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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들이 발로 엮은 20년, 백두대간은 ‘족보’를 얻었다

‘1대간 9정맥 1000명산’ 지도첩(사진 위). 이승태(왼쪽) 팀장과 명산 지도첩 팀원들이 ‘사람과 산’ 본사에서 제작회의를 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이 땅에 거대한 산줄기가 문득 소리 없이 솟아났다. 따로따로 혹은 끼리끼리 높이를 겨루던 산들이 일제히 어깨를 겯고 한 무리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백두산과 지리산이 하나 되는 ‘산의 통일’이고 ‘산의 혁명’이었다.

‘1대간 9정맥 1000명산 지도첩’ 발간

시작은 미미했다. 1980년 인사동 고서점에서 대동여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산경표』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엔 한문으로 된 난수표였고 그것을 해독하고 보니 믿기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대학생과 산악인들이 고문서가 암시하는 대로 길 없는 길을 찾아 나섰다. 백두대간의 실체가 그 웅대한 모습을 나타냈다. 90년 산악 전문지 ‘사람과 산’(대표 홍석하)이 대간의 등줄기에 올라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더듬어 나갔다.

그렇게 20년의 긴 시간이 지나 창간기념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1대간 9정맥 1000명산’ 지도첩이다. 북쪽에 있는 1정간 4정맥을 뺀 남쪽 산들의 족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사이 숱한 보고서와 책과 지도와 방송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러나 대간과 9정맥을 통째로 아울러 한 두름에 엮은 것은 처음이다.

“장장이 등고선마다 수백 명 산꾼들의 거친 숨소리가 스며 있고 뜨거운 땀방울이 배어 있습니다.”

8개월간 지도 제작을 지휘한 이승태(42) 팀장은 몇 달씩, 몇 해씩 미답의 산줄기를 헤맨 산꾼들을 일등 공신으로 꼽았다. 휴가를 안 내주자 직장에 사표를 던지기도 하고, 꿈같을 신혼여행을 가시덤불 속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었단다. 너무 거창하여 밥줄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거사이니 미치지 않고서는 덤벼들 수 없었다.

그러나 대간의 신도들을 미치게 한 것은 뜻밖에도 환희나 도취가 아니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어릴 때부터 태백산맥·소백산맥·노령산맥을 진리처럼 달달 외운 사실이 낯 뜨거웠다. 강과 계곡으로 동강 나는 산맥 앞에서 머릿속에 모셔 두었던 앎도 토막 났다.

“정말 태백산맥은 없었습니다.”
산맥을 종주하고 책을 펴내기까지 한 남난희(52)씨가 외친 말이었다. 그때야 산경표 속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물은 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일찍이 선조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 같은 국토의 봉우리들을 낱낱이 호명하여 모두를 아우르는 인드라망의 세계를 열어 놓았다. 택리지·대동여지도·성호사설 등이 그 토대 위에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김정호의 후예들은 분노했다. 천지에서 천왕봉까지 1625㎞를 도도하게 굽이치는 한반도의 뼈대를 잉카나 마야 유적처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한 원인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원 수탈에 혈안이 된 일제가 14개월의 조사 끝에 땅속의 지질 구조선을 따라 붙인 이름이 태백산맥·소백산맥·노령산맥이었다. 그들이 한국의 자연에 대해 저지른 창씨개명이었다.

뒤늦게 미망에서 깨어난 산꾼들이 산과 산의 ‘마루금’을 따라 땀을 뿌렸다. 부르튼 발길과 검게 그은 얼굴들이 속속 1대간과 9정맥의 끝에 다다랐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우리의 의식 속에 부활했다.

“대간 종주는 발로 하는 것이지만 지도 제작 또한 손으로 하는 종주였습니다.”
‘사람과 산’과 함께 실제 지도를 만든 한국지도의 최인수(49) 대표는 대작 탄생의 또 다른 산파역이다. 16명의 인력이 3개월간 달라붙어 표고·지명·도로·학교·갈림길·등고선·좌표 등 깨알 같은 정보들과 씨름했다. 처음엔 지금까지 나온 정보와 지도를 조금 수정만 하면 되겠지 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산이 깎이고 도로가 나고 시가지가 생긴 곳이 숱했다. 기존의 지도는 등고선마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새 정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나지 않았다. 결국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낫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최신 지형도와 각 지방의 도로지도를 모아 놓고 낱낱이 옮겨 심었다.

“이것도 다 바꿔야 합니다.”
가장 큰 난관은 으레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었다. 우연히 작업 현장에 들른 독도법 전문가 박승기(53·한국트레일연구소장)씨의 눈에 GPS 좌표가 딱 걸렸다. 2004년 이후 좌표가 세계기준 WGS-84로 전환되고 있는데 지도에는 모두 옛 도쿄 데이텀이었다. ‘사람과 산’ 제작진 70명에게 비상이 걸려 좌표 전환에 들어가고 보니 일일이 수작업해야 하는 대공사였다. 한국지도 측은 마지막 한 달간 9명이 회사에서 숙식을 하며 밤샘 작업으로 매달려야 했다.

이미 대간 종주는 우리 산악문화의 차원을 훌쩍 업그레이드시켜 놓았다.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향해서 치닫던 도전의 열정이 이 땅에서 대상을 찾은 것이다. 그 길잡이가 될 지도첩 뒷장마다 담긴 계획·장비·운행·숙박·교통·주의점 등 최신 정보는 먼 길을 나서는 대간꾼과 정맥꾼들에게 훌륭한 비타민이다.

“갈 길이 멉니다. 앞으로 대간과 정맥들 사이에 흐르는 기맥과 지맥 등도 담아내야 합니다.”

이승태 팀장은 아직도 지도로 가는 대간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기맥과 지맥을 탁본하는 것은 이 산천에 깃든 사람들의 동네 뒷동산까지 이르는 실핏줄을 밝히는 일이다. 그때 21세기판 대동여지도, 한반도의 지놈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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