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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추의 현대판 ‘연희’, 어느새 3000회

고전소설 『이춘풍전』의 주인공 춘풍은 춘향이나 심청 못지않은 공연예술의 단골 소재다. 마당놀이의 종갓집인 극단 미추는 1984년 이 원작을 각색해 같은 이름의 마당놀이로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공연했다. 올해는 춘풍의 바람기 본능을 강조하기 위해 ‘이춘풍난봉기’라는 제목으로 넷째 판을 열었다.

춘풍은 이미 연극에서도 그 쓰임새가 입증된 ‘난봉지존’이다. 토속적인 질감이 물씬 풍기는 독립 브랜드 연극을 완성한 극단 목화의 극작 · 연출가 오태석에게는 ‘춘풍의 처’가 있다. 연극은 동해안 미물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평양감사가 된 춘풍의 아내가, 기생 추월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다 사기횡령으로 관가에 묶여있는 춘풍 부자를 구한다는 이야기다. 현실과 판타지가 조합된 이 목화의 ‘십팔번’도 마침 대학로 원더스페이스동그라미 극장에서 이달 말까지 공연된다.

이야기 얼개가 복잡하고, 인물 다양성이 특징인 목화의 연극에 비해 또 한 명의 연출 거장 손진책이 벼린 ‘이춘풍난봉기’는 이미 규정된 형식대로 놀이성이 빼어난 작품이다. 사방이 열려있는 마당(arena)무대를 중심으로 춤과 노래와 음악(연주)을 풀어내고, 세태 풍자와 해학으로 이 요소를 두루 잇는 형식을 흔히 ‘연희(演戱)’라고 하는데, 마당놀이는 미추가 완성한 현대판 연희의 자랑스러운 성과다.

이 독특한 양식을 성공시킨 인물이 손진책을 비롯해 극작 김지일, 작곡 박범훈, 안무 국수호다. 이들은 1981년 첫 작품 ‘허생전’을 시작으로 29년 동안 이 맥을 잇고자 정진하고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능청 연기의 대가들인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3인방’ 김종엽 · 윤문식 · 김성녀다.

일반적으로 ‘가부키(歌舞伎)’와 ‘노(能)’ 등 고도로 양식화한 장르를 갖고 있는 일본, 폼생폼사의 ‘경극(京劇)’을 자랑하는 중국에 비해 한국의 공연예술에는 그런 장르가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있고 없고 우열의 문제가 아닌, 즉흥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유전자에서 찾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인 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마당놀이는 현대 한국 연극에서 양식화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 ‘심청전’ ‘놀부전’ 등과 함께 미추 마당놀이 레퍼토리를 대표하는 ‘이춘풍난봉기’도 마당놀이 양식을 전형적으로 반영했음은 물론이다.

관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가수가 나와 노래로 흥을 돋운다. 이어 놀이꾼 깃발을 든 기수 뒤로 꼭두쇠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징·꽹과리·장구·북 등 사물을 치고 상모도 돌리며 등장해 질펀한 놀이를 연다. 관객들이 충분히 워밍업이 됐다 싶을 때 판의 리더인 꼭두쇠가 축원을 비는 고사를 알리면, 관객들이 고사상 앞으로 나와 제를 올리기 시작한다. 꼭두쇠의 구수한 비나리가 잦아들면 배우들은 공연 준비를 위해 퇴장하고, 이어 본 공연이 시작된다.

마당놀이 스타 윤문식이 타이틀롤을 맡은 ‘이춘풍난봉기’는 현대판 카사노바 이야기다. 부모에게 막대한 가산을 물려받은 이 사내는 친구들과 어울려 상투집(퇴폐이발소), 주물럭집(안마시술소) 등 요즘 말로 퇴폐유흥업소를 제 집 드나들듯 하다 쪽박 차는 신세가 된다. 난봉 본능이 발동한 춘풍은 대동강 신규 사업에 혹해 호조에서 ‘공적자금’ 2만 냥을 빌려 평양으로 향한다.

하나 ‘글로벌경제특구’인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치마폭이 동해보다 넓고 대동강처럼 깊어” 남정네의 마음과 재물을 빨아들이는 기생 추월(김성예)이다. 다행히 그에겐 지혜로운 현모양처 김씨(김성녀)가 있어, 평양감사의 ‘남장비장’으로 변장한 그의 기지로 춘풍은 퇴폐의 온상에서 빠져나와 개과천선한다.

양식화의 숙명으로, 뻔한 이야기와 전개이긴 하나 고전 재해석을 통한 세태풍자는 마당놀이의 금과옥조다. 이번엔 ‘4대 강’ ‘세종시’ ‘미디어법’ 등 따끈따끈한 현안들이 풍자의 도마에 올랐다. 대목마다 “까르르!” 이어지는 관객의 폭소. “여론은 바람 앞의 ‘촛불’ 같다”는 둥 찌릿한 비유도 난무한다.

꼭두쇠 김종엽과 윤문식이 치고받는 입심 대결에다, 사방에서 스파크를 내는 김성녀·성예 자매 대결이 중첩되면서 ‘이춘풍난봉기’는 이전 작품 버금가는 짜임새를 보였다. 덕분에 꽁꽁 언 겨울 공연계에 그나마 ‘봄바람’(춘풍)을 날리고 있다. 마당놀이는 딱히 스트레스 풀 곳 없는 서민 중년 관객들의 공감 덕에 13일 3000 회를 맞는다. 내년 1월 3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마당놀이 전용극장.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공연예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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