반부, 안중근은 중국인 동지 왕웨이가 죽자 좌절한다. 성당을 찾아가 “조국이 대체 우리에게 무엇입니까”라며 흔들린다. 그때 어머니의 환영이 그에게 다가와 읊조리고, 안중근은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노래한다.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 저음으로 출발한 노래는 구슬프면서도 처연하다. 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음역대는 안중근의 선택이 결국 숙명일 수밖에 없음을, 격동적으로 전해준다. 여기에 그 어떤 구차한 설명이 더 필요하랴.

이 다음 장면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안중근을 비롯한 4명의 독립군들은 이토 암살을 계획한다. 그들을 돕던 지식인 최재형은 깜짝 놀라 한다. 위험하다며 말린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그렇다면 할 수 없네”라며 독립군을 떠나려 한다.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노래가 ‘그날을 기약하며’다. 4명이 한 대목씩 부른다. 안중근이 먼저 “이천만 동포의∼”라며 운을 떼자 최재형은 발길을 멈추고, 조도선이 “험난한 시련을∼”이라며 공감대를 넓혀가면 우덕순은 “내게 주어진 운명”으로 비장미를 슬쩍 내비치고, 마침내 유동하에 이르러 “잊을 수 없는 건 빼앗긴 조국”을 부를 땐 모두 두 손을 불끈 쥔다. 한 곡의 노래로 방황과 갈등, 그리고 의기투합의 스토리를 모두 담아낼 수 있으니, 이게 바로 뮤지컬 아닐까.

‘남태평양’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본을 썼던 뮤지컬 거장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일찍이 이렇게 설파했다. “뮤지컬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은 뮤지컬엔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결국 음악이라는 이 진부한 진실, 그런데도 우린 왜 이를 쉽게 잊을까. 전문가들이 차가운 이성으로만 작품을 재단하려 할 때, 관객은 이미 자신의 가슴을 쳐오는 노래 선율에 들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있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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