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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P 일곱 사장 이야기 ⑥ 비원테크 김억기

천안 직산의 충남테크노파크(CTP)가 올해로 창립 10년을 맞았다. 그동안 CTP는 충남의 17개 대학이 참가해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많은 우량 기업을 키워냈다. 그 중 일곱 명을 뽑아 창업스토리를 담은 책을 펴냈다. 그들을 밀착 취재해 싣는다.



LCD 장비업계 최고 꿈꾸는 ‘서른살 사장’

김정규 기자



사회초년병 나이 때 이미 사장이 된 김억기 대표. 40대를 바라보는, 많지 않은 나이에 중견기업 사장의 관록이 묻어있다. [조영회 기자]
서른. 사회 초년병 딱지를 갓 땔 나이에 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회사를 꾸려 나간다는 것이 적잖이 힘들었다. 돈을 구하러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수없이 들었다. 그가 창업할 당시만해도 어린 청년(?)이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갈까 불안해하는 눈길이 많았다. 회사 운영 7년. 이제는 어엿한 중견 기업 사장의 모습을 갖췄다. 100억대 매출을 올리는 LCD TV용 검사장치 생산업체 비원테크의 대표 김억기(37)를 만났다.



“훔치는 거 빼고 다 배워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4남1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많은 가족들 틈에서 위계질서도 배우고, 정을 나누는 방법도 터득했다. 특히 할머니께서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배워서 나쁠 거 없다. 훔치는 거 말고는 다 배워라.”



그는 틈만 나면 형들 방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붓글씨 솜씨도 남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효석문화제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놀이도구도 손수 만들었다. 팽이, 썰매 등등. 대패질 하나하나 해가며 꼼꼼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구미전자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구미전자고등학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국립 기술고등학교였다. 졸업도 하기 전 4가지 분야의 기술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1989년 김억기는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반도체 장비·부품 신생회사인 ㈜디아이의 부설 연구소에 개발보조직원으로 입사했다. “생긴 지 1년이 채 안 된 연구소였기 때문에 선배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개발보조를 하는 직책이었는데도 재량껏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았죠. 일이 재미있었어요.”



창업의 밑거름



김억기는 91년부터 36개월간 병역특례업체인 ㈜디아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입사 5년 후엔 전자회로 설계자가 됐고, 스물넷의 이른 나이에 결혼도 했다.



반도체 장비에 주력하던 회사는 LCD장비 개발로 분야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LCD개발사업부의 리더였다. 어린 나이에 기댈 만한 선배도 없이 팀원들을 이끌면서 좌충우돌했다. 일에 취해 휴일도 반납하고 밤을 새기 일쑤였다. 그의 팀은 사내 최고팀으로 인정받았다. 김억기란 이름이 주변 경쟁업체들 사이에서도 오르내렸다. 다들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윗 연배의 부하직원을 다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기, 질투도 많이 받았다. 회사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당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사표를 내고 반도체 LCD장비를 만드는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많은 후배들이 그를 따랐다. 그곳에서도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어린 나이라는 약점을 이겨내긴 쉽지 않았다. 연구소의 리더였지만 다른 부서장들보다 훨씬 어려 직책에 맞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창업을 결심하다



또 한번의 사표를 낸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퇴사 후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때에 새로운 기회를 잡은 것이다. 10년간 알고 지내던 고객이 일을 의뢰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저를 인정하고 찾아주는 고객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어요. 나에겐 10년 넘게 익혀온 기술력이 있었고, 믿고 찾아주는 고객도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더군요. 의뢰 받은 설비를 만들면서 결심했어요. 창업을 하자고요.”



창업에 필요한 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법인 등록을 하러 세무서에 처음 가 봤고, 직원 채용과 아이템 구상 등 처음 부딪히는 일들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창업할 공간으로 충남테크노파크를 선택했다. 입주기업들을 위한 공동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창업 초기의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았다. 2002년 10월 22일 김억기는 사장으로서의 첫 명함을 갖게 됐다. 그리고 창업 3개월 후 경리와 개발파트에 직원을 충원했고, 첫 발주를 받았다.



고난과 맞서 싸우다



초창기 매출 규모는 아주 미미했다. 장비업의 특성상 수주가 불규칙해 자급압박이 늘 따라다녔다. 부품을 구입하느라 얼마 안 되는 예비자금마저도 바닥나 버렸다. 무조건 아끼는 수밖에는 없었다. 매달 다가오는 월급날을 맞추기 힘들어 마이너스 대출, 어음 할인을 받으며 버텼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계속됐다. 근근이 버티며 창업 첫해를 넘겼다. 2003년 6월 첫 정부과제를 해내면서 매출이 20-30%올랐다. 단품 위주의 장비 수주에서 벗어나면서 공장규모가 협소해졌다. 2004년 여름, 천안시 성거읍에 위치한 2층짜리 공장을 매입했다. 창업 초기에 공장을 인수하는 것은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



“공장을 덜컥 계약해 놓았는데 대출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잔금을 치를 때 고생이 많았어요. 용도 문제로 잡음도 많았고요. 그때 제 나이 서른 둘이었고 젊은 혈기에 일단 저질러 놓고 해결하는 식이었어요. 그때도 밤마다 잠이 안 와서 새벽부터 산에 오르곤 했지요.”



2008년 여름, 비원테크는 삼성전자의 1차 거래업체로 등록이 됐다. 처음 목표를 세우고 만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기업의 1차 벤더가 되는 길은 발품 파는 일부터 시작됐습니다. 수 십 번을 찾아가거나 종일 기다리다 5분을 만나게 되더라도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우리를 알리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선 다음에는 틈새를 이용했습니다. 다른 협력사들이 기피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원가절감의 응용제품을 샘플로 만들어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켰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면서 얻은 그만의 관록과 노하우가 엿보였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비원테크 조직 들여다보기



사원주주로 주인의식 … 개발팀장 등 전 직원 마케팅 참여




천안시 성거읍에 위치한 비원테크 사옥. [조영회 기자]
기술중심의 팀별조직 비원테크 조직은 8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3개의 개발팀과 기술팀은 사업 아이템별로 업무를 나눴다. 기술영업팀에서는 마케팅과 영업을 관리한다. 비원테크는 영업팀 외에 개발팀장이 영업을 겸하기도 한다. 기술지원과 컨설팅을 가장 잘 아는 개발 팀장은 영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자재관리 담당자가 견적서 작성 등 영업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기술개발 회사를 지향하는 비원테크 창업 후 1-2년 간 주축을 이루던 인원은 6명이었다. 모두 김억기 사장의 전 직장 후배였다. 이들 팀장급 인원은 동일 분야에서 평균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들로 기술적인 전문성이 뛰어나다. 이들 초창기 멤버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신입사원 공채가 이뤄져 매년 5-7명의 인력이 보충됐다. 2007년에는 고객지원팀이 신설되면서 10명이 충원됐다. 현재 비원테크의 전 직원은 50여명. 이 가운데 개발인원이 전체의 60%정도를 차지한다. 향후 영업과 경영지원 인력이 늘어나도 연구 개발 비중은 50% 이상 유지할 계획이다. 올해는 개발 비중을 7%까지 높이는 한편 기술개발 역량과 고객 지향적인 마케팅을 실행하기 위해 대학교수와 연계해 필요 기술을 개발하고 부족한 부분은 관련 기업과 공동 개발을 추진했다.



선임자가 이끄는 책임 교육 신입직원이 채용되면 자체 매뉴얼로 교육한다. 6개월에서 1년 간 신입직원은 선임자로부터 업무교육과 회사의 문화, 고객 응대 등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엔지니어 교육은 각 부서 안에서 수시로 진행한다. 대리급은 충남테크노파크의 지원으로 T자형 인재중간관리자 교육을 받아왔다. 또한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디스플레이 박람회에 매년 2명의 직원이 참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나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발과 교육을 함께 하는 프로젝트 수행 비원테크는 자체 연구소를 통한 개발 뿐 아니라 외부 기관과의 공동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이다. 창업 초부터 꾸준히 산학협력을 해왔고, 2006년부터는 순천향대학교와 산학개발안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기술개발 담당 교수가 주1회 비원테크를 방문해 직원들과 프로젝트 개발을 하며,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꾸준히 인턴사원으로 참여했다.



최근 완공한 신규사옥에 ‘산학협력실’을 마련해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다. 산학협력이나 연구 프로젝트 수행은 개발과 함께 직원드의 기술 교육도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성과주의 인사평가 시스템의 도입 비원테크는 창업 초부터 일부 주식을 임직원에게 제공해 직원이 주주로서 주인의식을 갖도록 해왔다. 또한 매년 업무성과에 대한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직원수가 30명을 넘어가면서 직원들에게 좀 더 심화된 성과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왔다. 2009년 비원테크는 컨설팅을 받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성과주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성과주의 인사평가 시스템은 회사의 목표에 맞춰 개별 목표를 설정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연봉을 결정한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특허와 장기근속, 아이디어 포상 외에 우수사원 포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평가 시스템의 도입은 업무효율을 높이고 비원테크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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