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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성한 건 머리, 두 손가락 … 그 몸으로 따낸 자격증 9개

#1988년 8월 28일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인증서 수여식이 끝난 뒤 박진영씨가 아내 이영아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박종근 기자]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서울올림픽(1988)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당시 고교 2학년이던 박진영(38)씨는 병원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어야만 했다. 목 아래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몸. 더운 날씨에 욕창이라도 생길까 어머니는 연신 문지르고 주물렀지만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당한 사고였다. 경추 5번과 6번이 부러졌다. 사고 후 4개월이 지나 휠체어에는 앉을 수 있게 됐지만 목과 팔을 간신히 가눌 수 있게 됐을 뿐,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2009년 11월 25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박진영씨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용인세무서 6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그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나왔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선발’ 공모대회에서 ‘장애극복 분야 최고 공무원’으로 선발돼 인증패를 받기 위해서였다.

“저 좀 도와주실래요? 이쪽으로 좀 밀어주세요.”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를 보고 두 사람이 다가와 박씨를 돕는다. 함께 온 아내 이영아(40)씨는 “저 당당함에 반해 결혼했다”며 웃었다.


#미국공인회계관리사 등 자격증만 9개

19년 전 온몸이 마비된 박씨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마음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죽고 싶었죠. 그런데 몸을 못 움직이니까 죽을 능력도 없더라고요.”

어머니를 봐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다 세무대학에 진학했고, 졸업과 함께 1993년 북인천세무서에서 8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장애인이 일을 한다는 것이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1층 민원봉사실에 배치 받기 일쑤였다. “저를 대하기 껄끄러우니까 ‘경력이 부족하다, 자격증이 없다’는 말로 내치는 경우가 많았죠. ”

능력에서는 결코 밀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퇴근 후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했다.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조용한 공부방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씨가 공부를 끝내면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침대에 오르는 걸 도와줘야 해 아내는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못 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2002년 전산조사전문요원 자격증을 시작으로 외환관리사·미국공인회계관리사·국제조세 전문요원·국제조사위원·데이터베이스자격증·무역협회 인증 외환관리사·영어 1급·부기 2급 등 9개의 자격증을 잇달아 땄다.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공인회계관리사 자격증.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땄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 정부가 보내주는 연수자로 뽑혀 미국 LA의 회계법인(PKLLP)에 6개월간 연수를 다녀왔다. 그는 “대학생들이 1~2년 꼬박 공부해도 따기 힘든 자격증이라 주변에서 놀라워했다”며 “소중한 제 삶의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현재 불복청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세금에 이의를 제기한 납세자를 상담하고 판사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준비한다. 사무실 풍경은 남들과 다를 바 없지만 왼손 새끼손가락과 오른손 집게손가락만으로 컴퓨터를 다뤄야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데다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기 때문에 일이 별로 힘들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는 매일 남들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해 일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2005년 ‘올해의 국세인’으로 뽑혔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장애인들에게 할 말이 많다. “한국의 장애인 복지 현실은 열악해요. 하지만 본인 의지가 중요해요. 의지가 없으면 주위 도움도 소용 없죠.”

그의 꿈은 국제조세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세무사 자격증도 따고 싶다. 딸 하영(12)이와 아들 하진(7)이를 보란 듯이 키워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학교 밴드부에서 리더로 활동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활발해 자기와 꼭 빼닮았단다.  

임주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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