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인도판 9·11’ 더 깊어진 상처

인도 뭄바이 테러 1주년을 하루 앞둔 25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주요 테러 현장 중 하나인 타지마할 호텔 앞 광장을 거닐고 있다. 당시 32명의 희생자를 낸 이 호텔은 현재까지도 수리 중이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겹겹이 둘러싼 바리케이드를 통과해야한다. 오른쪽 사진은 테러 당시 화염에 휩싸인 호텔 모습. [뭄바이 AFP=연합뉴스, 중앙포토]

사다시브 찬드라칸트 콜케(39)는 1년 전 ‘그날’의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뭄바이 시내 기차역을 찾았다가 총을 든 두 남자가 대합실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게 기억의 전부다. 괴한들이 총을 난사하면서 그는 땅에 쓰러졌고, 두려움에 떨며 신의 이름을 부르다 의식을 잃었다.

작은 식당의 종업원으로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콜케의 인생은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52명이 숨진 ‘참사의 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병원에 6주나 입원해야 했다. 보상금 10만 루피(약 249만원) 대부분은 병원비로 들어갔다. 퇴원 후 고향에서 요양을 마치고 뭄바이로 돌아왔을 땐 일자리가 날아간 뒤였다. 콜케는 노점상이 됐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차를 판다. 수입이 3분의 2로 줄었지만 아내와 두 아이, 병든 아버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166명이 죽고 300여 명이 다친 인도 뭄바이 테러가 26일로 1주년을 맞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AFP통신 등 외신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테러 위협과 이를 둘러싼 인도·파키스탄의 갈등, 생존자들의 ‘마음의 상처’ 등은 여전하다고 보도했다.

◆166명 죽고 300여 명 다친 테러=뭄바이 테러는 파키스탄에 근거를 둔 이슬람 무장조직 ‘라시카르-에-토이바(LeT)’에 의해 자행됐다. 1990년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인도와의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2002년 불법단체로 지정됐지만, 전쟁 난민 등을 지원하는 산하 구호단체를 앞세워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뭄바이 테러 직후 “LeT가 배후”라는 인도의 주장을 부인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자 올해 초 뒤늦게 주요 간부를 체포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대부분을 석방했다. 남은 7명의 재판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정보기관과 군부는 LeT 소탕에 소극적이다. 인도와의 분쟁에 LeT의 활용 가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스와트 밸리 등에서 탈레반과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LeT 소탕까지 나설 경우 ‘전선’이 둘이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감안했다.

◆인도, 미국 밀착하며 파키스탄 압박=인도는 LeT의 건재를 ‘추가 테러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디파크 카푸르 인도 육군참모총장은 24일 잠무카슈미르주 잠무에서 열린 전쟁기념관 개관식에서 “파키스탄에는 아직도 42개의 테러 훈련캠프가 있다”며 “2000∼2500명이 인도 침투 작전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주장했다. “LeT가 지난 1년간 최소 6차례, 뭄바이에 대한 추가 테러를 기획했으나 좌절됐다”는 얘기 도 나오고 있다.

테러에 대한 우려는 미국과 협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 인터넷판은 24일 “뭄바이 테러가 인도와 미국의 새로운 동맹 관계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인도는 테러 대응 태세 강화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수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인도의 정보·병참 지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23일 미 외교협회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뭄바이 테러 배후 세력 처벌에 미온적인 파키스탄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한별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