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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몬테스 마술’ 펼칠 것”

칠레와인 ‘몬테스 알파’를 생산하는 더글라스 머레이가 2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프리미엄급 와인으로 세계 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앞에 놓인 와인은 더글라스 머레이의 이름을 따서 만든 울트라 프리미엄급 ‘몬테스 알파 M’. [안성식 기자]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80만 병이 팔린 칠레 몬테스 와인. 세 명의 동업자와 함께 칠레 와인의 세계화를 이끈 더글라스 머레이는 2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비즈니스센터로 들어서면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두 번째 찾아온 암과 싸우느라 124㎏이었던 몸무게는 82㎏으로 줄었다. 그는 한국에 오려고 두 번째 수술 일정도 미뤘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잔에 담긴 몬테스 와인을 몇 모금 마셨다. 식도암 수술을 했는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는 “와인을 마시지 말라는 처방은 받지 않았는데, 수술 직후에는 금속 맛이 나더니 점차 좋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칠레‘몬테스 와인’공동창업자 더글라스 머레이





머레이는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스페인 주류회사를 거쳐 1980년부터 칠레 와이너리 ‘산 페드로’에서 수출 담당으로 일했다. 그곳의 수석 와인메이커였던 아우렐리오 몬테스와 함께 고급 칠레 와인을 만들자고 뜻을 모은 뒤 지금의 몬테스 와이너리를 차렸다. 자금 담당 알프레도 비다우레와 설비 전문가 페드로 그란드가 힘을 합쳤다. 머레이는 “중년의 사내 네 명이 세계시장을 보고 뛰어들었는데, 처음 2년 동안은 월급도 받지 않고 일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이 모였다지만 프리미엄 와인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와이너리를 설립할 당시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보통 1㏊(1만㎡)에서 재배된 포도로 와인 40~45t을 만들곤 했다. 우리는 같은 면적에서 3.5t만 생산했다. 와인의 질에는 얼마나 응축된 포도로 만드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다른 곳에 비해 생산량이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응축미를 살리려 했다.”



-품질을 끌어올린 비결이 또 있나.



“칠레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시도를 계속 했다. 프랑스산 오크통을 처음 숙성에 사용했다. 칠레에서도 가장 좋은 생산지로 꼽히는 아팔타 지역에 와이너리를 만들었 다. 15년 동안은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최신 설비를 갖추는 데 쏟아부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와이너리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어려웠겠다.



지난해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공동창업자 알프레도 비다우레를 기리기 위해 그의 얼굴을 담은 천사의 그림을 라벨에 넣은 ‘몬테스 슈럽’.
“당시 칠레에서는 고급 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는 수출이었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마케팅 비용이 없기 때문에 영국과 미국 시장에만 집중했다. 가장 먼저 몬테스 알파를 만든 뒤 영국의 평론가 오즈 클라크에게 샘플을 보냈다. 라벨도 인쇄된 게 없어 손으로 그렸다. 그가 쓴 글의 제목이 ‘드디어 칠레에서도 응축된 와인이 나왔다’였다.”



-미국 시장은 어땠나.



“오즈 클라크가 ‘뚜껑을 연 상태로 두면 웬만한 와인은 식초가 되는데 이틀 후에 다시 마셨더니 훨씬 괜찮더라’는 평을 써줘서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미국은 정착하는 데 조금 오래 걸렸다. 미국의 와인 평론가들에게는 규칙이 있는데, 두세 개 주에 상품이 깔린 다음에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각 나라에 맞는 전략을 썼다. 일단 프랑스 고급 와인처럼 칠레에서는 처음으로 나무로 된 상자에 넣어 수출했다. 미국에선 ‘수퍼마켓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칠레 와인과 차별화하기 위해 한 단계 윗급이라는 컨셉트로 다가갔다. 결국 시장 자체에서 칠레 와인과 몬테스, 이렇게 두 단계로 인식을 하더라.”



-몬테스의 성공이 칠레 와인의 신화로 불리는 이유는.



“칠레 최초의 프리미엄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이 첫 빈티지인데 6개월 후 콘차이 토로가 비슷한 급의 돈 멜초를 내놨다. 한 단계 윗급인 ‘몬테스 알파 M’(※머레이의 이름을 딴 와인)은 96년에 처음으로 생산됐는데, 콘차이 토로가 프랑스의 무통 로칠드와 합작해 98년부터 울트라 프리미엄급 알마비바를 생산했다. 이후 고급 와인이 쏟아져 나왔고, 칠레 와인은 비로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게 됐다. 80년대 전체 수출액이 12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5억 달러가 됐다. 우리의 시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머레이는 2004년 칠레 국회의 혁신 및 기술 대표자로 선임됐고, 외무장관으로부터 수출 혁신상을 받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나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 대상이 됐다.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말하면.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네 명의 파트너십과 좋은 와인을 만들 땅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전 세계에서 훌륭한 마케팅을 펼치는 거래처를 만난 것 등이 합쳐져 미스터리한 성공이 이뤄졌기 때문에 나는 ‘몬테스의 마술’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나라인가.



“이번 방문이 14번째다. 암 투병 중 나라식품 관계자들이 보내준 격려와 사랑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국에 왔어야 했다. 와인으로만 보면 젊은이들이 와인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잠재력이 크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비다우레는 지난해 근육병의 일종인 루게릭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라식품은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2005년부터 한국근육병재단에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머레이도 1일 올해 기부 행사에 참여했다. 2차 수술을 앞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비다우레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 와이너리에 카페를 만들었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와인을 발전시키기 위한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혹시나 죽게 되면 와이너리에 ‘더글라스 머레이 레스토랑’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김성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한국에서의 몬테스 와인=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98년. ‘2002 FIFA월드컵 조 추첨’에서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이 메인 와인으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몬테스 알파 M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만찬 와인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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