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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나포들녘에 보리 심은 뜻은 … 사람·철새 아름다운 공존

금강호에서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다. 저녁 어스레 무렵이면 철새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신비로운 비행을 연출한다. 금강 하구 둑에는 매년 10월 말 100여 종의 겨울 철새 60만~70만 마리가 찾아와 이듬해 3월 초까지 머문다. [군산시 제공]

“비상하는 새들의 모습이 뫼비우스띠 같기도 하고, 물고기나 도넛 비슷하기도 하고… 정말 신비롭네요.”2일 전북 군산시 나포면 금강하구 둑. 철새들의 군무(群舞)에 넋을 잃고 쳐다보던 관광객들의 입에서 잇따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저녁 어스레한 하늘에서는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3~4㎞ 긴 대열을 지어 비행을 펼치고 있었다. 10~20분 전까지만 해도 강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섬처럼 떠 있던 새떼였다. 새들은 한순간 회오리바람처럼 허공으로 떠올라 모이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꿈틀거리는 점묘화를 연출해 냈다. 금강하구 둑은 국내 최고의 철새 도래지다. 10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60만~70만 마리가 날아 와 월동한다. 전 세계 수천 마리밖에 없다는 희귀조인 검은머리물떼새(천연기념물 326호), 멸종위기종인 검은머리갈매기를 비롯해 큰고니·가창오리·쇠기러기 등 100여 종에 이른다.

군산시 나포면 농민들이 금강하구둑 주변의 십자들녘에 나와 볏짚과 보리밭을 살펴보고 있다. 보리는 겨울철 철새들이 먹이로 쓸 수 있도록 농민들이씨를 뿌린 것이다. [군산=프리랜서 오종찬]
금강 철새조망대의 한성우(생물학) 박사는 “철새의 군무를 1㎞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탐조여행 코스로 최고”라며 “일본의 ‘야조회’(새 관찰 모임)를 비롯해 해외 관광객만도 매년 수천 명씩 찾아 온다”고 말했다.

이곳이 철새 도래지가 된 것은 1990년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하구 둑이 설치되면서다. 넓은 담수호와 모래톱·갈대밭 등 서식지가 형성되자 철새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좋은 생태환경만으로 철새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철새와 공존하려는 인근 주민들의 노력이 금강하구 둑을 국제적인 명소로 가꿔냈다.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주곡리·옥곤리에 사는 200여 농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농민들이 경작하는 430㏊의 나포면 십자들녘엔 지금 농민들이 뿌린 보리가 파릇파릇한 싹을 내밀고 있다. 수확용이 아니라 철새 먹이로 주기 위해 심었다. 5~10㎝로 키가 자란 보리밭에는 기러기·오리 무리들이 아침·저녁으로 수백~수천 마리씩 교대로 내려와 싹을 뜯어 먹는다.

넓은 들판엔 볏짚도 푹신하게 깔려 있다. 농민들이 지난달 콤바인 수확을 하면서 철새 쉼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볏짚을 10~15㎝ 크기로 잘라 놓았다. 새들은 볏짚에 내려앉아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낟알을 주워 먹기도 하고, 따뜻한 볕을 쬐면서 휴식을 즐긴다. 서포리 서왕마을 김종곤(68) 이장은 “다른 지역 들판을 가면 맨땅 논바닥에 볏짚을 흰색 비닐로 묶어 놓은 사일리지(가축용 먹이)만 뒹군다”며 “우리 지역에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추운 겨울에 찾아오는 귀한 손님(철새)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볏짚을 풀어 놓고 낟알까지 남긴다”고 말했다.

십자들녘의 농민들이 철새 쉼터 조성에 앞장선 건 4~5년 전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피땀 흘려 재배한 곡식을 다 뜯어 먹는다”며 겨울이면 몰려드는 철새를 내쫓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일부는 독극물을 놓기도 하고, ‘빵빵 폭음기’를 터뜨렸다. 하지만 철새와 함께 외지인들이 손수 찾아오면서 생각을 바꿨다. 농민 김동묵(60·서포리 원서포 마을)씨는 “새가 애물단지가 아니라 보물단지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폭음기를 자진 철거하고, 허수아비도 수거했다. 2~3년 전부터는 아예 농약을 치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밀렵행위 감시와 단속에도 앞장선다. 폭설이 내리면 들판에 나와 곡식을 뿌리거나 눈을 헤집는 작업을 한다.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굶주림에 지쳐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금강하구 둑은 한 해 50만~6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지역 경제에 일조한다. 농산물은 철새가 찾는 청정 생산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지역 친환경 ‘철새도래지 쌀’은 수출 특화상품으로 지정됐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두루미 하나를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일본의 이즈미를 뛰어넘는 생태관광지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군산=장대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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