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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레이건의 베를린 장벽

헬무트 콜, 아버지 조지 부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3인이 지난주에 모였다.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에서다. 1989년 11월 9일 그들은 서독 총리, 미국 대통령, 소련 공산당서기장이다.

이들은 “그때 장벽이 무너질 줄 아무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역사의 거대한 전환은 기습과 쇄도의 속성을 지닌다. 그들 3인은 대전환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역사 변혁의 진정한 주연은 로널드 레이건(2004년 숨짐)이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 8년간(1981∼1989년 1월) 소련과 체제 경쟁을 했다. 그리고 공산제국 퇴출의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붕괴는 그 연출의 극적 성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미 밸리(Simi Valley)에 레이건 도서관 겸 박물관이 있다. LA 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기록관 중 가장 크다. 그가 탔던 전용기(에어포스 원)도 전시돼 있다. 입구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의 동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관 3층 냉전 코너-. 87년 6월 레이건은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문 앞에 섰다. 그때의 기념비적 연설 기록물이 방영되고 있다. 그 문은 동서 분단의 상징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 번영을 찾는다면,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으로 오시오.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허무시오(open this gate. tear down this wall).” 그 순간 레이건의 얼굴은 단호하다. 역사를 만드는 지도자만이 드러내는 신념의 표정이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은 그의 경험과 통찰의 산물이다. 배우 시절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할리우드 침투와 대항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보다 집단, 자유보다 통제를 중시하는 공산주의의 뒤틀린 본질을 파악했다. 그가 주연한 서부 영화 ‘법과 질서(Law& Order)’ 포스터 부근에 그런 설명이 있다. 그는 보안관 역이다. 보안관은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처럼 레이건은 보안관으로 나섰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을 선과 악으로 파악했다. 그는 소련과 군사력 경쟁을 벌였다. ‘별들의 전쟁’ 구상인 SDI로 소련을 압박했다. 강경책이 소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소련은 맞섰다. 하지만 취약한 경제력은 군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나라 살림이 바닥났다. 동유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을 견제하면서 협조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소련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체제의 오랜 모순은 폭발했다. 레이건 퇴임 2년 뒤 소련은 해체됐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그 도발적 표현은 비판이 따랐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차츰 그 말은 대중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도덕적 우월감을 심었다. 박물관 뒤뜰에 있는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인간은 선하다, 옳은 일은 결국에는 항상 승리한다….”

이런 낙관적 인생관은 전염력이 강하다. 세련된 미소와 여유까지 더해져 그의 리더십은 친화력을 높였다. 그의 별명은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다. 탁월한 소통은 비전과 용기에서 나온다. 소통은 잘못된 여론에 눈치 보는 게 아니다.

그 옆에 베를린 장벽의 부서진 조각(사진)이 있다. 높이 3m, 폭 1m다. 독일 선물이다. 담벼락 앞면(서베를린)에 나비가 그려져 있다. 화려한 분홍색 나비는 자유를 상징한다. 뒷면(동쪽)은 장식 없는 회색빛 콘크리트다.

그 앞뒤의 차이가 지금의 남북한이다. 북한은 회색빛 불량국가다. 북한 주민의 삶은 20년 전보다 비참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칙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관성 있는 전략은 행운을 보장한다. 남북한 통일도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 한반도는 전환기적 상황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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