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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완수하는 군인 정신, 기업 세계에서도 통해”

이강호 사장은 “이제 한국에서도 해외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배출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 회사에서 20년째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온 전문경영인이 있다. 그것도 정년인 만 60세까지 보장받은 자리다. 덴마크계 펌프 회사인 그런포스펌프의 한국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이강호(58)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포스는 일반인에게 낯설지만 업계에서는 최고 실력자로 통한다. 이 사장은 이 회사가 1989년 한국에 진출한 이듬해 250대 1의 경쟁을 뚫고 ‘공채 CEO’로 선발돼 지금까지 이 회사 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역삼동 아주빌딩 6층에 있는 한국그런포스펌프 사무실에서 다부진 체격, 다부진 말투의 이 사장을 만났다.

CEO가 꼽은 CEO, 위기 경영의 지혜를 듣는다 ⑭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사장

-최근 10년간 국내에 신축된 30층 이상 고층 빌딩 가운데 90%가량이 그런포스펌프를 쓴다고 하는데.
“서울 여의도 63빌딩 리노베이션 공사를 비롯해 도곡동 타워팰리스, 강남 파이낸스센터 빌딩 등에 우리 펌프가 들어갔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든 펌프 없는 곳이 없다. 모든 산업현장도 그렇다. 철강 제품은 물론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등 한국이 자랑하는 ‘수출 공신’도 물이 없으면 생산할 수 없다. 그런포스는 고층 건물과 산업 분야 펌프 업계의 리더다. (웃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펌프는 인체의 심장이다. 그다음이 그런포스 아닐까.”

-왜 그런가.
“그런포스는 45년 덴마크에서 설립됐다. 60여 년간 400개 넘는 특허기술을 축적했다. 자체적으로 펌프를 구동하는 컴퓨터 칩까지 생산한다.”

-그런포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됐다. 얼마나 성장했나.
“90년 회사 경영을 맡을 당시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앞으로 20년 뒤 시장점유율 25% 회사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점유율이 27%쯤 된다. 올해도 5%쯤 성장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엄청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이다. 직원들이 토요일 근무를 자청하기도 했다. 앞으로 5년 안에 한국 1000대 기업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이 사장은 “교육하면서 영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2003년부터 충북 음성 공장에서 국내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그런포스펌프 아카데미’를 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600여 차례 행사에 1만4000여 명의 엔지니어가 다녀갔다. “최근 그런포스에서 고효율 친환경 제품인 ‘E-펌프’를 출시했다. 1400여 가구가 입주한 아파트에 이 펌프를 설치하면 연간 1000만원어치 연료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신제품이 나오면 독일에서는 품귀 현상을 빚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2년은 구매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교육 마케팅이 중요하다. 물론 효과도 보고 있다.”

-국내 펌프 회사인 청석펌프와 금정공업을 인수한 이유는.
“그게 아주 힘든 일이었다. 회사를 파는 사람도, 돈을 내는 사람도 힘들게 설득했다. 청석은 가스보일러에 들어가는 소형 순환펌프를 주로 만든다. 그런포스의 이 분야 국내 시장 점유율이 65%다. 그런데 외환위기 때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경쟁사였던) 청석에 시장을 많이 뺏겼다. 빼앗긴 시장을 되찾아 와야 했다. 청석을 인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여러 차례 청석에 찾아가 자본과 기술력을 보강해 세계 시장에 수출할 제품을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지금 청석은 일본에 수출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에도 수출을 타진 중이다. 금정은 오폐수 펌프 전문기업인데, 청수(淸水) 전용 펌프를 생산하는 그런펌프로서는 이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금정 제품은 그런포스의 글로벌 판매망을 이용해 세계 22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광주 평동공단 공장을 완공해 내년이면 수출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사장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육군사관학교 출신 CEO다. 육사 29기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그의 동기생이다. 육사를 졸업하면서 ‘대표 화랑상’을 받아 전도유망했던 그는 78년 대위 때 돌연 군복을 벗었다. 이 사장은 “우리 동기 중에 국방장관을 포함해 참모총장·합참의장 등 대장이 4명이나 나왔다”며 “당시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군 출신 CEO로서 장점은.
“군에 있을 때 지리산 종주 같은 특수 훈련을 자주 했다. 강인한 체력은 기본 중 기본이다. 외국 출장을 가면서 시차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다. 또 한 가지는 임무 완수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죽음이다. 사업에서 실패하면 도산이다. 군인이든, 기업가든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성과를 내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 출신으로 하니웰 CEO로 영입된 래리 보시디가 쓴 『실행에 집중하라(EXECUTION)』라는 책에 『대개의 직원이 똑똑하며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일하고 마무리까지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 면에서라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는 군대 경험이 값지다.”

-사회에 나와 처음 구한 직장이 도자기 회사였던 진흥요업이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진흥은 국내 1호 종합요업 회사였다. 당시 도자기는 10대 국가 전략산업이었다. 세라믹 타일, 도자기를 들고 미국부터 유럽·중동 등 전 세계를 누볐다.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이후 이 사장은 유원건설 자회사였던 하림통상 미국 뉴욕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하림통상은 유원건설이 건자재 조달을 위해 만든 무역회사. 이 사장은 하림통상과 유원건설에 10년 가까이 몸담았다.

-그런포스로 옮기게 된 계기는.
“오랫동안 외국을 드나들면서 글로벌 기업이 더 많이 한국에 진출하고 한국 기업이 더 많이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기술과 자본, 경영 노하우를 한국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38세의 나이에 CEO에 취임하면서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았다.
“당초 그런포스에 합작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단 1주도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게 회사 방침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 실제 그런포스는 창업자 이름을 따서 만든 ‘폴 듀 엔슨 재단’이 지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합작사 대신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계약을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대만 그런포스 회장도 맡고 있다.
“그런포스는 국가가 아닌 지역 단위로 쪼개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한국과 대만, 아세안, 호주와 뉴질랜드 등으로 사업 영역을 구분했는데 올해부터 대만 회장을 겸임하게 됐다. 덕분에 해외 출장이 더 늘어났다.”

-20년째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외환위기 때다. 조금 전에 말했던 대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우리 제품 가격이 올라가 고생 많이 했다. 청석펌프를 인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글로벌 CEO를 꿈꾸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닛산의 카를로스 곤, 펩시코의 인두라 누이 같은 기업인을 봐라. 이방인인데도 글로벌 기업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세계적 기업의 CEO에 왜 한국인은 안 되나(Why Not Korean!).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 능력이 필수다. 영어로 계약서를 검토하고 협상할 수 있어야 하며 임직원과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현실적인 사업 감각이 필요하다. 이것은 젊을 때 글로벌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가능할 것이다.”

-다음 인터뷰할 분을 소개하면.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을 추천한다. 요즘 감성 경영을 강조하는데 양 명예회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감동 경영’을 하는 분이다. 임직원에게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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