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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황궁 주변엔 2층 건물 안 된다” 대한제국의 ‘고도제한’ 지침

1900년께의 경운궁 대안문(현 덕수궁 대한문) 주변. 왼편 앞에 팔레호텔이, 뒤쪽으로 자국 국기를 내건 영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건물이 보인다. 경운궁의 규모가 훨씬 컸지만, 러시아공사관과 영국공사관 ‘밑’에 있었다.(『고종의 독일인 의사 분쉬』·학고재)
“근래 서울 각지에 외국인이 소유한 건물들 중 구름에 닿을 듯한 것이 많습니다. 건물은 본래 각자 편한 대로 짓는 것이라 우리와는 큰 관계가 없지만 다만 정동 한 곳만은 만백성이 삼가고 우러르는 황궁과 가까운 곳이니 나라의 체모에 관련이 있습니다… 귀 영사께서는 귀국 신사와 상인들에게 두루 알려 정동 경계 안 및 부근에 새로 2층 건물을 짓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1901년 11월 27일, 대한제국 외부대신 임시서리 민종묵이 각국 영사관에 보낸 조회문이다. 이 무렵 정동 일대에는 이미 러시아와 영국·프랑스 공사관, 손탁호텔과 팔레호텔 등의 2층 건물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이런 공문을 보낸 것은 그 전 해에 공사를 시작한 석조전 때문이었던 듯하다. 석조전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3층의 ‘고층 건물’로 설계되었다.



인류가 ‘신은 하늘에 산다’는 보편적 믿음을 갖기 시작한 이래 ‘높다’와 ‘신성하다’는 같은 뜻이었다.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왕 아키히토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일이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허리 숙이는 것’은 키를 낮추는 것으로서 상대의 신체를 ‘높이는’ 의미를 지닌다. 높고 낮음의 관계는 건물 사이에서도 표현되어야 했다. 조선시대에 궁궐보다 높은 건물이나, 궁궐보다 높은 곳에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었다.



산에 건물을 짓거나 건축물로 산을 가로막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랜 금기였다. ‘산소’라는 말이 의미하듯, 산은 죽은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서 신성한 곳으로 취급되었다. 속세를 등진 승려들이나 세상에 용납받지 못한 도둑과 화전민이 아니고서는 산에 집을 짓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 들어온 서양인들은 건축물에 대한 한국인의 금기를 거리낌없이 묵살했다. 서양인들이 높은 곳에 지은 높은 건물들은 새로운 신성(神性)을 상징했고, 한국인들도 불가피해서든 의도적으로든 이윽고 그 뒤를 따랐다.



애국가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한다. 산의 ‘정기’나 ‘기상’이 들어가지 않는 교가(校歌)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 능선이 만드는 경관(景觀)을 함께 보아야 마음을 합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한 층이라도 더 높은 건물을 지으려 애쓰는 요즘의 세태가 산을 함께 보던 사람들의 마음을 흩어놓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짓는 아파트들을 재건축할 때는 도대체 몇 층짜리 집들을 지을 것이며 그 폐기물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고.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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