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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애국지사 박영준 장군

지난달 27일 별세한 박영준(朴英俊.85.예비역 소장)장군은 1930년대 이후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고, 건군 이후에는 초대 정훈감을 지낸 軍의 원로다.



특히 朴장군은 상해(上海)임시정부 법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남파(南坡) 박찬익(朴贊翊.48년 작고)선생과 함께 부자(父子)독립운동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4남2녀중 막내로 15년 중국 용정(龍井)에서 태어난 朴장군은 어린시절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15세 때인 30년 상해로 무작정 부친을 찾아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인생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친의 명을 받고 朴장군은 38년 지하 항일조직인 한국광복진선을 결성,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42년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임관한 후에는 대일(對日)무장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43년 민족지도자 신규식(申圭植)의 질녀이자 임정요인인 신건식(申建植)의 딸인 순호(順浩.79)씨와 결혼했다.



순호씨는 "당시 임정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가까와졌다" 면서 "朴장군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열적이었다" 고 회고했다.



朴장군이 45년 광복군 제3지대 1구대장을 맡았을 때 동료였던 장호강(張虎崗)장군은 "당시 조국을 찾겠다는 朴장군의 뜨거운 의지에 부하들은 물론 동료들도 감복했다" 고 회상했다.



해방후 朴장군은 3년간 중국에 남아 현지 한국인 보호에 주력했다. 중국인 탄압에 앞장섰던 일부 한국인들이 망국노(妄國奴)로 불리우는 등 집단 테러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朴장군이 평소에 "우리 민족이 다시는 망국노라는 말을 들으서는 안된다" 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48년 귀국한 朴장군은 12월 국군 소령으로 특별임관했다. 광복군 계급이 중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강등된 셈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특히 건군 초기 국군 간부의 주력이 일본군 출신으로 짜여져 있었지만 "새 나라를 지키는데 과거는 중요치 않다" 면서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52년 초대 정훈감을 지낸 朴장군은 61년 현역으로 한국전력 사장에 임명됐고 63년에 퇴임했다. 이후 광복군동지회장.백범기념사업회장 등을 역임했다.



딸 천민(天敏)씨는 "평소에는 다정하고 자상했지만 아버지의 출.퇴근시에는 문앞에서 부동자세로 서있어야 했다" 고 규율을 중요시하는 朴장군의 단면을 전했다. 朴장군은 29일 부친의 묘소가 있는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왕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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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