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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대한제국, 민심 달래려고 김장철에 ‘채소상인 체포령’

1900년대 서울 종로 네거리의 임시 채소시장 모습. 김장철에는 서울 전역이 채소시장으로 바뀌다시피 했다(『민족의 사진첩』).
겨울은 생명에 적대적인 계절이다. 많은 생명체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스러진다. 그렇지 않은 생명체도 최소한의 생명 활동만 유지한 채 어렵게 살아남는다. 겨울을 나는 것은 ‘겨우’ 사는 것이다. 식물은 잎을 떨어뜨린 채 맨가지로 겨울을 나며, 겨우내 잠만 자는 동물도 드물지 않다. 사람도 다를 바 없어 옛날의 겨울은 최소한의 물자로 근근이 버티는 계절이었다.



사람의 겨우살이에는 땔거리와 먹을거리가 필수적이었다. 겨울용 음식은 오래 묵혀도 상하지 않도록 말리거나 발효시켜 만들었다. 이런 음식에서 맛을 따지는 것은 사치였다. 역설적이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겨울용 음식의 특유한 맛과 향취가 각 민족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철 내내 발효시킨 채소를 먹었기 때문에 굳이 겨울용 음식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다만 겨울에는 한꺼번에 많이 담가두고 조금씩 덜어 먹었다. 김치 한 가지만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가난한 집 사람들은, 하루하루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늦가을에 김치를 많이 담가 저장하는 일을 ‘침장(沈藏)’이라 했는데, 이 말이 ‘진장’이 되었다가 다시 ‘김장’으로 바뀌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겨울맞이 준비도 어려웠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겨울을 앞둔 주부들은 연탄광에 연탄을 잔뜩 쌓아 두고 마당 한 귀퉁이에 묻은 큰 독에 김치를 가득 쟁여 넣은 뒤에야 한시름을 놓았다.



1903년 11월 11일 김장이 한창이던 때 서울 시내에서 갑작스럽게 채소가 자취를 감추었다. 경무청에서 채소 도매상들을 모조리 잡아간 탓이다. 정부가 몇 해 전부터 백동화(白銅貨)를 남발한 결과, 이 해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밀어닥쳤다. 채소 값이 몇 배가 뛰어 김장거리를 장만할 수 없는 부녀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당장 겨울 날 일이 아득하니 나라님을 원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경무청에서 채소 도매상들을 체포한 것은 이 원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물가가 떨어질 리는 만무했다. 애먼 장사꾼들만 곤욕을 치렀을 뿐.



백성들의 겨우살이 근심을 덜어주는 일은 왕정의 기본 중 하나였다. 조선총독부조차 김장철에는 시장 단속을 중단했고 해방 후 역대 정부도 김장철 물가 관리에 부심했다. 이제 김장은 사라져 가는 풍속이다. 김치 냉장고가 김장독을 유물로 만들어버렸고 공장 김치가 김장 김치의 자리를 빼앗았다. 장사꾼만 들볶는 물가 단속의 희극도 더불어 막을 내렸으면 한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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