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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잔엔 막걸리, 안주는 막걸리 넣은 리조토

6일 오후 홍익대 앞 막걸리 주점 ‘친친’에서 ‘2009년 햅쌀 누보 막걸리 갈라 디너’가 열렸다. 이날 12종류의 이탈리아 전통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날아온 요리사 주세페 바로네(오른쪽)와 참석자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최정동 기자
와인 잔에 하얀색 막걸리가 채워졌다. 그에 곁들인 음식은 파전이나 빈대떡이 아니었다. 리조토·치즈요리·해물 굴 소스 볶음과 같은 이탈리아 요리다. 요리는 이탈리아에서 온 주세페 바로네(49)의 작품이다. 6일 오후 6시 홍익대 앞 막걸리 전문 주점 ‘친친’에선 막걸리를 주제로 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2009년 햅쌀 누보 막걸리 갈라 디너’다.

2009 햅쌀 누보 막걸리, 이탈리아 요리를 만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요리사 주세페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는 테이블을 돌며 이탈리아어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칠리아에서 ‘파토리아 델레 토리’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주세페는 요리사이자 슬로푸드 운동가·미각교육 전문가다.

그가 한국에 도착해 처음 먹은 음식이 막걸리였다. 그래서 “막걸리는 한국에서의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는 막걸리의 맛을 ‘자연의 맛’이라며 ‘기품 있고, 약간 쓰고, 마지막에 달콤함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대지의 향기가 느껴지는 막걸리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이탈리아 음식을 안주로 준비했다고 했다.

준비한 요리가 모두 나오고 사람들의 얼굴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색소폰 연주가 시작됐다. GAPERA master란 2인조 밴드는 영화 ‘시네마천국’ 주제가, 한국 가요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을 연주했다. 묵직한 색소폰 소리가 주점 밖까지 울려 퍼졌다. 자연스레 리듬을 맞추던 이상준(45·회사원)씨는 이날 마신 햅쌀 누보 막걸리에 대해 “어릴 때 어머니가 집에서 술을 직접 담그셨는데 그때 맛과 똑같다”며 “순수하고 깨끗한 맛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KBS의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이탈리아인 크리스티나(28)는 오랜만에 자신의 나라 사람을 만나서 한껏 들떠 있었다.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막걸리를 많이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막걸리의 ‘쌀 맛’이 참 좋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와인이 새로 나오면 가벼운 파티를 하는데 막걸리를 가지고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주세페에게 유럽사람들도 막걸리를 좋아할지에 대해 묻자 “물론이다. 요즘 유럽에서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걸리는 자연의 술이기 때문에 충분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사람들의 문화적 배타성을 언급하면서 “무조건 막걸리가 좋은 술이니 마셔라라고 하면 안 된다”며 “막걸리가 왜 좋은 술인지 문화적으로 조금씩 접근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이날 제공된 12가지 요리의 재료가 모두 도시농업으로 재배한 것이라는 점이다. 고추·당근·양파·토마토·마늘·콩 등 도시의 자투리 땅에서 전문 농업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경작한 농작물들이다. 주세페가 이 재료들을 고집한 이유는 자신의 철학인 ‘테라 마드레(Terra Madre)’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대지의 어머니’란 뜻의 테라 마드레는 슬로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기른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는 세계화·대규모·기업적 농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소규모 식량 생산자들을 주목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각자 원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의 남는 땅에 소규모,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런 시도를 한 것이다.

주세페는 이날 준비한 요리 중 리조토에 평소와 달리 와인을 첨가하지 않고 막걸리를 넣었다. 이 역시 현지 생산물로 요리를 하자는 테라 마드레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와인 대신 막걸리를 넣는다고 리조토가 스파게티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만약 한국에 전통와인이 있었으면 그것을 넣었을 것”이라며 “현지에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갈라 디너 참석자 50여 명은 감미로운 음악과 은은한 조명 아래 막걸리와 이탈리아 음식을 즐겼다. 그들은 이 낯선 조합을 즐기며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김도연(37·출판기획)씨는 “우리는 막걸리 하면 파전이나 주전자만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며 “그것을 깨고 막걸리에 대해 새롭게 해석을 한 시도가 아주 흥미롭다”고 말했다.

디너에 등장한 막걸리는 ‘햅쌀 누보 막걸리.’ 100% 올해 나온 국내 쌀로 빚은 막걸리로 충북 진천에 있는 세왕주조에서 만든 것이다. 누보 막걸리란 보졸레 누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보졸레 누보는 그해 나온 포도로 빚은 와인으로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하해 화제가 된다. 누보 막걸리도 햅쌀로 빚어 보졸레 누보와 같이 11월 19일 출하할 예정이다. 이날은 행사를 위해 소량의 햅쌀 누보 막걸리가 등장했다.

햅쌀 누보 막걸리는 인문학습원 막걸리학교에서 기획하고 부산산성막걸리·배혜정누룩도가를 비롯한 전국 16곳 양조장이 참가한다. 각 양조장마다 올해 갓 수확한 우리 쌀 100㎏(막걸리 600L)씩을 막걸리로 빚어 출시할 예정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친친’의 장기철(38) 사장은 “막걸리가 와인에 비해 뒤떨어질 게 하나도 없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사용한 막걸리를 만든 세왕주조 이규행(48) 대표는 “지난해만 같아도 이런 행사는 꿈도 못 꿨을 것”이라며 “올해 들어 막걸리가 유행하면서 분위기가 형성돼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왕주조에서는 이날 행사에 쓰인 막걸리를 주세페와 함께 제조했다. 그래서 막걸리 이름도 ‘주세페 누보 막걸리’로 지었다. 주세페의 이름을 쓰는 대가로 수익의 5%를 전 세계 농업학교에 기부하기로 약속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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