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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아줌마에게 말을 걸다, 구수해진 라디오

가수 혜은이(오른쪽)씨가 데뷔 35년 만에 처음으로 라디오 DJ로 발탁됐다. 7080 세대를 위한 음악 방송인 KBS2 ‘혜은이·전현무의 오징어’ 진행을 맡았다. 스튜디오에서 공동 MC인 전현무 아나운서와 포즈를 취했다. 그는 "그날 그날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KBS 제공]
라디오가 문화의 ‘고갱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바다 건너 팝송이 들려오고, 가슴 떨리는 통기타 선율을 전해 듣던 때였다. 40대의 첫줄에서 50대의 뒷줄에 걸친 세대라면, 그런 라디오의 추억 몇 토막쯤 어렵잖게 꺼낼 수 있다. 라디오로 세상과 문화를 익혔던 그들은 ‘라디오 키드’란 말로 뭉뚱그려 불리기도 했다.


그들 ‘라디오 키드’가 문화적 변방으로 내몰린 건 TV·인터넷 등 요란한 영상 언어가 문화를 점령하면서다. 속사포 같은 연예인의 말 잔치가 대세가 된 요즘엔 딱히 즐길 만한 매체가 드물다. 그들의 청춘을 지배했던 라디오마저 슬며시 버라이어티 쇼를 흉내 내곤 했다.

한데 그런 라디오가 최근 아날로그의 추억을 다시 더듬고 있다. 뒤늦게 아련한 첫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은 모습이랄까. 40~50대 ‘라디오 키드’를 겨냥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

◆“중·장년층을 다시 라디오로”=KBS2 라디오는 지난달 말 개편을 단행하면서 ‘중·장년층 청취자를 사로잡는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중견 가수 혜은이씨와 정훈희씨를 DJ로 전격 영입했다. 그러면서 ‘혜은이·전현무의 오징어(매일 낮 12시10분)’와 ‘정훈희의 8시 가요쇼(매일 오후 8시5분)’를 신설했다. 둘 다 1970, 80년대를 풍미했던 포크·트로트 음악 등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원조 디바’인 혜은이·정훈희씨를 앞세워 중·장년층을 라디오로 끌어들이려는 편성 전략이다.

KBS2는 또 심야 시간대에 ‘원석현의 0시의 음악여행(매일 자정)’을 신규 편성했다. 비틀즈 등 ‘올드 팝송’을 주로 들려주는 방송이다. KBS 윤석훈 라디오 2국장은 “라디오와 함께 성장기를 보낸 중·장년층이 즐길 만한 프로그램이 드물었다”며 “TV나 인터넷에서 소외돼 있던 중·장년층에게 라디오 무대를 다시 돌려준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방송가에선 과거와 달리 청소년 청취자가 급감하면서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중·장년층이 주요 타깃 청취자로 떠올랐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청소년 음악프로가 점령하던 심야 시간대에 최근 들어 중·장년층 위주의 프로가 잇따라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방송되는 교통방송의 ‘이종환의 마이 웨이’, 원음방송의 ‘조은형의 가요세상’, SBS 러브 FM ‘최백호의 낭만시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대부분의 라디오 프로가 연예인 게스트와의 유사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반해, 이들 중·장년층 프로는 말을 확 줄였다. 대신 팝송·트로트·포크 등 7080 세대에 익숙한 음악을 집중적으로 틀어주는 게 특징적이다.

◆구구한 중년의 사연 빼곡=7080 세대를 노린 라디오 프로에 대한 반향은 작지 않다. 인터넷 게시판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위로가 된다”등 청취자 메시지가 가득하다. 특히 자식 걱정, 생활비 염려 등 중·장년층이 공감할 만한 사연이 빼곡하다.

KBS2 라디오 ‘정훈희의 8시 가요쇼’ 애청자인 홍경석씨는 게시판에 “오늘 쌀을 샀으니 연탄만 몇 백장 들이면 겨우살이 준비는 대충 마무리될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KBS 윤석훈 국장은 “생활에 지친 중·장년층이 라디오를 통해 위안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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