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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음식남녀

대만 출신의 유명 감독 리안(李安)이 만든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의 시작은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런 대사 없이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장면만이 길게 이어진다. 대형 호텔 주방장에서 물러나 미각을 잃어가는 노년의 독신남과 결혼하지 않은 그의 세 딸을 축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입맛을 잃었던 늙은 요리사가 새 반려자를 만나 미각을 회복하고, 딸들도 제 인생을 찾아 삶을 이어간다는 게 큰 줄거리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음식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제목 ‘음식남녀’는 사실 『예기(禮記)』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마시고 먹는 것과 남녀 사이의 사랑은 사람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이라는 내용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식욕(食欲)과 색욕(色欲)을 말하고 있다.



공자(孔子)가 주창하는 유교의 가르침은 실제 사람의 본성에 가까운 이 두 가지 욕망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공자는 단지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욕망에 대한 절제를 함께 말하고 있다. 본성에 따른 행동을 도덕과 윤리의 근간인 예(禮)에 맞춰 조화롭게 절제하자는 것이다.



유가에서는 타고난 성정을 질(質),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덧붙여지는 것을 문(文)이라고 했다. 두 가지가 잘 어울리는 게 이상적이지만, 바탕의 성정이 후천적인 교양을 넘어서면 그를 ‘야(野)하다’라고 표현했다. 식욕과 색욕으로 일관하면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으로 해석해도 좋다는 여지를 남긴 셈.



중국의 한 현대 작가는 『예기』의 구절을 엉뚱하게 끊어 읽어 이렇게 비튼다. “음식과 남성, 여인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 女人之大欲存焉)”. 여성 비하의 취지가 아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주는 억압감에서 여성이 선택해야 하는 보잘것없는 가치를 말하고자 했다.



요즘 ‘루저(loser)’ 논란이 한창이다. 키 작고 별 볼일 없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의 조롱이다. 욕망을 향해 벌거벗은 사회라며 흥분하는 이가 많지만, 따지고 보면 여성을 극단적으로 상품화해 온 남성들의 자업자득이다.



가려지지 않는 욕망, 야욕(野欲)이 들끓는 세상이다. 먹고 마시는 데 탐닉하면서 음침한 눈으로 이성을 곁눈질하는 사회. 조화와 절제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이 사회의 일그러진 풍경화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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