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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 환생 위해 자비 베푸는 건 비즈니스 거래일 뿐

그레이스(오른쪽)는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단주 전에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가”라고 묻자 “내가 술을 끊었다는 소식에 맥주회사 주식이 10% 폭락했다”고 답했다. 왼쪽은 지난 8월 금혼식을 맞은 부인 앤 그레이스. 신인섭 기자
와인과 사랑. 와인은 아무래도 연인들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딕 그레이스(71·사진)는 와인으로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와인은 지구를 치유하는 촉매제’라는 모토로 와이너리를 운영해 매년 수십만 달러의 와인 판매 수입을 자선 사업에 쓴다. 티베트·네팔·인도·멕시코 등지에 학교·병원을 설립하고 후원금을 낸다.

그레이스가 운영하는 포도원 이름은 그레이스 패밀리 비니어드(Grace Family Vineyards).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다. 그는 나파밸리의 세인트헬레나에 빅토리아풍 저택을 1976년 장만하고 78년부터 포도를 생산했다. 그가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로 생산하는 와인은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cult wine)의 원조다. 컬트 와인은 소수 애호가들이 소비보다는 수집·투자를 목적으로 구매하는 명품 와인이다. 그레이스의 와인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병에 600달러, 우리 돈으로 70만원에 팔린다. 자선 경매에서는 1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한다. 수천 명의 애호가들이 그의 와인을 사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정작 그레이스는 와인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미 해병대 출신인 그는 64년 제대 후 주식 브로커가 돼 상당한 재산을 모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88년 2월 5일부터 완전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교에 심취하게 된 그레이스씨는 달라이 라마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신종 플루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그레이스(왼쪽)가 승가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말 그레이스가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30일에 와인 행사에 참석하고 31일에는 조계종이 운영하는 서울 안암동 소재 장애 아동 시설인 승가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30일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나 와인에서 싹트는 사랑과 자비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자선 사업이 필요한 이유는.
“국적이나 정치적 입장, 재산 정도와 상관 없이 우리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게 있다. ‘가진 자(haves)’와 ‘못 가진 자(have-nots)’ 사이의 격차가 늘어나는 게 가장 중대한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이 격차는 폭력·범죄·테러 등 온갖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격차를 줄여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이런 목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다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문제는 지도자들이다. 재계 지도자는 보다 많은 이익을, 종교 지도자는 보다 많은 수의 신도를 바란다. 정치 지도자들이 제일 문제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유권자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선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고 말하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듣지는 않는가.
“미국의 우파 중에서는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신경 쓰지 않는다. 굳이 나를 분류하자면 나는 휴머니스트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양극화(polarization)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책이 아무리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우파의 공격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언론이 미국 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국내적인 갈등을 넘어 우리는 언젠가 미국인, 한국인이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 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 길을 막고 있다.”

-자선 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부부를 자선사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는 자선사업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자선 사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우선 돈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에너지·시간·능력·비전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는 물질적 도움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부자들만 베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선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단지 눈맞춤이 최상의 자선이다.’”

-자선 현장을 자주 방문한다고 들었다.
“우리 부부는 히말라야를 1년에 세 번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 억만장자, 평생 돈을 거의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 등등 말이다. 우리가 ‘영감을 준다(inspirational)’는 말도 듣는다. 그런 말을 해주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영감을 주는 게 아닙니다.’ ‘당신에게 내재된 선(善)을 발견하세요’라고 말이다. 우리가 현장 봉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영감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달라이 라마를 스승(guru)으로 삼고 있나.
“그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구루는 삶을 바꾸는 사람이다.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들에게서도 나는 스승을 발견한다. 그들은 내 삶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자선 사업 참가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우리 마음을 딴 데로 돌리는 두 가지 강력한 힘이 있다. 물질주의와 분주함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쾌락은 주지만 절대로 내적인 행복은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불교 신자가 되었나.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단박에 불교 신자가 된 것이 아니다. 불교가 내 신념과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행이나 의식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불교신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부처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불교신자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내가 느낀 것은 자신이 특정 종교나 교단에 속한다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고 있지만 영적(spiritual)인 사람들의 수는 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크리스천이었는가.
“그렇다. 우리 집안은 회중교회(Congrega
tional Church)에 속한다.”

-불교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비로운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게 불교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이나 행동 뒤에 있는 의도다. 더 좋은 환경에 환생하기 위한 행동은 자비로운 행동이 아니다. 비즈니스 거래에 불과하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인은 언제 만났는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만났다. 데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앤과 나는 우리가 결혼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지난 8월에 우리는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12월 18일은 처음 데이트한 지 55년이 되는 날이다.”

-부인도 불교 신자인가.
“그는 스스로를 ‘영적인 방랑자(spiritual vagabond)’라고 부른다.”

-테레사 수녀도 만났다고 들었다.
“테레사 수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다. 인도 콜카타와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수녀님의 사랑의 선교회 호스피스 시설에서 일을 했는데 12년 동안 한 번 갈 때마다 일주일 정도씩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수녀님들의 눈에서 테레사 수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해병대에서 받은 훈련이 사회에서도 도움이 되었나.
“물론이다. 우선 해병대는 내게 극기(克己)를 가르쳐 주었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자질구레한 사항 때문에 일 자체를 그르치지 않는 법도 배웠다. 빌딩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으면 빌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빌딩 자체를 세우는 실천
력을 키웠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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