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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참 맑은‘바보’19명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이승환 지음, 이가서, 262쪽, 1만2000원


몸이 밀어내는 글이 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마음이 파닥거릴 때, 불쑥 쏟아지는 글이다. 그런 글은 탄생할 때의 격한 순간을 감추기도 어렵다. ‘글에 냄새가 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마련된 말이다.

페이지마다 ‘흙 냄새’가 진동하는 이 책도 분명 그런 탄생 과정을 거쳤을 터다. 저자가 농민신문사 기자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책은 자본이 인간성마저 삼켜버리는 시대에 스스로 흙에 기대 살기로 작심한 19명의 ‘철부지’ 어른들을 인터뷰했다.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꼼꼼히 글로 엮었다. ‘하늘의 시를 땅에 쓰는 농부가 꿈’이라는 저자에겐 몸이 채근했을 글임이 분명하다.

하긴 책이 담아낸 열 아홉 갈래의 삶의 무늬 역시 인간의 몸에 바짝 붙어있다. 제주도 바람에 혼을 빼앗긴 채 일평생 셔터만 눌러댔던 사진가(김영갑)나 농촌에서 자연의 외롭고 쓸쓸한 서정성을 노래하는 시인(고재종) 등 치열한 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지독한 경쟁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네 사회에선 ‘철없는 짓’이란 비난에 시달리기 딱 좋은 삶이다. 하지만 저자가 안도현의 시를 ‘철없음을 위한 부역’이라 전하듯, 이 책 또한 철없는 정직한 삶을 위한 부역으로 읽힌다. 이를테면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남에게 나눠줘야 모두가 산다’는 유기농의 대가 원경선의 가치관이나, ‘예수처럼 사는 것은 삶에서 피어난 신학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여성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조화순 목사에 관한 대목이 그렇다.

책에 유독 ‘농부’ 타이틀을 단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화를 통해 인간의 연대를 고민했다면, 이제 자연과의 연대를 모색할 때가 아닐까. 강원도 화천의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의 삶은 그 해답일지 모른다. 농약·비료를 쓰지 않은 농작물을 고집하고, 몸이 아플 땐 자연이 가르쳐 준 민간 요법에 기대는 삶. 저자는 임 목사를 일러 이치를 돌파했다는 뜻에서 ‘돌파리(突破理) ’라 부른다.

덮고 생각하니 책은 10년에 걸쳐 이땅의 ‘돌파리’들의 삶을 추적한 흔적이다. 문화·농업·종교계를 넘나들며 가난하지만 올곧은 삶을 뒤쫓았다. 스스로를 ‘문청’출신이라 밝혔듯 글솜씨도 맛깔스럽다. 책이 전하는 김용택 시인의 애송시 한 토막. ‘나는 엄마가 좋다/왜그냐면/그냥좋다’ 김 시인의 제자 아홉살 동수의 시라고 한다. 흙탕물 같은 세상에 물방울처럼 맑은 사람들을 증언하는 이 책도 참 좋다. 왜 그냐면, 그냥 좋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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