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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를 위한 충고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마리사 천 미국 법무부 부차관보가 사무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업무 자료를 읽고 있다. 천 부차관보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녔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권위 있는 법률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를 만들었다. 사진은 천 부차관보가 보내준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90년 2월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권위 있는 법률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선출됐다. 하버드 대학 탄생 104년 만에 이 학술지의 흑인 편집장이 나온 것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오바마를 인터뷰했다. 오바마는 “내가 선출된 건 미국의 진보를 의미하지만 내 이야기가 흑인과 관련해 ‘이제 모든 게 OK다’라고 말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능력 있는 수많은 흑인 학생들에게 여전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며 “나는 소수계의 시각을 알리는 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美 법무부 한국계 최고위직, 마리사 천 부차관보

오바마 편집장 도와 하버드 로 리뷰 발간
그런 오바마와 함께 ‘하버드 로 리뷰’를 만들었던 한국계 여학생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고위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리사 천(한국명 천미선·44) 법무부 부차관보다. 한국계 미국인으론 법무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그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편집장이었을 때 훌륭한 청취자였고, 뛰어난 리더였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견해를 경청했으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상호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천 부차관보는 2008년 미국 대선 때 오바마를 도왔다. 오바마 캠프의 법률자문위원회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리더십 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TV 프로그램이나 공개 행사에 나가 오바마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미국에 사는 한국계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건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것”이라며 “좋은 의도를 가진(well-intentioned) 부모가 자녀에게 특정한 길을 가라고 압박할 때 젊은이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고, 그걸 추구할 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고도 했다.

마리사 천 법무부 부차관보
천 부차관보는 명문 예일 대학을 최우등으로, 하버드 대학 로 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법무부의 허락을 받고 나서 인터뷰에 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었을 때의 얘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백악관과의 협의를 거쳐 답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괄호 안의 *은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옳은 일을 한다는 건 멋진 일”
-법무부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서열 3위인 토머스 페렐리 부장관 밑에서 일하고 있다. 페렐리 부장관은 시민권, 반독점, 환경, 조세 등과 관련한 소송 문제를 책임지고 있다. 나는 그를 보좌하는 5명의 부차관보 중 한 사람이다. 반독점, 건강보험 사기, 지적 재산권, 예산 등에 대한 이슈를 주로 다루고 있다.”

-법무부 고위직을 맡기 전엔 어떤 일을 했나.
“로 스쿨을 마치고 나서 연방 고등법원 판사보로 잠시 일했다(*미국에선 재학 시절 성적과 과외활동이 우수한 법대 졸업생에게 법원 업무를 경험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졸업한 다음 해인) 1992년 첫 직장인 법무부에 들어갔다. 법무장관 특전 프로그램의 혜택을 입은 것이다. 4년 동안 연방정부의 민권법을 위반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참 고무적이었고 보람이 있었다. 이후 1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법률회사 ‘콜벤츠, 패치, 더피 & 배스’라는 곳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계약 위반, 반독점 등 상행위 관련 소송을 담당했다(*나중에 회사의 핵심인 파트너가 됐다).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중재인으로도 활동했다.”

-법무부엔 다른 한국계 변호사도 있나.
“한국계 변호사, 전문가들이 여럿 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우리에게 늘 말하는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건 참으로 멋진(terrific) 일이다. 행정부에서 그런 일을 하고 경험을 쌓고자 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늘어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한국계도 개성·특성 살려야 성공”
-법무부의 고위직을 맡기 전 한국 교민 사회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고 들었다.
“87년 로스앤젤레스 한미연합회(KAC)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한국계 교민사회와 접촉했다. KAC는 한국계의 권익 향상을 위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나는 주류 사회나 언론이 한국계 공동체를 잘 이해할 수 있게끔 나름대로 노력했다. 지역 언론이 한국계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한국계를 잘 알리는 일 등에 주력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북캘리포니아 한국계 변호사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젊은 한국계 변호사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mentoring)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아태 변호사협회(NAPABA)는 2004년 그를 ‘40대 미만 최고 변호사’로 선정했다).”

-하버드 로 리뷰 에디터를 지냈다. 당시 어떤 일을 했나. 편집장이었던 오바마에 대한 기억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일한 건 행운이었다. 그는 매달 발간되는 ‘하버드 로 리뷰’를 일류 학술지로 만들기 위해 애썼고, 훌륭한 태도(in a stellar manner)로 우릴 이끌었다. 그는 총명하고 재능 있는 기자였을 뿐 아니라 훌륭한 청취자였고, 리더였다. 그런 오바마를 우리 편집진은 진심으로 존경했다. 나는 법의 새로운 분야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분야의 에디터를 맡았다. 특히 매년 5월엔 ‘법에 있어서의 진보(Developments in the Law)’라는 이름으로 이 분야에 대한 특집판을 내는 데 나는 다른 한 명의 에디터와 함께 특집판을 책임졌다. 한국의 신문사가 새로운 토픽에 대해 장기간 취재하고 조사해서 좋은 기사를 내놓듯 우리도 1년 프로젝트로 특집판을 내는데 그건 ‘하버드 로 리뷰’의 독특한 면 중 하나다.”

-오바마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편집장으로서 우리가 쓴 모든 것을 검토하고 편집하는 일을 했다. 앞에서 말했지만 그는 뛰어난 편집장이었다. 나는 공립학교의 재정개혁에 관한 문제를 특집판으로 만들었는데 오바마 편집장은 그걸 깊이 있게 검토해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도와줬다.”

-한국계 젊은이가 미국의 공직에 더 많이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이 독특한 것은 다른 역사와 문화, 관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미국은 위대하고 부강한 나라가 됐다. 한국계 젊은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자기만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야 한다. 한국계 젊은이가 공직에 진출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길러야 한다. 공익과 정의를 위한 헌신, 공공정책에 대한 관심, 날카로운 호기심, 교육과 경험에 바탕한 개인 역량 등이다.”

천 부차관보는 KAIST 총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을 지낸 고 천성순 박사의 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교육받았으나 7∼9세 땐 한국에서 살았다.

“법률은 사회에 자유와 질서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돕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됐다”고 한다. 남편 백덕현씨도 변호사다. 둘 사이엔 1남 1녀가 있다. 영화 ‘비벌리힐스 캅3’ ‘덤 앤 더머’에 출연한 배우 찰스 천은 남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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