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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일 때 곳간 채워, 경제 위기 빨리 벗어났다

임기 4개월을 남겨두고 지지율 80%를 즐기는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58·사진) 칠레 대통령의 얘기다. 칠레 여론 조사기관 ‘아디마르크 Gfk’는 5일 지난달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칠레 국민의 90% 이상이 ‘대통령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답했으며 ‘신뢰한다’는 답변은 88%였다.

임기 말 지지율 80%, 칠레 바첼레트 대통령

칠레에 민주정부가 들어선 1990년 이래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은 아직 없었다. 그에 대한 지지율이 항상 높았던 것은 아니다. 취임(2006년 3월) 한 달 만에 10만 명의 고교생이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사상 최대 시위를 벌였다. 그 해 말엔 전임 대통령이 만든 교통시설이 말썽을 일으켜 교통대란이 발생됐다. 당시 지지율은 35%. 연립 여당 소속 의원들의 축출과 탈당으로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상실했다. 칠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영광은 1년 만에 “역시 여성 대통령은 안 돼”라는 냉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지지율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 1월까지 50%대였던 지지율은 9월 76%로 오르더니 다시 80%(10월)를 돌파했다.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해온 정책들이 성과를 내면서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미혼모 출신이자 무신론자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바첼레트는 이제 전 세계 여성의 희망이자 칠레 국민의 자랑이 됐다.

태양이 빛날 때 지붕을 고쳤다
3년 전 1500개였던 칠레의 국립보육원은 이제 4000개가 넘는다. 바첼레트는 임기 동안 모두 3500개의 보육원을 지을 계획이다. 워킹맘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다. 그는 2006년 10월 “4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이제부터 칠레의 모든 부모와 정부는 함께 갑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그는 부모의 월 소득이 하위 40%인 가구의 0~4세 아동에게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 지원을 시작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그는 두뇌 개발이 집중되는 영·유아들에게 국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불평등과 싸우고 싶다면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녀 셋을 둔 싱글맘이다. 두 아이는 헤어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막내딸은 독신 상태일 때 낳았다. 칠레는 2005년에야 이혼을 합법화한 가부장적인 나라다. 이 때문에 미혼모가 많고, 편견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혼모들은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 바첼레트는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획기적인 보육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조차 저소득층 무상 보육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나선다.

“우리는 호황일 때 불경기에 대비해 돈을 모아두기로 결정했다. 그 정책이 오늘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 3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칠레 방문 시 바첼레트는 금융위기 극복 비결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어 “영국이 책임 있는 재정정책을 펼쳤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경기 부양에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논평을 쏟아냈다. 가디언지는 “바첼레트는 브라운 총리가 ‘태양이 빛나고 있을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영국 속담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했다”고 비꼬았다. 금융 전문지 ‘머니 모닝’은 “바첼레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칠레는 영국·미국보다 경기 하강에 대비해 훨씬 더 잘 준비했고 지금은 훨씬 나은 위치에 서 있다”고 논평했다.

바첼레트는 칠레의 최대 수출 품목인 구리 가격이 경기 부침에 따라 요동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구리 수출은 총수출의 55%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국제 구리 가격은 국가 경제를 좌우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몇 해 동안 국제 원자재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바첼레트는 구리 수출에서 얻은 수익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뒀다. 그 덕에 350억 달러를 따로 모았다. 그중 20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미국 채권 등에 투자했다. 수익을 배분하라는 야당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금융위기의 격랑 속에서 미국·영국처럼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지 않고도 국내총생산(GDP)의 2.5%에 달하는 경기부양 자금을 조성했다. 칠레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4%, 내년 성장률은 2.3%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는 남미 국가 중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의사에서 NGO 리더, 국방장관으로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대학 의대생이던 바첼레트는 아옌데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라모네다 궁이 폭파되는 장면을 학교 옥상에서 지켜봤다.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 알베트로 바첼레트 장군은 군사정권에 의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다음 해 3월 감옥에서 사망했다. 75년 1월엔 바첼레트와 어머니도 정보기관에 연행돼 한 달간의 조사와 고문을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호주를 거쳐 동독으로 망명한 그는 79년 귀국해 의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군사정권 희생자 자녀들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일했다.

2006년 3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는 “나는 증오의 희생자였다. 나는 평생 증오를 이해와 관용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또 언론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가 증오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남들이 내게 해선 안 되는 것들을 내가 남에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내게 사명감을 심어줬다. 내 나라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우리가 살아야만 했던 그런 삶을 우리 후손들이 살지 않게 해야 한다.”

2002년 남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이 됐던 그는 민·군(民軍) 사이의 심각한 불신과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97년부터 워싱턴 미주국방대학에서 국가방어 문제를 연구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 군 현대화와 함께 여성도 군인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하지만 피노체트의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한 과거사 청산을 주장했다. 환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심장질환을 앓던 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사망했지만, 바첼레트는 피노체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2007년 칠레 사법당국은 피노체트가 미국 비밀금고에 지인 명의로 나라 돈 2700만 달러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피노체트의 가족들을 구속했다.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리더십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는 역대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친근하고 서민적이며 유머러스하다. 지난 5월 대국민 연설에선 스포츠 경기장 네 곳의 신축 계획을 밝히면서 “경기장 신축 비용에는 ‘나르는 신발’을 위한 비용도 포함돼 있다”는 농담을 했다. 축구 경기장 개장식에서 시축하다가 자기 신발을 날려보냈던 에피소드를 빗댄 것이었다. 또 취임 직후 남녀 장관의 수가 같게 내각을 구성한 데 대해 “모두가 댄스 파트너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 했다”고 말했다.

2005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소탈함이었다. 후보 토론회에서 그는 남성 후보와 달리 잰 체하지 않는 태도로 민심을 얻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뭐냐’는 한 국회의원의 질문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훗날 스스로도 “도박이었다”고 할 만큼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런던에서는 “내 전임 라고스 대통령이 눈물을 보이자 언론은 감수성이 예민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눈물을 보이자 히스테리컬하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함께 남미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여성이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경 분쟁으로 전쟁 위기에 처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화해를 주선한 것도 바첼레트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감정에 치우친 지도자들에게 냉정할 것을 주문한 사람은 다름아닌 나와 페르난데스였다. 여성들은 꽤 이성적”이라고 말했다.

투자 유치 위해 10~12일 한국 방문
그는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가 속한 중도좌파 진영(콘세르타시온)은 12월 대선에서 중도보수 진영의 후보인 백만장자 세바스티안 피네라에게 패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가 속한 진영의 후보인 에두아르도 프레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대방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뒤지고 있다. 콘세르타시온은 90년 이후 20년간 집권했다. 이에 대한 국민의 견제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데다 중도좌파 연정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연정은 바첼레트의 인기가 차기 대선 정국에서 반전 카드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헌법상 연임이 불가능해 바첼레트는 차기 대선에는 출마하지 못한다.
바첼레트는 10~12일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칠레는 한국과 2003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포도주· 돼지고기·구리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현대·기아차는 칠레 자동차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고 LG·삼성은 가전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칠레는 남미의 경제 우등생이다. 인구 16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다.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칠레 정부는 시장 개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미 전 세계 57개국과 FTA를 맺었다. 그의 방한 길에는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수행한다. 한·칠레 간 경제·통상 관계를 발전시키고 대(對)칠레 투자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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