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철도노조 8일 만에 백기 … 시민은 참아줬고 정부는 원칙 지켰다

철도노조 김기태 위원장이 3일 오후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파업 철회를 선언한 뒤 회견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노조의 파업철회는 시민과 정부에 대한 사실상 백기투항이다. 정부는 예전 정부와 달리 흔들리지 않았다. 원칙에서 벗어난 협상을 하거나 당근책을 내놓지 않았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했다. 시민과 정부가 2인3각 경기를 하듯 한뜻으로 움직였다. “이번 기회에 고질적인 파업병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일이었다. 정부가 대국민담화문을 내놓은 날이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노동부·지식경제부·관세청이 총출동했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국방부는 대체인력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정부가 모든 행정역량을 동원해 철도노조에 대응하겠다는 뜻을 피력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러면서 “파업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 달라”고 국민의 협조를 구했다.



파업만 하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적당히 타협하던 예전 정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2003년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자 징계받아 해고된 사람을 복직시켰다. 2002년에는 해고자를 자회사에 취업시켜줬다. 노조로선 파업으로 징계를 받아도 잃을 게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정부의 이런 강공의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철도노조의 견고하던 파업대열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파업 6일째까지 100여 명에 그쳤던 복귀자가 2일 500여 명으로 늘었다. 하루 뒤에는 1700여 명까지 증가했다. 코레일은 80여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노조는 물론 파업에 참여한 개개인에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키로 했다. 조합원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정부 방침에 동조한 것은 노조에 더 큰 부담이었다. 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구로역에서는 대체기관사의 실수로 인천과 수원발 청량리행 열차가 40~60분간 지연돼 출근길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승객들은 예전처럼 매표소를 부수거나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7일 저녁에는 전국 300여 개 기차역의 발권 시스템과 홈페이지, 전화자동응답(ARS) 예약시스템 등이 먹통이 됐지만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운행이 60%대로 줄자 다른 교통편을 이용했다. 이헌석 전 철도기술연구원장은 “불편을 참아준 시민들이 파업병을 고친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코레일과 정부의 대응도 체계적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조의 교섭 과정 태도와 투쟁지침 등을 분석한 결과 16일께부터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파업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우선 물류 차질에 대비해 화주들에게 긴급 화물은 미리 운송하고 최소 5일치의 재고량을 쌓아두도록 당부했다. 코레일이 파업 초기 화물열차를 평소 300편에서 10편 내외로까지 떨어뜨린 데는 이런 준비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필수공익사업장에 파업이 날 땐 필수업무를 유지할 수 있는 인력을 어느 정도 배치해야 한다는 제도도 효과를 발휘했다. 국민 불편을 감안해 전원이 파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2006년 도입됐다. 철도의 경우 조합원의 30%는 일을 해야 했다. 파업위력이 예전만 못한 이유다.



장정훈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