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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07> 무속의 신이 된 역사 속 그들

단종의 유배지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에서는 매년 단종제가 열립니다. 단종제가 끝나면 제상의 대추를 얻으려는 이들이 줄을 짓습니다. 아이 못 낳는 사람에게 신비한 효험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비운의 임금 단종은 이 지역 최고의 무신(巫神)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신이 된 역사 속 인물을 알아봅니다.



난리 겪은 백성들 구원 갈망 … 맥아더 장군 모시는 무당도 있답니다

이경희 기자



옥황상제 같은 천신(天神)부터 남이 장군 같은 장군신, 각종 산신(山神), 조상신과 잡귀잡신까지 무신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역마다, 무당마다, 굿의 종류에 따라 모시는 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중 누가 들어도 알아차릴 만한 신이 바로 역사적 인물이다.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무당의 사례가 학계에 보고될 정도로 그 인물신 역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중요도가 높은 신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최근 발간한 민속백과사전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편에서 다룬 주요 무신을 간추렸다.



관성제군 『삼국지연의』의 영웅 관우(?~219)를 신격화했다. 관성·관제·승제·성제·승전님·관우·관운장·관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충성심과 의리가 있으며 용맹하고 위엄 있는 장수로 통하는 관우는 중국에서 먼저 문무를 겸비한 호국신으로 신격화됐다. 중국의 관왕묘 제도는 원군으로 들어온 명나라 장수들에 의해 전파된다. 왜적을 물리친 것이 관왕의 힘이라 믿던 그들이 선조 31년(1598) 한양에 관왕묘를 세우게 한 것이 시초다. 관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신이자 호국신이며 재물신, 병을 다스리는 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숙종·영조·정조대를 거치며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지낼 정도로 번성하던 관우신앙은 1908년 일제의 압력으로 철폐된다.



관우가 무속의 신으로 정착된 건 고종 20년(1883)의 일이다.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충주로 피란 갔을 때 환궁 시기를 점치며 신임을 얻은 무녀 이씨가 스스로를 ‘관성제군의 딸’이라며 관왕묘 건립을 건의해 북묘를 세운 것이다. 한편 무녀 윤씨는 고종의 계비 엄비(1854~1911)의 명을 받아 남묘를 세운다. 두 무녀는 각기 진령군·현령군으로 봉해진다. 이후 한양에선 무속인들이 관성제군을 앞세워 점 보러 오는 사람들의 금품을 갈취하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번성했다. 관성제군은 무속에선 소원 성취에 영험한 신으로 통한다. 서울굿과 경기굿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서울굿엔 관성제군이 등장하지만, 경기굿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김유신(595~673) 전란을 겪는 민중은 구원의 대상으로 장군을 떠받든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장군 김유신은 영웅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해 신격화됐다. 김유신은 가야국 시조 수로왕의 12대손으로 북두칠성의 정기를 타고났고, 태기가 있은 지 20개월 만에 출생했다는 탄생신화를 갖고 있다. 어렸을 때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배워 신검으로 바위를 가르고, 장수가 되어서는 신술로 적을 물리쳤다는 설화도 있다. 죽은 뒤에도 대관령 산신이 돼 적을 물리쳤다는 믿음이 퍼졌다.



마을을 수호하는 장군신으로 추앙되는 김유신은 강릉단오제에선 대관령을 관장하는 산신으로서 초대받는다. 경북 군위에선 팔공산 산신으로 그 지역 대다수 무속인들이 모신다. 김유신의 태가 묻힌 곳으로 알려진 충북 진천군 길상산, 서울 용산구 보광동과 주성동 일대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당굿 등의 형태로 남아 있다.







단군 13세기 역사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단군의 고조선 건국신화가 나온다. 두 책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히 단군이 1000년이 넘도록 고조선을 통치하다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이란 ‘무당’으로도 풀이된다. 고조선의 통치자이자 최고 사제자였던 것이다. 단군의 신격화 역사는 길다. 기록에는 고려 10세기께부터 황해도 구월산에 단군과 환인·환웅을 함께 모시는 삼성당이 있었다고 나온다. 조선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단군을 시조로 모시는 제사를 지냈고, 단군의 무덤을 찾는 등 신화가 아닌 역사적 인물임을 강조했다.



한말에는 단군이 민족의 시조이며, 한민족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국왕과 노비가 한 핏줄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봉건시대에는 등장하지 않은 개념이다. 외세의 침입 앞에서 민족 단결의 구심점으로 단군이 활용된 셈이다. 조선 후기 종교운동으로 발전해 1909년 대종교가 출현하는 등 단군을 주신, 혹은 여러 신 중 하나로 모시는 교단만 30여 개에 이른다. 무속에서는 일제시대 경남 함양, 강원도 양양 등에서 동제 때 단군을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에 무속의 원류를 단군에서 찾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으나, 단군이 무속의 중심신은 아니다. 무속화된 단군은 영일 지방 골맥이굿 사설에 남아 있다.



남이 장군(1441~1468) 남이 장군은 조선 전기 무신으로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지만 예종 때 훈구대신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 ‘원한 깊은 신을 모셔야 살아 있는 자에게 탈이 생기지 않는다’는 금기의식이 장군의 신격화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다. 구비설화에서 남이 장군은 지네의 원혼이 환생해 마을 사람들에게 인신공희(人身供犧)를 요구하는 부정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민중들은 남이 장군을 죽을 수밖에 없는 인물로 묘사하는 동시에 그를 숭배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부조리나 지배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민중의 저항의식이 역설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민간에서 남이 장군은 잡귀를 쫓아 질병을 치료해주는 신이다. 서울 용산구 동제(洞祭)에서 대상신으로 모셔진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용문동 남이장군사당에서 열리는 남이장군사당제(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다.



단종(1441~1457) 조선의 6대 임금. 12세에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왕좌에서 내쫓는다. 군(君)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되고, 17세에 죽는다. 시신조차 제때 수습되지 않아 “숲 속에 버려진 후 한 달이 지나도 염습하는 사람이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다”는 기록이 남기도 했다. 단종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아파하던 사람들은 그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신령으로 승화됐다고 믿었다. 그의 원혼(寃魂)이 태백산으로 백마를 타고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장례는 물론 공식 제사도 받을 수 없었지만 사후 15년이 되던 성종 3년(1472) 단종을 신격화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단종은 이후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신령으로 숭상된다. 중종 11년(1516) 공식 제사가 이뤄지고, 17세기 중반에는 국가 차원에서 단종을 제사 지냈다.



단종이 지역 무신이 된 건 중종 36년(1541)의 흉사 때문이다. 당시 영월에 부임한 군수가 7개월간 셋이나 죽어 나가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흉사가 모두 단종의 원혼 때문이라 믿었던 영월 주민들은 영모전을 건립해 단종을 지역신령으로 모시기 시작한다. 영월 주민들은 혼인이나 회갑 잔치를 치른 후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의 단종유지비각 앞에서 모든 일이 잘 치러졌음을 고한다. 단종신앙이 일상 생활의례에까지 스며든 것이다. 영월 외에도 태백산을 끼고 있는 태백시·봉화군 일대에 단종신앙이 퍼져 있다.



범일국사(810~889) 신라 말의 선승.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대관령 국사성황’이다. 범일은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로 동해 삼화사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를 건립했다. 신라 왕실의 교종과 대립하며 지방 호족세력과 결합해 고려 건국에 도움을 줬다. 강릉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범일의 탄생담이 전해진다. “학산의 규수가 우물에서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해 아들을 낳았으나, 아비 없는 자식이라 몰래 뒷산 학바위에 버렸다. 며칠 뒤 가보니 학이 붉은 구슬을 입에서 내어 먹이며 돌보고 있었다. 하늘이 아는 자손이라 생각해 다시 집에 데려와 기른 것이 범일국사다.” 강릉지역엔 석천우물과 학바위 등의 장소가 남아 있다.



임경업 장군(1594~1646) 조선 후기의 명장.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내세워 청나라에 반대했다. 명과 힘을 합쳐 청에 저항해 병자호란의 국치를 씻으려 했으나 조선의 정치적 상황 탓에 실패하고 억울하게 옥사했다. 조선의 민중들 사이에선 도리어 충의, 지조, 용기의 상징으로 남아 영웅이 됐다.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안에서 풍어(豊漁)를 관장하는 어업신으로 모셔진다. 충남 당진군 안섬마을의 조기잡이 어선들은 과거 어로철이 되면 연평도의 임경업장군사당에서 풍어굿을 지냈다. 잡귀를 쫓고 병을 낫게 하는 신이자, 무당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최영 장군(1316~1388) 한국의 장군신 중 가장 널리, 가장 열렬히 숭앙된다. 고려 말의 장수로 수차례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고 내란을 평정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고려가 요동 정벌에 나선 우왕 14년(1388), 팔도도통사 최영의 직속 부하이던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개경을 친다. 최영은 남은 군사로 대적했으나 이성계에 패하고 귀양살이를 하다 73세에 참수된다. 최영의 활동 범위는 전국에 걸쳐 있어 사당과 유적이 역시 산재해 있다. 그러나 신격 숭앙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포함한 중부지역이 강세를 보인다. 경기도 고양시에 최영장군당굿보존회가 있다.



와룡선생유비를 도와 촉한을 세운 제갈량(181~ 234)을 일컫는다. 황해도 무속에서 글재주가 뛰어나고 도에 통달해 인간의 길흉을 점치는 신으로 모셔진다. 와룡신앙은 조선시대 관우신앙이 무속에 유입되면서 한국 무속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우가 관성제군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 와룡신앙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관우를 중심으로 유비·장비·조운·마초·황충·옥천대사 등 관련 신들과 함께 모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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