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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의 교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오늘로 꼭 20년이 됐다. 1989년 11월 9일, 위기에 몰린 동독 정부가 전면적 국경 개방 조치를 취하자 동서 냉전과 독일 분단의 물리적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망치를 든 베를린 주민들에 의해 거짓말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국경 개방조치가 동독 정부 내 의사소통의 착오 때문이었던 것으로 최근 밝혀지긴 했지만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서독행을 원하는 동독 주민들의 억누를 수 없는 욕구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서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장벽이 무너진 지 1년 만에 통일을 이룩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부럽고, 착잡하다. 과연 우리는 느닷없이 닥칠 수 있는 급변 사태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가. 급변 사태를 무리 없이 통일로 연결할 수 있는 정치·경제·외교적 역량은 갖추고 있는가. 당시 동·서독과 현재 남북한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실수까지 포함해 독일의 경험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20년간 독일은 1조3000억 유로(약 2260조원)를 통일비용으로 투입했다. 한국의 8년치 예산 전액을 몽땅 동독 지역에 쏟아부은 셈이다. 그럼에도 통일 당시 서독 지역의 43%였던 동독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71%로 개선되는 데 그쳤다. 남한의 6%에 불과한 북한 주민의 1인당 GDP 수준을 감안할 때 독일식 통일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점진적·단계적 통일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렇다고 통일비용 부담이 통일 의지를 퇴색시키는 이유일 순 없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새로운 국가 비전과 성장동력이 절실하다. 평화통일은 도약의 ‘뉴 프런티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적절한 통일정책이 뒷받침될 경우 통일한국의 GDP는 30~40년 내 프랑스·독일·일본을 따라잡아 주요 8개국(G8)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골드먼삭스의 보고서도 있다.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비전을 가다듬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급변 사태를 점진적 통일로 연결할 수 있는 정교한 로드맵도 갖춰야 한다. 주변국의 반대를 극복함으로써 독일 통일이 가능했듯이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바라는 주변국들을 암묵적 통일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구조를 만들어내고, 통일한국은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비핵·평화국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심어줘야 한다.

동독 주민이 투표를 통해 통일을 택한 것은 동독 주민의 생활수준과 인권 향상에 기여해 온 서독 정부의 일관된 노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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