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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출 문화재 7만여점 돌아올 날 까마득

경주에 가면 누구나 찾는 불국사 다보탑 상층기단 위에는 돌사자가 한마리 앉아 있다. 원래 하나 뿐이었을까.

20세기 벽두 '한국건축조사보고' 를 발표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한 책에서 "1902년 조사할 때는 4구가 다 있었는데 1909년에 다시 와보니 비교적 완전한 2구가 반출되어 있었다" 고 밝히고 있다.



석굴암의 11면관음 앞에는 본래 대리석으로 만든 5층소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탑도 비슷한 시기에 통감이었던 소네 아라스케가 순시하고 간 뒤 자취를 감추고 이젠 대석만 남아있다.



당시 소네의 안내를 맡았던 일본인은 그 후 한 책에서 "도둑놈들에 의해 내지(內地, 일본)로 반출돼 있는 다보탑 사자 등이 반환돼 완전을 되찾는 것이 죽기전의 소망" 이라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돌사자와 소탑은 20세기가 저무도록 일본 어느 곳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금세기는 한국 문화재의 수난기였다. 구한말의 혼란기, 일제 강점기, 미 군정기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문화재가 거리낌없이 파헤쳐져 국외로 빼돌려졌다. 문화재보호법이 마련된 지난 62년 이전은 무법천지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18개국에 7만3백29점이 파악돼있다. 이 중 절반가까운 물건이 일본에 있고 그 안에는 조선전기미술의 최대걸작으로 손꼽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라든지 질.량면에서 국내보다 훨씬 풍부한 고려불화들, 수많은 도자기와 석탑.서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파악된 것은 공.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개인소장 등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하다.



한번 나간 문화재가 되돌아오기란 극히 어렵다. 한일협정 체결로 되돌려받은 1천6백여점을 포함해 현재까지 반환.기증.구입 등을 통해 환수된 문화재는 3천8백83점. 이는 파악된 것의 5%수준에 불과하다.



문화재 환수에는 ▶국가간 협상 ▶소장자의 기증 ▶매입등 3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정부는 프랑스와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을 벌이고 있다. 91년 우리 정부가 반환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이 협상은 93년 9월 고속열차(TGV)판매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방한한 미테랑 대통령이 고문서중 1권을 들고와서 나머지도 돌려주겠다고 공식 약속하면서 다 풀린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약속한지 7년이 지나도록 해결된 것이 없다. 환수는 차치하고 교환대여 방식까지 받아들였지만 프랑스측이 대여기간을 정하고 교환대상도 등가의 서지류로 한정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게 분명하고 국가원수가 약속을 한 사안마저 이런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간의 문화재 반환사례는 지난 20년간 10여건에 불과하다" 며 "유출경위가 명확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외교경로를 통해 환수를 추진하겠지만 일본 등 우리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들은 문화재반환에 관한 국제협약 가입마저 기피하고 있어 환수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 이라고 밝혔다.



기증은 데라우치(寺內)문고 일부를 받은 선례가 있고 앞으로도 민.관 협력을 통해 확대해나가야겠지만 선의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입이지만 최근 3년간 연간 5천만원에도 못미치는 해외문화재 환수 예산을 갖고서는 턱도 없는 일이다.



한계는 있겠지만 '문화의 세기' 라는 새천년을 맞아 예산증액이나 특별기금의 설치 등도 적극 검토해야할 과제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환수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일단 유출문화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국내 전시 유치와 주요 소장국 박물관내의 한국실 설치 확대 등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알리는 노력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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