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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세계복싱챔피언의 '무한도전'

“이제 탈북 소녀가 아니라 세계 챔프로 충분하지 않나요?”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복서 최현미. 그 녀는 이제 자신을 탈북 소녀가 아닌 챔피언으로 봐 주길 바란다. 지난달 21일 WBA 세계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한 뒤 잠시 쉬고 있는 최현미를 만났다.



무한도전이 함께한 ‘WBA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



권투의 인기가 이토록 높았나 싶을 정도로 가득 들어찬 객석. 현미의 2차 방어전이 열리던 날, 수원 성균관대 실내체육관은 1500여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찼다. 현미를 향한 기대와 함께 MBC ‘무한도전’ 멤버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날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박명수는 경기 해설, 정준하는 장내 사회, 노홍철은 응원단장, 정형돈과 길은 현미의 스태프를 맡았다.

이들의 만남은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현미의 2차 방어전 일정이 잡힌 후, 3개월간 동고동락했다.



“아침에 운동할 때 같이 뛰어주고, 제가 스파링하면 응원해주셨죠. 또 운동하다 힘들어서 지쳐 있을 땐 웃기는 얘기도 해주시고. 오빠들이 고생 정말 많이 하셨어요.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사기 계약으로 '파이터 머니'도 못 받아



화려함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권투는 더 이상 인기 종목이 아니다. 화려한 의상과 음악은커녕 링 위에 선 두 선수는 서로를 때리려 주먹을 날린다. 비인기 종목이기에 겪어야 했던 설움을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남한 물정을 모르다 보니 어려움은 더했다. 프로 전향 과정에서 모든 이권을 넘기는 사기계약을 맺었고, 이 때문에 '파이트 머니'마저 받지 못했다. 법정 투쟁 끝에 계약이 철회되면서 아버지 최영춘 씨가 매니저로 나섰다.



“많이 답답하게 살았죠. 어린 아이가 링 위에 올라가서 매 맞고 번 돈을 다 뜯어가지고 갈 때 제일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세계 챔피언이 됐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WBA 규정에 따라 타이틀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는데 경기비용을 마련하기 힘들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성균관대 스포츠학부 단장 윤승호 교수였다. 윤 교수는 뉴스를 통해 현미를 알게 됐다.



“최현미 선수가 1차 방어전을 하는데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혹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들어봐야겠다 싶어 만났죠. 최 선수가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대학에 있으니까 공부시키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윤 교수는 현미의 성균관대 입학과 함께 2차 방어전 준비를 도왔다. 현미의 '무한도전' 출연은 윤 교수의 부인인 방송인 김미화씨의 역할이 컸다. 윤 교수로부터 현미의 이야기를 들은 김씨가 무한도전 측에 현미의 출연을 제안한 것이다. 윤 교수는 앞으로도 현미가 세계 챔피언으로 롱런할 수 있도록 학교 측과 함께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생일날 미역국도 못 먹이는 부모 마음 아세요?"



현미가 권투를 시작한 건 북한에 살던 12세 때였다. 평양의 체육영웅 양성소로 알려진 김철주 사범대학 권투 양성반에 스카우트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많은 새터민이 굶주림을 이유로 남한행을 택하지만 현미는 국제무역회사의 임원이었던 아버지 덕에 부유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북한을 떠난 건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남한에 와야 자식들이 크게 잘 될 수 있겠다. 자유를 찾아 왔다는 말이 맞아요. 북한에 감정이 있던 건 아니에요. 자유의 땅에서 자식들을 키워 볼 마음에 왔어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자식들은 스스로 힘으로 대학에도 가고 챔피언도 됐다. 최 씨는 오히려 아버지를 걱정해주는 속깊은 현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식이 거꾸로 부모 걱정을 해주니까 가슴이 아프죠. 2차 방어전을 준비할 때였어요. 11월 7일이 현미 생일이었는데, 미역국을 먹기 위해 집에 왔더라고요. 그런데 체중 조절 중이라 현미 손을 잡고 다시 도장으로 갔습니다.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 못 먹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딸을 키워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MT도 가고…또래들과 추억 만들고 싶어요.”



현미는 내년 3월, 성균관대에 입학한다. 스무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을 나이, 대학생이 되면 뭘 가장 하고 싶냐고 물었다.



“또래들하고 MT도 가고 OT도 가고 싶어요. 제가 학교 추억이 없어요. 수학여행이랑 졸업여행 같은 건 한번도 못 가봤고요. 남들 놀 때 항상 운동 했어요. 대학교까지 그러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런데 경기 일정이 MT 가고 할 시즌이 될 것 같아요. 느낌이 안 좋아요.”



링 위에서의 카리스마는 간 데 없다. 2차 방어전 당시 학교 선배들이 현미를 응원하며 "밥 사줄게"라고 외쳤다고 하자, "그 선배들 얼굴 기억하냐"고 묻는다. 지금 순간만큼은 챔피언이 아닌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로 부푼 예비 새내기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앞둔 지금, 현미 앞에는 3차 방어전이 기다리고 있다.



“링 위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얼마만큼 노력했는지가 보이거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3차 방아전 때는 더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최현미하면 '복싱 잘하는 여자애!’로 기억하실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할게요.”



최현미의 2차 방어전 현장과 인터뷰 영상은 아래 동영상 또는 TV중앙일보에서 볼 수 있다.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황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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