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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을순네 주막

막걸리를 빚어 파티를 했다. ‘막걸리를 어떻게 집에서 만드느냐’는 남편 말에 오기가 나서 해보았더니 대성공.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독에 불에 달군 숯과 태운 신문지를 넣어 소독한 후, 누룩과 되게 지은 밥의 밥알을 알알이 털면서 잘 섞은 다음 끓여 식힌 물을 붓고 항아리에서 닷새 동안 익히니 신기하게 술이 되더라.



귀한 술을 담근 김에 축하할 일이 있어서 막걸리와 잘 맞는 김치전·두부김치·빈대떡 등의 안주들을 마련해 열댓 명의 회사 친구를 초대했다. 20여 년을 같이 살다가 5년 전에 이혼한 친구가 전남편과 재결합을 한단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체면은 좀 구겼겠지만 ‘생각대로 하는 것이 답이다’. 20여 년간의 부부관계. 이 관계라는 것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처럼 길들여가면서 만들어지는 것. 맞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길들여진 자연스러운 익숙함. 참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20년 이상 쓰던 가죽 소파를 바꿨다. 가죽이라 끈적대기도 하고 검은색이 칙칙하기도 해서 늘 구박을 하며 다음엔 산뜻한 꽃무늬 천 소파를 사야지 하고 벼르다가 바꿀 때가 되어 가구점에 들렀다. 한 달 내내 돌아다녔지만 천 소파라는 것이 그렇더라. 때도 엄청 타고 꽃무늬는 어찌 보면 촌티도 나고 싫증이 나면 바꿀 수도 없고. TV 보며 소파에 앉아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시는 칠칠치 못한 우리 식구들용은 아닌 것 같다. 한 달 보름을 쇼핑하다 그토록이나 구박하며 쓰던 소파와 너무도 흡사한 것을 들여왔다. 어찌된 일인지 색깔까지도 똑같다.



칙칙하고 끈적거리는 소파. 그 위에 딸들을 눕혀놓고 기저귀도 갈아주었고, 이유식을 먹이다 흘리기도 했으며, 둘이 의자에서 어찌나 높이뛰기를 해대는지 엉덩이를 때린 적도 있다. 몇 해 전에는 그곳에 앉아 대학 입학원서도 같이 작성했다. 이처럼 소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 차마 내칠 수가 없어 얼핏 보면 바꾼 것도 모를 정도의 비슷한 쌍둥이 소파를 골랐나 보다.



부부 문제도 비슷하지 않겠는가. 재혼 전문 컨설팅하는 분의 얘기. 처음에는 배우자와 전혀 다른 사람을 원하다가 여러 명 만나본 후에는 원수같이 싸우고 이혼한 바로 전 배우자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단다.



‘을순네 주막’ 같은 분위기에 취해 다들 거나하게 몇 번씩 잔이 돌아간 후. 친구의 전남편이 하는 고백. 처음엔 너무도 지겨워 두 번 다시 안 보려 했단다. 그런데 며칠 전 전 부인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종합검사의 결과를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었는데(사실은 오진이었다. 참 영화 같은 이야기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고 이 여자는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란다. 그러면서 ‘아,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하고 그제야 알았단다. 그리고 그 길로 달려가 재결합하기로 했다는데.



이런저런 점이 싫어 헤어진 두 사람. 이런저런 점.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런저런 점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될 것이다. 칙칙하고 끈적거려 싫었던 가죽 소파가 때도 안 타고 싫증도 안 나고 몸에 착 붙어 좋기만 하더라.



참~ 생각하기 나름이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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