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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서평]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지난 세기말을 후꾼 달구었던 '지적 사기(詐欺)논쟁' . 1997년 미국 뉴욕대 앨런 소칼 교수(물리학)가 자크 라캉.줄리아 크리스테바.장 보드리야르.질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가리켜 일부러 난해한 과학용어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독자를 속이고 있다고 비판해 화제를 불러모았던 사건이다.





최근 문제의 책 '지적 사기'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민음사.원제 : Fashionable Nonsense)가 번역.출판되면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계명대 이진우(철학)교수와 포항공대 임경순(물리학)교수가 철학자와 과학자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공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무비판적 수용 제동"





프랑스 철학자의 허위성을 질타한 소칼은 용감했다. 처음 그의 주장이 나왔을 때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될 정도로 무모해 보였지만 역사는 소칼의 발언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한동안 구미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소칼의 장난' (지적사기 논쟁)은 미국 물리학자들의 집단인 고에너지물리학 공동체가 프랑스 철학계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학문적 분위기에 불만을 느껴 일어난 희대의 사건이었다.





특히 소칼의 비판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미국의 평범한 물리학자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많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들은 난해한 과학 개념을 엉터리로 사용하며 대중을 현혹하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과학적 진리와 신화를 혼동하는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무기로 순수 과학자들의 노력을 정치적 담합 행위 수준으로 평가절하한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성.객관성 등에 안주해 있던 전통적 지식 분야에 인식론적 다원주의와 다양성, 문화의 혼합 및 창의성 등을 강조하庸?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든 인문사회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지닌 무차별적 파괴력에 심취되어 전통적 지식인들이 참아내기 힘든 주장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내세운 몇몇 주장들에는 절대 진리는 없다는 인식론적 상대주의, 현대 과학적 성과를 무시한 반과학적 신비주의, 인간은 확실한 지식을 절대 알 수 없다는 무책임한 회의주의 등으로 비화할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소칼은 바로 이런 점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프랑스 철학자들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사용한 듯한 몇몇 과학적 개념을 소칼이 공격을 퍼붓는다고 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체적 구도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일반 대중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대해 지녔던 막연한 믿음에 제동을 건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말처럼 소칼이 난해한 프랑스의 지적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비판을 했다고 치더라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천박한 세기말 사조가 아니라 21세기에 인류와 같이 살아갈 올바른 가치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닌 바람직한 덕목은 유지하면서, 다양한 가치관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상호 교류의 질서가 확립돼야한다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전통적 지식과 새로운 지식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유연성, 근대과학 수립 이후 우리의 중요한 가치관이 되어온 객관성.합리성.보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등 새로운 가치관도 함께 요구받고 있다.





소칼은 프랑스 철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철학자들의 행태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동양사상과 서구과학을 넘나들며 현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소위 '큰 이야기꾼' 들이 있다.





대가를 자처하는 이런 사람들도 서양과학에 대한 논의를 좀더 조심스럽게 사용해 오늘날 프랑스 철학자들이 소칼에게 당한 수모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임경순 <포항공대 물리학>





[오만이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논증할 수 있나"





"이성적 인간과 직관적 인간이 나란히 서 있는 시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적 선구자로 불리는 니체의 말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세계를 관찰하고,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논증하려 한다면, 직관적인 사람은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듯이 세계를 은유로 감싼다.





웬일인지는 모르지만 개념과 논증에 익숙한 사람은 대체로 직관적 비유를 두려워하고, 세계를 창조자의 눈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추상적 개념을 경멸한다. 이처럼 과학과 철학, 학문과 문학 사이에는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이 가로놓여 있다.





이 경계선은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과 함께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거품이 걷히고 난 지금 과학과 철학의 벽은 붕괴는커녕 더욱 굳건해진 듯하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과학오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지적 사기' 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책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과학과 철학에 관한 예리한 분석도 전문용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아닌 하나의 낱말이다.





'사기' . 끝간 데를 모를 정도로 성공적인 현대 과학과 기술의 오만이 이 낱말에 짙게 배어있다. 물론 프랑스 사상가들이 자신의 사상에 얄팍한 '과학성' 의 외피를 입히느라 애매 모호한 과학의 전문용어를 남용했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의 지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기이다.





만약 그들이 공허하고 진부한 내용을 감추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연과학의 권위에 기대었다면, 그것은 분명 사기행위이다.





그러나 소칼이 과학적 논증의 단두대에서 가차없이 목을 날리고 있는 라캉.크리스테바.보드리야르.들뢰즈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 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하나뿐인 진리, 하나뿐인 이성, 하나뿐인 세계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포스트모던 조건에서 단지 진리.이성.세계의 '의미' 를 반성하면서 사유할 뿐이다.





물론 과학의 전제조건 자체에 커다란 물음표를 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몇몇의 과학개념들을 과학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혼란과 경계침범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소칼은 이에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논증을 의도하지 않은 글과 사상을 놓고 논증이 결여되어있다는 점만 흠잡고 있다.





그러나 그가 문제삼는 텍스트들조차도 찬찬히 읽으면 프랑스 사상가들의 관심.사유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이성이 절대화될수록 인간의 삶의 의미는 왜곡된다는 비판적 우려도 그 중 하나다.





과학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비합리적이라고 매도하는 소칼에게서 성공에 길들인 현대과학의 오만을 본다.





전체주의와 절대주의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다른 이성을 찾고자 하는 프랑스 사상운동을 가지고 장난치는 그의 태도에서 과학주의의 방자한 성미' 사기(肆氣)'가 느껴진다.





그는 "논증할 수 없으면 말하지 말라" 고 외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역사를 과연 논증할 수 있을까? 인간 실존과 삶의 의미가 직관적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때 소칼의 이 책은 오히려 논증과 직관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진우 교수<계명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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