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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타임캡슐 1000년 1000~1899]

앞으로 천년 뒤인 2999년 우리 후손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까. 중앙일보는 천년 뒤 우리 후손에게 보여주고 싶은 지난 천년간의 문화, 문화재를 지상 타임갭슐에 담기로 했다.



크게 1000년부터 1899년까지와 20세기로 시대를 양분,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 시대별, 분야별로 대표적인 문화재를 선정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란 말이 있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다. 인터넷이 온 세상을 리얼 타임으로 연결하고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다니는 세상이라고 해도 전통의 힘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적어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온돌만 해도 요즘까지 한옥은 물론 서양식 아파트 바닥에도 응용되고 있다.



물론 요즘 변화의 빠르기가 워낙 거센 터라 새 천년 후, 지난 천년 한반도에서 이뤄진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세월이 얼마나 지나든 한민족의 역사며, 인류역사의 일부로 남아있으리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제 세월을 되짚어 지난 천년 우리 민족이 삶을 영위하면서 일구어낸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지상(紙上) 타임캡슐에 담아보자. 지난 천년의 벽두는 신생 고려가 혼란기를 딛고 안정을 다져가던 시기였다.



우리가 요즘도 흔히 쓰는 접는 부채(摺扇)가 있다. 흔히 알듯 이 접는 부채는 축소지향형의 일본에서 만들어 진 것일까. 동양과학사의 최고 권위자인 영국의 조셉 니덤은 그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에서 접는 부채가 고려 초 한반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소해보이기도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이것부터 넣자. 첫째는 응용력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둘째는 우리가 우리 것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반성의 뜻에서. 또 하나 금속활자를 골라 보자. 알다시피 금속활자는 사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13세기 초반으로 올라간다.

지난 천년 서양세계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보다 적어도 2백년을 앞선다.



삼국시대 이래로 정교하게 개발된 금속주조기술의 바탕 위에 소량다종(少量多種)의 서적이 필요했던 현실적 요구 속에 개발된 금속활자는 조선 초기 계미자(癸未字).경자자(庚子字).갑인자(甲寅字)로 이어지며 활자왕국을 이룩했다.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오랜 금속활자본은 14세기 후반의 '불조직지심체요절'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이다. 반환을 요구할 수는 없어도 더 오랜 것이 국내에서 발견되길 기대하며 마음의 타임캡슐에 담자. 고려를 얘기하며 청자를 뺄 수는 없다.



고려 초부터 시작된 청자는 12세기 비색(翡色) 상감청자(象嵌靑瓷)에서 절정기를 맞는다. 같은 푸른색이면서도 중국의 비(秘)색과는 달리 비(翡)자를 쓴데서도 나타났듯 고려인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가을하늘빛과 같은 아름다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상감기법은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공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조선백자에까지 이어지며 한국 도자기의 독창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 숱한 명품들 중 흰 구름 속에 노니는 학을 그려낸 '청자상감운학매병' 을 골라 담는다.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그 정화를 우리는 '팔만대장경' 에서 본다. 몽고의 침입에 따른 전란 속에서 16년간 새겨낸 81, 137판에 이르는 고려대장경은 불교의 모든 것을 담았다는 자료적 가치와 함께, 철저히 오류를 교정.수정한 비교할 데 없는 정확성, 고도의 목각기술과 7백년 이상을 뒤틀림도 없이 지켜낸 보존기술 등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아울러 독실한 불심과 함께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려불화도 한 점 담자. 1백50여 점에 이르는 현존 고려불화의 대다수가 일본 등 외국에 나가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이 또한 되돌아 올 날을 기다리며 고려말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일본 스미토모은행 소장) 한 점을 골라 본다.



타임캡슐이 작아 지난 천년을 통틀어 단 하나만을 담으라면 단연코 '한글' 을 고를 것이다. 한글은 세계 문자사에 있어 아주 이례적인 존재다. 한글은 다른 문자를 본뜨거나 고쳐서 만든 것이 아닌, 뛰어난 언어학자였던 세종(世宗)에 의해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문자체계이다.



음소문자로서 뛰어난 활용성-한글이 없었을 경우의 컴퓨터 활용을 한 번 생각해 보자!-과 함께 하늘과 땅, 사람 사이의 조화라는 우주적 사고까지 배어있는 한글이야말로 새 천년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문화 인프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임캡슐에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원본을 담자. 더욱이 한글창제 이후 나랏글에 대한 홀대로, 한글의 원리와 용법.설명을 담고있는 이 책이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자칫 한글의 진가가 파묻혔을지도 몰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그야말로 나라의 보물이다.



흔히들 우리는 기록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하나만으로도 이런 말은 그야말로 잘못된 선입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백72년간의 역사를 담은 1천8백93권 8백88책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은 양적으로 세계 최대라는 점 외에도 당대 자연현상과 민간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담은 풍부한 내용, 기록의 왜곡.고의적 탈락이 없다는 점, 필사(筆寫)가 아닌 인쇄물로 여러 벌을 나누어 보관함으로써 수차례의 전화 속에서도 완벽하게 보존됐다는 점 등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처럼 인류사에 기여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때문이다.



만원짜리 지폐 앞면에는 세종의 초상과 함께 물시계가 자리잡고 있다. 지폐 상의 물시계는 16세기 중종 때 만든 것의 일부지만 그 원형은 세종 때 장영실(蔣英實)이 만든 자격루(自擊漏)다.



자격루는 '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 다. 원형은 자취조차 없지만 본래의 자격루는 물통에 물이 담기면서 젓대가 떠올라 격발장치를 건드리면 쇠구슬이 굴러내리면서 북이나 종을 치기도 하고 십이지신 인형들이 나타나면서 시각을 알려주는 당대 세계 최첨단 기계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날로그식 물시계와 디지털식 시보장치를 결합시킨 자동화기기다. 세종조 때 이룩한 각종 과학의 선구적 업적들에는 측우기.수표(水標).오목 해시계(仰釜日晷)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하나가 세계 과학기술사에 당당히 자리잡을 수 있는 것들이'고 새 천년을 위한 타임캡슐에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천년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어찌 이뿐일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조선 백자, 걸쭉한 입심과 눈물.웃음이 배어나올 듯한 하회탈들, 마을 어귀에 세워졌던 장승과 솟대들',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던 옛집의 그리운 정경이며 치마 저고리에 비녀.노리개들'. 아울러 옛 땅의 풍경과 삶의 흔적들을 담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산수(眞景山水)들과 단원(檀圓) 김홍도(金弘道)의 풍속화첩도 함께 담자.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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