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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패스트15 [4] 국내기업 ‘지문인식 출입문’ 둘 중 하나는 이 회사 제품

‘이노패스트 15’는 혁신(Innovative)과 고성장(Fast-Growing)을 주무기로 한 혁신형 고성장 기업을 가리킵니다.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슈프리마
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지문인식기술 업체인 슈프리마의 이재원(41·사진) 사장은 기술통이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하고 전기공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경기도 분당에서 대학 동문들과 창업한 뒤 그가 겪은 가장 큰 벽은 마케팅이었다.



창업 3년 만에 지문인식 모듈을 개발하고 판로 개척에 나섰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당시 지문인식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벤처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바이오 벤처들이 엉성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오차율이 40~50%나 되는 제품이 시장에 나돌았다. 슈프리마는 오차율을 1~2%대로 낮춘 제품을 갖고 나왔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불량품이 워낙 많다 보니 슈프리마의 제품도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해외로 가자.”



기술력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수출로 방향을 돌렸다. 문제는 신생 업체가 세계 무대에서 제품을 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이 사장은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만든 뒤 구글에 검색광고를 냈다. 검색창에 ‘fingerprint(지문)’를 치면 슈프리마가 가장 먼저 떴다. 해외의 선발업체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권위 있는 국제 지문인식 경연대회에도 출전했다. 기술력으로 승부하기 가장 좋은 기회였다. 2회 연달아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신뢰를 쌓아갔다. 제품 판매 첫해인 2003년 매출 7억원 중 90% 이상이 수출에서 나왔다.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뒤 국내로 진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사장이 지문인식에 눈뜬 건 필연적인 우연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학원을 마친 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지능형 차량 시스템을 연구했다. 그러나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접으면서 연구과제가 마땅치 않자 창업의 길을 택했다. 딱히 사업 아이템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창업 후 2년간 뭘 할까 고민하면서 기술용역을 했다.



그러다 한 고객회사가 지문인식 알고리즘 개발을 의뢰해 왔다. 이 과제를 연구하면서 이 사장은 시장성에 눈을 떴다. 센서와 영상을 통해 지문정보를 받아들여 이미 등록된 것과 같은지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게 지문 알고리즘의 핵심이다.



“그래, 이거다.”



수학이라면 무엇보다 자신 있었던 그였다. 회사명 슈프리마도 수학용어 ‘슈프리멈(100에 가장 가까운 수)’에서 따왔다. 일반적인 정보기술(IT) 사업과 달리 수학과 신호처리, 이미지 프로세싱 등 여러 기술이 복합된 분야라는 게 그에겐 더 매력적이었다. 사업 경험이 없고 브랜드파워나 마케팅이 뒤지더라도 기술력으로 시장을 파고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던 기술용역 사업은 과감히 접었다. 기술용역만으로도 대기업 연구원 이상의 수입을 얻었지만, 안주하기보다는 도전해 승부를 걸기로 했다. 지문인식기술 개발에 ‘올인’한 지 근 1년 만에 첫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지문인식 모듈은 디지털 도어록, 출입통제기, 금고, 신원확인 기기 등에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보안업체 에스원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은 이미 100여 개국에 이른다. 세계 판매량 1위다.



이 사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문인식 모듈과 솔루션을 결합해 완제품의 생산·판매에도 뛰어들었다. ‘바이오 라이트 솔로’ ‘바이오 스테이션’ 같은 브랜드로 출입통제 기기와 근태관리 기기를 내놨다. 지문인식 시스템 시장에서 슈프리마의 점유율은 58%다. 회사 출입문이 지문인식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면, 둘 중 하나는 슈프리마 제품인 셈이다.



슈프리마의 사업 영역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문이 패스워드나 열쇠를 대체하고, 신분증에도 생체인식 정보를 담는 추세가 확산되면서다. 시장 상황도 좋다. 보안의식이 높아지고, 효율성과 편리함 덕에 생체인식 관련 시장은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나라마다 전자여권 또는 전자 주민등록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아파트 출입문부터 공항 출입국 심사대까지 지문인식이 일상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이런 훈풍을 타고 슈프리마는 전자여권 발급을 위한 여권판독기를 전국 구청과 재외 공관에 공급했다. 인천국제공항 내 항공사 카운터에도 슈프리마 제품이 깔렸다. 지문을 채취하는 라이브 스캐너는 한국과 일본 경찰청에 공급돼 범죄수사와 미아 신원확인에 쓰이고 있다.



이 라이브 스캐너는 지난해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인증을 받았다. 세계 표준으로 인정되고 있는 FBI 인증 덕에 슈프리마는 각국 공공사업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



올 들어 인도 전자주민등록용 지문 데이터베이스(DB), 브라질과 필리핀의 전자투표용 지문DB, 이란과 콜롬비아 경찰청의 출입보안 시스템, 멕시코 육군의 군사시설 신원확인용 시스템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매출액 224억6000만원 중 70%를 해외에서 거뒀다.



“지문인식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해 진입장벽이 높지만, 일단 장벽을 넘은 기업들은 높은 마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 사장은 또다시 새로운 장벽을 넘으려 하고 있다. 얼굴·홍채 등 다른 생체인식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 전공인 센서 퓨전 분야를 살려 지문과 얼굴을 복합적으로 인식해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오차율 1~2%인 지문인식과 15%대인 얼굴인식 기술을 합치면 오차를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SF(공상과학소설) 영화에서나 보던 세상이 머지않아 펼쳐질 것”이라는 이 사장, 거의 상상 수준의 혁신을 꿈꾸고 있다.



특별취재팀=금융증권팀 김준현 차장, 김원배·김영훈·조민근·박현영·한애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이런 점은 보완하세요

전자여권·전자주민증 등으로 수요 확대 … 저가 중국산과 경쟁 대비해야




지문인식 시장은 1990년대 말부터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꾸준히 커왔으며, 아직까지도 초기 시장으로서 높은 성장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보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적용 분야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올해 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세계 바이오인식시장에서 지문인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7%에 달한다.



기존의 열쇠·카드·신분증 등에 비해 보안성은 물론 효율성과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비용절감 효과가 뛰어나 향후 시장확대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보안산업의 특성상 수요가 안정적인 공공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경기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도 장점이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범죄율이 올라가는 상관관계 때문에 요즘과 같은 세계적 경기침체도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전자여권, 전자주민증, 출입국관리 등 지문인식기술을 적용한 공공시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인도와 멕시코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문 정보가 포함된 ID 카드 발급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발주를 예고하고 있다. 향후 노트북, 휴대전화, B2C 전자상거래, 자동차 시동장치 등으로도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로서는 이 같은 산업의 성장세를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 중 해외시장의 비중이 60% 이상이고 거래처가 700여 곳에 달해 수요기반이 안정적이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 매출성장률 109%, 영업이익 성장률 200% 등 꾸준히 높은 실적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입장벽이 높고 가격보다는 인지도가 더 중요한 지문인식 산업의 특성상 후발주자가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과 비교한다면 아직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외형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지문인식 모듈에서 벗어나 지문인식 시스템 전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모델을 수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향후 각종 IT 기기와 신용카드 등으로 시장이 확대될 추세에 대비해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면서 경우에 따라 가격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 고객사에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유연함 또한 요구된다.



현재 전 세계 지문인식 시장은 슈프리마를 포함한 4~5개 주요 기업이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 구도다. 이처럼 비교적 단순한 경쟁구조는 회사의 성장과 수익성 증대에 기여해 왔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 국립기술표준원(NIST) 인증 등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공신력 있는 라이선스가 말해주듯 세계 최고 수준의 지문인식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은 남다른 경쟁우위 요소다.



그러나 경쟁은 향후 보다 극심해질 전망이다. 중국이 우수 인력을 기반으로 저가제품 시장을 치고 들어올 조짐이다. 제품별 단가도 하락 추세다. 향후 생체인식 시장이 홍채·얼굴 인식 등 지문인식 이외의 기술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문인식 외에 별다른 기술이 없는 점은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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